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희 사진전 '묻다-동물과 함께 인간성마저 묻혀버린 땅에 관한 기록'은 3월 7일부터 생명공감 킁킁도서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도서관에 찾아와주셨고, 다녀간 분들께서는 더 많은 분들이 이 전시회를 접하길 바라며 주변 홍보에 도움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도서관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전시임에도 참여자분들께서 보여주시는 열의는 아마도 이번 전시회의 의미가 지금 이 시기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감하시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카라에서도 그러한 마음으로 전시회 '묻다'를 기획했고, 소규모 전시의 한계를 넘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문선희 작가와의 대화'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작가님의 놀라운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도 꼭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짧은 홍보기간에도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셨는데요. 신청자분들은 행사 당일에 일찍 오셔서 전시된 사진작품과 관련 책들을 꼼꼼히 살펴보시기도 하셨습니다.
작가와의 대화는 먼저 킁킁도서관에 전시되지못한 작품들을 참여자들과 함께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작품으로 바라봤을 때 그 색감마저 아름다워 보이는 사진 속 땅의 모습들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었던 걸까요? 문선희 작가님께서는 PPT까지 준비해오셔서 땅을 마주했던 당시의 경험을 생생하게 들려주셨습니다.
구제역과 AI로 인해 동물이 생매장당하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문선희 작가님은 하나의 물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살아있는 생명을 이렇게까지 대해도 되는가? 아무리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이라고 해도."
그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문선희 작가는 관련 공무원과 전문가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며 가축전염병에 대해 조사를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알아갈수록 더 충격적일 뿐이었습니다. 구제역은 쉽게 나을 수 있는 질병인데 전염을 막겠다는 이유로 질병이 의심되는 농장과 그 농장의 반경 3km의 다른 농장도 '예방적 살처분'이 집행되었으며, 살처분 당하는 동물의 99%는 가축전염병에 감염조차 되지 않았고, 동물 대부분은 산 채로 생매장 당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살처분 이유도, 과정도 너무나도 잘못되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다뤄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생매장지의 법정발굴금지 기간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자 문선희 작가는 집 근처 생매장지를 찾아갔습니다.
"정말로 이곳에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가?"
작가가 처음 가본 생매장지는 다른 땅들과 달리 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오리냄새'를 맡게 됩니다. 그 땅에 한 발 내딛은 순간, 문선희 작가는 낯선 촉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땅이 '물컹'거렸던 것입니다. 며칠동안 잊혀지지 않았던 땅의 물컹거림. 작가는 본인이 착각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매몰지를 찾았고, 이번에는 땅 전체에 곰팡이가 피어올라있었습니다.
"땅이 전체가 썩고 있구나."
한 생명이 죽었을 때 '땅에 묻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장례방식입니다. 그러나 2011년 구제역으로 동물을 생매장한 후 3년이 지난 땅은 그 생명을 썩힌게 아니라 그 땅 자체가 썩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생명이 죽어서 땅에 묻히고 썩는다.'라는 기본 원리를 땅이 거부하게 되었을까요?
사진작가가 아니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장면을 그냥 넘길 수 없었기 때문에 문선희 작가는 전국의 4800여곳 매몰지 중에 100곳만 가보자고 결심합니다. 매몰지 중에는 농사가 시작된 곳들도 있었습니다. 한 콩밭을 찾아가니 듬성듬성한 풀들 속 흰 조각들이 눈에 띄였고 가까이 가보니 그것들은 다 돼지 뼈였습니다. 옥수수 밭은 제대로 풀이 자라나지도 못했고, 또 다른 밭의 옥수수는 짓물러서 알 수 없는 액체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살육은 내가 동의한 적은 없지만, 내 세금과 내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법과 정책 안에서 이루어진 살육. 나는 공범이었다."
목격자로서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던 문선희 작가는 문득 자신이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잡식동물인 사람이 육식을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으나 생매장지 문제를 들여다보니 그 끝에는 '공장식 축산'이 있었고, 공장에서 나오는 싼 고기를 먹고 있는 작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민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불가항력 지시로 본인들의 동물을 생매장했거나 땅을 빌려주었을 뿐인데 '죽음'의 증거가 꼬리표처럼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광주 전시회에서는 한 관람객이 문선희 작가에게 와서 오리농장을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합니다. 관람객의 아버지는 AI 때문에 오리를 모두 생매장을 한 후 충격으로 치매에 걸리셨다가 결국 돌아가셨던 것인데요. 살처분은 본인 가족에게도 너무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되지만, 그럼에도 이런 전시회로 함께 마음 아파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눈물로 전했다고 합니다.
"고기가 비싸지고 귀해지면 좋겠다. 고기를 얻는 데 품이 많이 들고, 동물이 죽을 때 모두 슬퍼하며 비싼 고기를 적게 먹게 되기를 바란다."
문선희 작가는 국내에도 동물복지농장이 많아지길 바란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육식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동물들이 가축으로 길러져서 너무 싸게 유통되고 너무 많이 먹게하는 지금의 산업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말처럼 동물이 덜 고통받는 환경을 모두가 공감하고, 비싼 고기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여자분들은 문선희 작가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내내 차분히 집중하면서 듣고 계시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사진을 아름답게 찍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품에 대한 질문에 문선희 작가는 대답합니다.
"사진 속 곰팡이들은 인간이 저지른 짓을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풀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지요.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징그러울까요? 곰팡이는 우리 죄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지한 질문에서부터, 구제역이나 AI와 같은 가축전염병, 살처분이 각자의 삶 속에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는 이야기 등 경험과 감상을 나눠주신 참여자분들의 이야기 역시 굉장히 가슴에 많이 남습니다.
"사람들 마음에는 좋은 게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예술가는 사람들 마음에 불을 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전시회가 여러분의 감정에 불을 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을 보니 오히려 제 마음에 불이 켜진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문선희 작가님의 마무리 인사로 '작가와의 대화'는 무겁지만 따뜻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났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바로 떠나지 않고 못다한 이야기를 문선희 작가와 나누기도 했습니다.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작가와 참여자, 참여자와 참여자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순간들도 만났습니다. 인간인 우리가 함께 지은 죄처럼 느껴져서 나온 눈물이기도 하지만, 동물과 땅, 생명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도하며 흘린 눈물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에게 벌어지는 비극을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힘과 용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그런 만남과 이야기를 앞으로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선희 사진전 '묻다 - 동물과 함께 인간성마저 묻혀버린 땅에 관한 기록'은 4월 6일(목) 까지 진행됩니다. 주말 스페셜 오픈도 하루 더 남았습니다. 3월 25일(토)에는 특별히 도서관이 오픈되며,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전시회 관람과 도서관 이용이 가능합니다.
(전시안내: https://ekara.org/activity/education/read/8358)
또한 AI와 구제역의 비극을 멈추기 위하여 생명공감 킁킁도서관은 이 논의를 고돌북스 생명토크로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오는 4월 5일 수요일 저녁 7시 우희종 교수님을 모시고 <구제역, AI, 공장식축산: 인간이 만들어내고 비인간동물에게만 벌어지는 비극>이란 주제로 강연을 진행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신청안내: https://ekara.org/activity/education/read/8415)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아카이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