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역의 지방의회 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을 선출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불과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1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동물권대선대응연대(이하 ‘대응연대’)는 17개 광역자치단의 원내정당 후보자 55명의 공약을 살펴본 결과 동물복지 공약이 전무하거나 그 내용이 부실함을 확인했다.
대응연대가 중앙선관위 후보자 5대 공약, 후보별 블로그, 인터넷 기사 등을 참고해 파악한 결과 24일 기준 동물복지 공약을 약속한 이들은 전체 55명 후보 중 32명(58.2%)에 불과했다. 나머지 23명(41.8%)의 후보는 어떠한 동물복지 공약도 제시하지 않았다. 현재 국내 반려인구가 312만9천 가구, 700만 명에 이르며, 인간의 편익을 위해 사육되고 도축되는 농장동물이 연 10억 마리가 넘고,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도 2021년 기준 414만 마리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물복지는 간과할 수 없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시도지사 전체 후보 중 절반 가까운 이들이 단 한줄의 동물복지 공약조차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망을 넘어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제시된 동물복지 공약들도 대부분 반려동물에 한정되어 농장동물 및 전시동물, 실험동물 등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이 소외되는 현상을 보였다. 실제 반려동물 복지 공약 외에 농장동물 또는 전시야생동물에 대한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단 15명에 불과했으며, 실험동물을 언급한 것은 정의당 이정미 인천광역시장 후보가 유일했다. 반려동물 관련 공약 역시 과거의 공약을 재탕삼탕하거나 비슷한 공약을 돌려막기 하듯 내놓은 것들도 있어 실제 지역에서의 동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심케 했다. 가령 반려동물테마파크 조성은 지역을 불문하고 7명의 후보가 약속해 동물복지 공약을 약속한 후보의 1/4에 달한다.
심지어 동물보호 및 복지에 역행하는 공약을 제시한 후보도 있다. 울산광역시장 김두겸(국민의힘) 후보자는 시장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 범위 내에서 그린벨트 해제, 영남알프스 케이블카 건설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강원도지사 이광재(더불어민주당), 김진태(국민의힘) 후보자 또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조기 추진을 너나할 것 없이 제시하고 있다.
영남알프스는 우리나라 전체 포유동물 24종 가운데 멸종위기 동물인 삵, 담비 등 10종의 동물이 분포하여 서식하고 있고, 설악산 케이블카 설지 구역에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산양이 서식하고 있다. 경제성 분석도 미흡하고, 타당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케이블카 사업을 굳이 공약으로 넣은 것은 지역개발론을 등에 업고 표심을 잡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며 이런 인식을 지닌 행정기관장의 생태계 보전 역할이 얼마나 등한시될지 쉬이 가늠된다.
동물은 반려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 갇혀 오락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전시동물, 길 위에서 생존이 걸린 상황에 직면해 있는 길고양이, 각종 가축전염병에 노출되면서 극한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공장식 축산 속 농장동물, 동물학대 온상 속에서 처절히 죽어가는 개식용 산업 속 소위 식용개 등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동물복지 저해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광역자치단체장은 앞서 제시한 공약들과 함께 보다 거시적인 관점을 기반으로 촘촘한 동물복지 정책을 마련하고 적극적 행정집행의 역할에 임해야 한다. 이에 동물권대선대응연대는 다음의 사항을 요구한다.
(1) 민관협력체계 및 행정기관 동물보호 역량을 강화하라
동물복지정책이 정부차원에서 밑그림이 그려진다면 지자체에서는 실행을 통해 그림을 완성한다. 하지만 동물복지정책의 실행에 있어 동물학대 대응으로부터 유기동물의 구조 보호, 동물 관련 불법영업행위에 대한 감시 등 여전히 민간에서 많은 부분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한쪽의 노력과 역량만으로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사회적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민관협력의 중요성 역시 점점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단체와의 협력체계를 갖추기는 커녕 지역 내 활동하는 단체들 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대립하는 행정기관들이 허다하다. 이를 위해 민관네트워크를 구성해 주기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더불어 동물보호 및 복지 문제를 인지하고 적극적 행정조치를 이행하도록 공무원 대상 동물보호 교육이 필요하다. 행정기관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애니멀호딩 및 길고양이 학대, 복지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농장동물 및 체험동물원 보유동물 사육실태 및 열악한 유기동물보호소의 현실 등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인 해결 방안 도출의 역할을 해야 한다.
(2) 동물과 더불어 살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라
이제 반려동물은 우리사회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다른 동물들 역시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물과의 공존을 말하기에는 우리의 준비가 부족하다. 가장 먼저 반려동물만 하더라도 양육 중 발생하는 문제행동 등에 대해 상담이나 교육을 받고자 해도 찾기가 쉽지 않아 많은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관련 정보를 취득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집밖으로 나와 이동하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다. 취약계층의 양육은 더욱 힘겹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수의진료 바우처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공공동물병원 등 수의진료영역에서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동물등록 및 중성화 지원을 통해 관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의도치 않은 번식 예방할 필요가 있다.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반려동물의 건강은 더 악화되고, 반려인의 주거환경이나 복지 역시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동반사회 내 어려움을 다각도로 파악하고 동물과 더불어 살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정밀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야생동물의 피해를 막기 위한 시설개선 등의 노력도 요구된다. 최근 청주시에서는 "청주시 소형동물 인공수로 폐사 및 동물 찻길 사고 저감 조례"를 제정해 인공수료에 수로 탈출시설을 설치하거나 도로에 생태통로 설치 및 연석높이 개선 등의 사업을 추진토록 했다. 이처럼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을 개선하고 불필요한 동물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어 행정기관의 보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실행이 요구된다.
(3) 동물의 이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수립 및 시행하라
살충제, 항생제를 과다 사용하며 고밀도 사육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공장식 축산은 농장동물 복지를 심각하게 저해한다. 그나마 시행되고 있는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제로 복지농장이 존재하나 극소수에 불과하고 고기소비가 높은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 정부와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심도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육환경은 매년 발생하는 가축전염병 대응에 취약하기 때문에 대규모 살처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등은 대한민국 안에서 축산농장이 다수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다. 농장동물 복지 확보와 지속가능한 농장은 연결될 수밖에 없는 바 광역자치단체의 전향적 정책과 더불어 도청 및 시청을 위시한 공공기관 내 채식선택권을 확산하는 변화도 꾀해야 한다.
중앙선관위 이슈트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여전히 지역 발전, 경제 회복, 민생 정책 등 인간 중심적 공약이 우선시되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동물을 소외시키지 않고 복지를 확보하며 생명을 보호하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발굴되어야 하고, 행정기관을 통한 현실화를 목표로 더욱 가열찬 노력이 요구된다.
시대 흐름에 따른 생명감수성이 반영되어 모든 동물 의제를 아우르는 촘촘한 동물복지 정책을 마련하고 행정기관의 장으로서 적극적인 집행자의 역할을 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2년 5월 26일
동물권대선대응연대: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나비야사랑해, 다솜, 대구동물보호연대,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동물구조119, 동물권단체하이, 동물권행동카라,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동물보호단체행강, 동물복지문제연구소어웨어, 동물을위한행동, 동물자유연대, 생명다양성재단,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비글구조네트워크, 전국동물활동가연대(총 17개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