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40마리 길고양이의 엄마랍니다"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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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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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일대에서 여중생 캣맘 오연준 학생이 고양이 ‘민트’(왼쪽)와 ‘블랙’이에게 사료와 참치를 주고 있다. 윤형중 기자

[토요판] 생명
여중생 캣맘 오연준

▶ 길고양이는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도시에서 살아온 걸까요. 중세 시대엔 고양이가 마녀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하는 단골 학대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엔 도시생태계의 일원으로 ‘공존의 대상’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간이 그들을 학대하고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는 거죠. 여기 동네 고양이들을 돌보며 인간과 동물이 도시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지를 고민하는 한 여중생이 있습니다.

자동차 밑 어두운 공간에서 눈동자가 빛났다.

“민트야, 여기 있었구나.”

고양이 하나가 차 밑에서 기어나와 갸르릉거렸다. 고양이는 오연준(14·홍익여중2) 학생을 뒤따랐다.

“민트 배고팠구나. 어여 와. 밥 줄게.”

뒤에 또 다른 고양이가 따라붙었다. 검은색 고양이였다. 민트처럼 사람 뒤를 졸졸 따라오지 않고, 약간 거리를 뒀다. 오연준 학생이 한 건물의 주차장 구석에 도착했다. 그곳엔 이미 사료 그릇과 물잔이 놓여 있었다. 그릇에 사료를 채웠다. 누런빛이 나는 고양이 ‘민트’는 사료를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검은 고양이 ‘블랙’은 옆에 우두커니 앉아 민트가 먹는 모습을 쳐다봤다. 교복을 입은 오연준 학생이 책가방에서 고양이용 참치캔을 꺼냈다. 뚜껑을 따서 바닥에 참치를 부어주자 블랙이 다가와 ‘킁’ 냄새를 맡았다. 사료를 먹던 민트가 고개를 휙 돌렸다. 블랙은 서너걸음 물러섰다. 민트는 사료를 놔두고 참치를 먹기 시작했다.

“블랙이는 수컷이고 이 동네 대장 고양이예요. 민트는 암컷이고 지금 (민트는) 블랙이 아기를 임신중이고요. 대장 고양이가 이 동네에서 가장 힘세고 서열이 높지만, 임신한 민트를 위해 참치를 양보한 거예요.”

오연준 학생의 설명을 듣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민트가 블랙이의 아기를 임신한 것을 어떻게 알아요?”

“발정기 전후에 민트와 블랙이가 계속 붙어 다녔어요. 둘이 원래 친하기도 했고요. 블랙이는 대장 고양이라 사람을 별로 따르지 않아요. 지금은 민트가 오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거예요. 혹시나 민트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거죠. 민트는 지금 임신 초기인데, 좀 지나면 배가 더 나올 거예요.”

초등 1학년부터 용돈 모아 
길고양이에게 사료 사줘 
제각각 특성과 사연 따라 
이쁜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8개 그릇에 밥을 준다 

주민 설득해 급식소 만들고 
더 잘 공존할 방법 고민하다 
자연스레 중성화 수술 나섰다 
개체수 조절 우수사례로 꼽혀 
“제가 고양이에 미쳤대요”

학원 쉬는 시간에 나와 사료 채워

지난 27일 오후 5시께, 서울시 마포구 일대를 오연준 학생과 함께 돌아다녔다. 이 학생은 이 일대의 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이다. 오연준 학생은 최근 세 마리의 고양이를 포획해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도움을 받아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고양이 개체수를 조절하는 활동인 티엔아르(TNR·Trap-Neuter-Return)에 참여한 것이다. 오연준 학생을 만난 카라의 박아름 활동가는 “교복 입은 여중생이 와서 티엔아르를 문의하고, 직접 고양이를 포획해 오겠다고 해서 좀 의아했다. 포획틀을 빌려가려면 10만원의 보증금을 맡겨야 한다고 안내했는데, 바로 용돈을 모아 마련했다며 10만원을 꺼냈다”고 말했다. 오연준 학생은 포획틀을 빌려가 지난 20일 암컷 고양이 ‘미류’를 데려왔고, 23일엔 수컷 ‘고무’와 암컷 ‘시도’를 포획했다. 세 마리 모두 중성화 수술을 받고, 회복 기간을 거쳐 방사된 상태다. 고양이들의 이름은 모두 오연준 학생이 붙여준 것이다.

“시도는 검은 고양이인데, 목 부분이 와이셔츠를 입은 것처럼 하얀 무늬가 있어서 턱시도의 줄임말로 ‘시도’라고 붙였어요. 고무는 처음 만났을 당시에 고무줄이 목을 조르고 있었어요. 목에 걸린 고무줄을 빼주고 나서 ‘고무’라고 불렀어요. 미류는 처음에 다른 고양이로 오해했어요. 동네 전봇대에 ‘미류를 찾습니다’라고 써붙인 잃어버린 고양이의 사진과 너무 닮았던 거예요. 그래서 주인에게 연락해보니 ‘미류는 이미 찾았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계속 미류라고 불렀어요.”

오연준 학생이 이름 붙인 고양이는 40마리가 넘는다. 각기 나름의 특징과 사연을 토대로 이름을 붙였다. 이 학생이 사료를 주는 여덟 장소 중 하나인 ‘고등어네’는 생선가게 근처가 아니라, 고등어와 닮은 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밥을 먹는 곳이다. 오연준 학생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하루 종일 바쁘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 4시께 집에 오면 준비한 사료를 들고서 동네 한바퀴를 돈다. 5시에 학원을 가면 8시쯤 쉬는 시간에 나와 학원 근처 동네를 재빠르게 한바퀴 돌며 사료를 준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료 그릇을 수거하고, 학교에 등교하기 전에도 사료 그릇을 확인한다.

“친구들은 저보고 고양이에 미쳤대요. 용돈 모아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사거나 놀러 다니지 않고, 고양이 사료 사는 데 쓰니까요.”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위해 동네 사람들의 양해를 얻는 일도 온전히 이 학생의 몫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고, 밥 주는 장소 인근의 주민과 건물주에게도 허락을 얻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티엔아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숫자가 무작정 늘어나면 죽어나는 고양이가 많아지고, 동네 주민들도 싫어하세요. 특히 발정기엔 수컷 고양이들이 동네 곳곳에 똥, 오줌을 싸면서 영역 표시를 해요. 다른 수컷과 죽을 때까지 싸우기도 하고요. 암컷 고양이가 출산하면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징그럽다고 싫어하는 분들도 많아요. 무엇보다 출산을 자주 하면 암컷 고양이의 건강이 나빠지고, 새끼도 살아남기 힘들어요.”

이 학생이 몸소 절감한 것은 길고양이 문제를 일찍부터 접한 선진국들이 1990년대부터 티엔아르를 실시한 이유이기도 했다. 민원이 많아 한 지역의 길고양이를 모두 없애도, 다시 이웃 지역의 고양이들이 유입되는 ‘진공 효과’가 생긴다. 따라서 ‘소탕’은 민원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2012년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길고양이를 ‘도시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로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하여 포획 장소에 방사하는 조치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로 인해 길고양이는 민원이 발생해도 유기동물 보호소로 보내져 ‘안락사’에 처해지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신 중성화 수술을 받는데, 이 역시 문제가 발생했다. 고양이의 생리와 습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중성화 수술을 하면, 개체수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고, 수술받은 고양이의 생명도 위험해진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는 지난해 ‘임신·수유 중이거나 몸무게 2.5㎏ 이하인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 대상에서 제외’하고, ‘포획한 곳에 방사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표준지침’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이 지침에 따라 지난해 6003건의 중성화 수술을 실시했고, 올해 8월까지 3088마리를 수술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지난해부터 자체 티엔아르 사업에 나서 올해까지 340여건을 진행했다. 한마리당 수컷 8만원, 암컷 17만원에 이르는 수술비는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오연준 학생이 지난 27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더불어숨센터 동물병원에서 치료 중인 고양이를 살펴보고 있다. 카라는 지난해부터 자체 티엔아르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고양이가 식빵 쪼가리를 선물해요”

카라 쪽에선 오연준 학생의 활동을 모범적인 티엔아르 사례로 꼽는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길고양이는 최소 한달 이상의 관찰을 한 뒤 포획해야 적절한 포획 대상을 고를 수 있고, 티엔아르의 효과도 커진다. 중성화 수술 이후의 사후 관리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학생은 어떻게 수술 대상 고양이를 골랐을까.

“미류는 일년 반 동안 임신을 다섯 차례 했어요. 임신을 많이 해서 건강이 나빠졌죠. 시도는 이제 태어난 지 만 일년이 됐는데, 벌써 출산 경험이 있어요. 지금이 다시 발정나기 직전이에요. 고무는 이 동네에 있는 암컷들을 임신시키는 주범이에요.”

이 외에도 수술 대상 고양이를 고르는 여러 조언을 보탰다. 사료를 먹는 순서에 따라 고양이의 서열을 파악할 수 있고, 서열이 높을수록 건강하고 번식력이 좋다. 또 서열이 가장 높은 대장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으면 바로 서열에서 밀려난다. 그렇게 되면 영역 내, 영역 간에 분쟁이 발생한다. 대장 고양이가 영역 내 질서를 유지하고, 타 영역에서 침범하는 고양이로부터 보호를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장 고양이는 되도록 수술 후순위로 미룬다.

오연준 학생은 초등학교 1, 2학년 때부터 용돈을 모아 고양이 사료를 사기 시작했다. “유치원 다닐 때에 엄마가 고양이에게 밥 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 고양이를 친근하게 여긴 첫 계기라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땐 구내염을 심하게 앓는 고양이를 구조해 동물병원에 데려간 적도 있다. 당시 치료비가 부족했지만, 블로그를 통해 소식을 알려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고양이를 정성껏 돌보다 보니, 가끔 보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어떤 캣맘은 고양이에게 쥐를 선물로 받았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런 경우는 없고, 가끔 고양이들이 식빵 쪼가리를 가져와요. 제게 고맙다는 답례로 가져오는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의도인지는 알 수 없죠. 그냥 고양이들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열성 캣맘 여중생의 장래희망 역시 고양이와 관련이 있다. “수의사가 돼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보고 싶어요.”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기사보러가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653416.html

댓글 4

안소형 2016-02-10 15:28

따뜻한 마음이 고맙네요. 꼭 수의사가 되서 동물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지연 2015-12-11 22:57

연준학생의 멋진 모습이 위안과 희망과 용기를 주네요 건강하게 오래 활동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상아 2015-02-04 16:35

너무 마음이 이쁜 친구네요^^ 저보다 많이 어리지만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더불어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최유영 2015-01-14 12:26

학생의 돌봄의 마음이 참 놀랍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