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마리아주) 사망 3주기,
한국마사회에 퇴역마 보호·관리 책임 물어
- 마사회 말복지 사업 론칭 홍보된 퇴역경주마 ‘천지의빛’ 공주 폐마목장 생존마 중 하나로 밝혀져
- 민간에서 힘모아 공주 폐마목장 생존마 17마리 보호중, 도움의 손길 절실
1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말 복지 수립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퇴역 경주마 까미(마리아주) 사망 3주기를 맞은 11월 7일 오전 10시, 한국마사회 앞에서 까미를 추모하며 최근 발생한 공주시 퇴역마 학대 방치 사건에 대해 마사회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2021년 11월 7일, 3년 전 오늘 퇴역 경주마 까미는 한국방송공사(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중 와이어 줄에 묶여 제작진에 의해 쓰러짐 당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 경주마로 이용되고 은퇴 후에도 영상 촬영의 소모품으로 이용되며 잔혹한 죽음을 맞았고,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퇴역 경주마 복지를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길 요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변화는 없다.
더구나 지난 10월 15일 공주시 한 무허가 농장에서 방치돼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말 15마리와 이미 목숨을 잃고 오물로 뒤덮인 말 8마리 사체가 발견되며 소위 ‘폐마 목장’의 실상이 알려졌다. 경마장, 승마장 등에서 이용되다 다치고 나이 들어 갈 곳 없는 말들을 치료하지 않고 굶기며 방치하는 이러한 곳들은 전국에 수 곳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간 한 해 평균 1,300여 마리 경주마가 은퇴하는 한편으로 정책적 지원 속에 경주용으로 끊임없이 말들이 태어나고 있다. 경주마의 과잉생산과 육성 정책으로는 지금과 같은 생명 폐기 처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제2, 제3의 까미는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유지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마사회에서 연간 마권 판매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 액수의 수입에 비해 말들의 보호나 복지 비용에는 터무니 없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며 “농림축산식품부 2024년 ‘말산업육성지원’에 경주퇴역마 활용지원 사업은 고작 4.3억원으로, 전체 사업 예산의 2.4%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마 경주 실황을 수출해 K-콘텐츠로서 한국 경마를 알리고 한국 말산업 확장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마사회는 국내에서 정말 처참하게 죽임당하는 말들을 외면하면서 결코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김란영 제주비건 대표는 “인간은 평생 벌 수도 없는 돈을 벌어들였던 퇴역 경주마들은 경마가 끝난 지 72시간도 안돼 도축되어 말고기 시장에서 450g당 2만 원에 팔린다”며 “자그마치 45% 경주마들이 죽음으로 퇴역하고 있고, 나머지 말들은 어디론가 흘러가 까미처럼 방송용 소품이 되는 등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며 퇴역 경주마가 처한 실태를 적나라하게 알렸다.
올해부터 추진되는 마사회 ‘생애주기 말 복지 지원 사업’을 언급한 비글구조네트워크 김세현 대표는 경주마에서 승용마로 전환된 “‘천지의빛’ 역시 골절 부상으로 재활지원 프로그램을 지원받았으나, 공주시 말 방치 학대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며 “동물 학대 로부터 살아남은 말들을 보호하는 현장에서 마사회와 농림부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발언했다. 장희지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도 “인간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한 퇴역 경주마들에게 주어지는 삶은 착취의 반복이자 죽음이라는 현실에 분노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말뿐이고 보여주기식 정책은 그만 내세우고, 착취 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말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과 복지 체계를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발언한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달리는 말의 다리에 로프를 걸고 잡아당겨 강제로 넘어뜨린다는 야만적인 방식의 촬영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뒤에도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함이 없다”며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던 퇴역마의 현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주어 대명사가 된 마리아주에게 이번 공주시 폐마 목장 사건이 참회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라며 애도와 함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까미의 죽음을 기억하고 공주시에서 사망한 말들을 애도하며 추모의 의미로 헌화를 진행했다. 시민 최미정 씨는 추도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생명의식과 윤리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며 지금까지 죽어간 수많은 말들과 생명들이 따뜻하고 다정한 세상에서 안식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바랐다.
기자회견 후 범대위는 한국마사회 말복지센터와 면담을 진행해 공주시 현장에 남아있는 피학대 동물인 말들에 대한 보호·관리 방안 마련을 요구했고 사태 해결책을 적극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범대위는 공주시 피학대 동물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으로 말들의 복지 확보를 위한 법과 제도 마련을 위해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기자회견문
한국마사회는 거듭되는 피학대 동물 보호·관리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즉각 마련하라!
11월 7일, 까미(마리아주)가 사망한 지 올해로 3년이 되었다. 2021년 한국방송공사(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촬영 중 낙마 장면 연출을 위해 퇴역 경주마인 까미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달리게 하고 까미가 전속력으로 달리던 중 와이어를 잡아당겨 넘어지게 하면서 큰 상해를 입혔다. 당시 촬영 현장 영상이 공개되면서 전국민적 공분을 샀고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퇴역 경주마의 보호 및 관리 체계 구축을 한국마사회와 정부에 요구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떻게 변했나. 까미를 학대한 드라마 연출자, 무술감독, 까미 소유주 등은 모두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다. 여러 차례 공판을 거쳐 지난 1월 17일 피고인들에게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1천만 원 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까미 소유주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6월에 비해 감형된 선고 결과에도 불복해 항소했고 바로 오늘은 해당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이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경주에서 은퇴하고도 촬영 현장의 도구로 이용되고 생의 마지막까지 학대당해야 했던 까미의 죽음을 기억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피고인에 엄중한 처벌이 내려지길 바란다.
제2의 까미 사건 발생을 막고자 동물보호단체들은 경주마 복지를 위해 지속해 목소리를 내왔으나, 경주마가 처한 잔혹한 실태는 여전하다. 지난 5년간 한해 평균 1,300여 마리 경주마가 은퇴하는 한편으로 정책적 지원 속에 경주용으로 끊임없이 말들이 생산되며 절반가량의 퇴역 경주마가 안락사되거나 도축 당하고 있고 수십, 수백 마리의 말들은 행방조차 추적하기 어렵다. 경주마의 과잉생산과 육성으로 인한 생명 폐기 처분 방식이 점차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에는 공주시 한 무허가 농장에서 방치돼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말 15마리와 이미 목숨을 잃고 분뇨로 뒤덮인 말 8마리의 사체가 발견돼 소위 ‘폐마 목장’의 실상이 알려졌다. ‘폐마 목장’은 경마장과 승마장 등에서 병들거나 늙어 갈 곳이 없어진 말들을 데려와 방치하는 곳들로 전국에 수 곳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농장주는 2022년에도 충남 부여군에 위치한 폐축사에서 말들을 방치했던 인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자이다. 그는 이번 공주시 사건에서도 말에게 물과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고 방치해 8마리를 사망케 하고 불법 도살 정황까지 확인돼 비글구조네트워크에 의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경찰 고발 후에도 농장주는 말 4마리를 현장에 데려와 2마리가 추가로 사망했고 현재 17마리 말들이 살아남아 있다. 피학대 동물인 말들이 살아온 이력을 살펴보면, 출생지가 독일, 미국으로 해외인 말부터 제주에서 태어나 내륙으로 이동한 말이 있는가 하면 소재가 총 23번이나 변동된 말도 있다. 경주마로 이용된 말들이 지금껏 벌어들인 상금을 합치면 총 10억 원에 달한다. 사람의 수익원으로 짧은 기간 경주마로 이용된 후 은퇴한 말들의 귀착지가 결국 ‘폐마 목장’이고 이곳에서 방치돼 죽음에 이르는 일은 비윤리적이고 비참하기 그지없다.
매년 경마를 통해 수조 원을 벌어들이는 한국마사회는 경주마를 이용해 얻은 이익 중 일부를 경주마 복지를 위해서 써야 한다. 공주시 학대 현장에 그대로 살아 남아있는 17마리 말들에 대해 한국마사회의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하며, 그중 7마리는 수의사의 진단으로 후지마비 질병이 확인돼 꾸준한 치료가 요구된다. 한국마사회는 피학대 동물인 공주시 말들에 대해 수의 진료, 건초 등 말의 보호와 치료, 향후 말들의 거처를 찾기 위한 논의를 통해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현재 경주에 이용되는 말들은 마명과 품종, 생년월일 등을 등록해 관리하고 있으나, 경주마의 은퇴 후나 경주마가 아닌 말들에 대해서는 그 정보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실제 공주시의 말 중 3마리는 살아있는 상태임에도 ‘폐사’로 기록돼 있거나 소유주와 실소재지가 다른 정보를 가지는 등 부실한 관리체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유럽연합에서도 말, 조랑말, 당나귀 등 모든 말에 대해 말 여권이 필수이며 영국의 경우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삽입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말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 생애주기를 관리할 수 있도록 모든 말에 대한 이력제가 의무화되어야 한다.
퇴역 경주마들이 비명횡사하는 사이, 경주마 생산에 대한 정책적 지원 속에 한해 은퇴하는 경주마만큼이나 많은 수의 경주마가 새로 생산되고 있다. 자연수명 25~30세의 말이 경주마로 이용되는 기간은 평균 2~3년에 불과하며 인간의 연령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에 해당하는 이른 시기에 은퇴하고 방치를 전전하다 어린 나이에 죽음에 이르고 있다. 말 학대 방지 및 말 복지에 대한 보장이 전무한 채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 생산이 계속될 수는 없다. 한국마사회와 농림축산식품부는 경주마의 과잉생산과 육성으로 인한 생명 폐기처분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또한, 동물학대의 장(場)인 ‘폐마 목장’에 대해서는 전수조사 및 폐쇄가 시급히 이뤄져야 하며, 퇴역 경주마와 학대당한 말들이 머물 수 있는 말 보호시설이 한시바삐 조성되어야 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경주마가 본래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더라도 관련 법령이 정한 기준과 방법에 따라 적정한 보호와 관리를 통해 해당 동물의 복지를 증진하도록 하고 질병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인도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퇴역 경주마의 소유권을 가진 마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터무니없는 산업계의 주장과 소관 부처의 소극적 태도로 해당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주마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마주에게 생명체인 말의 보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과도한 소유권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산업계는 말을 비롯한 동물의 복지 확보라는 시대적 요구를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3년 전에도 비통한 심정으로 외쳤던, 말들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을 재차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한국마사회는 공주시 피학대 동물의 보호·관리를 위해 적극 나서라!
하나, 농림축산식품부는 말의 전 생애주기 관리를 위해 이력제 의무화하라!
하나, 한국마사회와 농림부는 경주마 과잉생산과 육성으로 생명 폐기처분 그만하고 경주마 번식 규제와 더불어 ‘폐마 목장’ 폐쇄하고 말 보호시설(Sanctuary) 조성하라!
하나, 농림부와 국회는 퇴역 경주마 복지 확보를 위해 동물보호법 개정을 추진하라!
2024년 11월 7일
말 복지 수립 범국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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