가을 무지개를 타고 봄바가 떠났습니다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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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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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무지개를 타고 봄바가 떠났습니다

봄바는 화천의 수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곰이었습니다. 아랫동 첫 칸에 살며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과 가장 자주 인사하고 먹을 것도 많이 얻어먹던 곰입니다. 사람과 관계맺기에 익숙해서 농장주가 봄바의 입 속에 손가락을 넣어도 물지 않는 곰이었습니다. 다른 곰들에게는 가차 없이 달려들기도 했지만요.

가을 어느날 곰 숲 방사장에 나가 놀던 봄바는 구조물에서 내려오다 흙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떨어졌습니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봄바는 그 때부터 뒷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습니다. 봄바에게도 저희에게도 날벼락 같은 일이었습니다. 봄바를 강원대학교 동물병원에 데려가 CT촬영으로 척추 상태를 검사했고, 골절은 없으나 이미 진행되던 추간판(디스크) 탈출증이 여러 군데에서 관찰되었습니다. 그 중 어느 추간판이 외부 충격으로 척수신경을 누르게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늙은 곰에서 퇴행성으로 오는 추간판 탈출증은 해외 곰생츄어리에서도 가장 흔한 안락사 원인입니다. 봄바의 모든 상황은 이별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박한 확률이라도 회복을 기대하고 싶었습니다. 뒷다리를 끌고 다니면서 생길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닥에 고무판을 깔고 약을 먹이며 조금은 무모하게 기다려 보았습니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봄바의 뒷다리에는 이내 상처가 생겨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봄바의 일상은 점점 견뎌야 하는 날들로 바뀌어 갔습니다.


우리는 숙고와 논의 끝에 봄바를 안락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통을 덜어주고 책임을 다하기 위한 아프고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평소에 손등의 혈관에 주사기를 꽂는 훈련이 되어 있었기에 아픈 블로건을 맞지 않고, 봄바는 신나게 꿀물을 먹다가 의식을 툭 하고 잃었습니다. 가을산이 붉게 물든 2023년 10월 24일 오후 2시 12분, 봄바는 세상의 고단함을 놓았습니다.

봄바가 빼앗긴 것들을 우리는 결국 되돌려줄 수 없었습니다. 야생동물을 가두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자유나 해방 같은 거창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낙담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그럴듯한 꿈이 아니라 곰이라는 몸으로 태어나 누리고자 하는 매분 매초의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봄바와 보낸 시간과 관계의 농도만큼 봄바를 애도합니다. 사느라 애쓴 봄바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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