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의 겨울을 견디고 10번의 봄을 맞은 길고양이 '삼선이'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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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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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이는 아주 아름다운 카오스 고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06년 추운 겨울 거리를 남실거리며 다니는 녀석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거리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다니는 고양이들이 아주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양이들을 싫어했습니다. TNR은 물론 길고양이 보호 대책이 전혀 시행되지 않던 길고양이들의 암흑기에 그렇게 ‘삼선이’는 겨울을 나고 있었습니다.

 

2007년 구정 즈음, 고양이를 너무 싫어하던 한 분이 마당에 오는 고양이들을 구청에 민원을 넣어 잡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야생고양이들은 포획되면 ‘개’와 동일하게 한달간 계류 후 안락사 되었습니다. 길고양이들은 대개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낯선 환경에서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거나 전염병으로 한달을 채우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혹여 한달을 버틴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야생고양이에게 입양은 최선의 선택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입양하려는 사람도 없어 결국 죽임을 당했으니까요. 이런 야만스러운 시절에 삼선이는 포획되었습니다.

 

‘그녀’는 앞발에는 흰 매니큐어를 발랐고 뒷발에는 하얀 발목양말을 신었으며, 소담한 꼬리털을 가진 예쁜 고양이입니다. 하지만 무슨 사고로 그랬는지 뒷다리 하나가 뻗정다리가 되어 절고 다녔고 꼬리도 한쪽으로 휘어져 있었습니다.

 

삼선이가 잡히기 전날 밤, 추운 거리에서 그녀가 다리를 절며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부르니 녀석이 깊은 눈으로 마주봤습니다. 바로 다음날, 삼선이가 잡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녀석은 포획틀에 놓인 얼어붙은 치킨을 먹기 위해 옆집 마당에 들어갔고 그렇게 잡혔습니다. 삼선이의 곁에는 짝으로 보이는 태비 고양이 한 마리가 덫의 철망을 사이에 두고 체온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삼선이를 살리기 위해 TNR이라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드리고 설득하여 인계받았습니다. 그렇게 삼선이와 10년 세월을 넘긴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삼선이는 당시 임신 초기를 조금 넘긴 상태였고 염주알만한 새끼 8마리를 품고 있었습니다. 절고 있는 다리는 뼈가 부러진 후 잘못 굳어진 상태로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고 그럭저럭 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렇게 녀석은 수술을 받고 이표식을 한 후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이 즈음 동네의 다른 고양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TNR도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고양이들에 의해 삼선이가 밀려나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길고양이를 연민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혐오하는 마당에 고양이 수가 늘어나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암컷 고양이들은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삼선이가 그랬습니다. 거기다 뱃속의 새끼까지 잃은 게 안타까워 힘이 닿는 한 집중적인 보살핌을 주었습니다. 다행히 영리한 삼선이는 잘 적응해 주었습니다. 동네 다른 수컷 고양이들도 상대적으로 장애가 있고 덩치도 작은 삼선이를 몰아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새로 다른 지역에서 유입되는 고양이, 또는 주인에게 버려져 전혀 사회화가 되지 않은 유기묘들이 나타날 때 간혹 밥자리 다툼이 일어났고, 사나흘 혹은 일주일 정도까지 삼선이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유기묘 순돌이에게 쫓기다 정말로 큰 교통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는데, 동네분이 차를 정지시켜주어 사고를 면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삼선이는 2주 동안 밥자리에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웠습니다. 새로 유입된 고양이들은 최대한 TNR 해 주고, 유기묘 입양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동네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밥자리를 늘려가면서 보살핀 결과 삼선이는 2015년까지 영역을 잃지 않고 힘든 길고양이의 삶이나마 잘 살아 주었습니다. 중간에 며칠씩 몸이 아파 밥을 못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삼선이는 매번 찾아와 도움을 구했고, 영양식과 약으로 위기를 모면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삼선이는 열 번의 혹한을 견디고 열 번의 꽃 피는 봄을 맞게 되었습니다.

 

길고양이 생활 10년, 사람의 인생만 파란만장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고양이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으며 무서운 차량의 굉음과 장대비, 허벅지까지는 빠지는 눈, 한겨울의 추위와 칼바람, 시멘트 덩어리 도시에서 작은 몸하나 숨길 곳을 찾기 위한 방황, 고양이 혐오자의 따가운 눈총과 돌팔매, 추위를 피해 들어간 창고에 일주일간 갇힘 등 이 모든 것들이 작은 삼선이가 견뎌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삼선이는 2007년 수술 당시 완전히 자라 임신을 한 성묘였고 최소 만 1살은 넘은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2015년 들어 녀석은 눈에 띄게 털이 부석해지고, 입안 염증으로 밥을 잘 못 먹으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체중도 상당히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이미 녀석은 10살을 넘긴 나이였습니다.

 

길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몸이 아파지기 시작한 녀석을 두고 깊은 고민의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날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해답은 못 구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거리에서 살아 온 삶이 가혹했지만 자신의 고향인 거리에서 죽음을 맞는 게 자연스럽거나 혹은 불가피하다’ 부터, ‘10년 세월을 견뎌온 그녀를 이제는 거리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어야한다’ 까지, 하루에도 수 십 번 생각은 널을 뛰었습니다.

 

동네 분들도 이제는 늙어 꼴이 추레해진 삼선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밥을 주며 보살피는 분이 너무 불쌍해서 못 보겠다고 호소를 해 오기 시작했다는 점, 또한 삼선이는 여전히 야생고양이라 사람을 따르지 않아 입양은 불가능하여 남은 삶을 좋은 위탁처

에서 보내려면 상당한 금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고민까지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았습니다.


녀석과 그동안 가져온 10년 세월의 무게만큼 3650일이 넘게 녀석을 마주치고 마음에 담아 온 그녀에 대한 연민의 무게도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현실적인 판단과 주저하며 자제하라고 말하는 이성을 떨치고 오직 마음이 가는 길로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너무나 영리하여 최초 TNR 시 외에는 절대 잡을 수 없었던 삼선이를 포획하여 치료하고 좋은 위탁처로 보내는 일이 남았습니다.

 

삼선이는 절대로 포획틀로 잡을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포획틀을 놓으면 밥도 안 먹고 멀리 가 버렸습니다. 쉘터를 만들어주고 구멍을 막으려고도 했으나 쉘터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 여간 노력 끝에 결국 삼선이의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맛있는 먹이를 주고 그것을 먹는 동안 소쿠리를 덮어 씌워 잡았습니다. 소쿠리가 씌워진 삼선이를 보는 순간, 세상은 일순 멈춘 듯 아름답고 경건했습니다. 거리에서 10년을 넘게 살아온 녀석을 병원으로 옮기는 길...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결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 입원당시 삼선이의 체중은 2.9Kg, 탈수 증세가 심하고 잇몸 염증으로 통증도 심했을 거라고 하십니다. 살뜰한 보살핌을 받은 결과 체중이 3.4Kg으로 늘었고 생각보다 녀석은 병원 생활에 작 적응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녀석의 얼굴은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삼선이가 병원 치료를 마치고 위탁소로 떠나는 날입니다. 삶을 위해 투쟁했던 이 거리, 힘들 삶이었지만 고향이었던 이곳에 인사를 시켜주기 위해 데리고 왔습니다.

 

 

먼지 가득한 찻길 옆, 망을 보던 담장을 구경합니다. 친구들의 냄새가 납니다.




밥을 주시던 마음씨 좋으신 식당 주인 아주머니, 삼선이가 싫다며 쫓으셨던 동네분도 나오셔서 ‘이렇게 예쁜 고양이였냐, 정말 잘됐다’며 눈시울을 적시셨습니다.


 

위탁소에서 지내는 삼선이의 모습입니다. 녀석은 이제 같은 방의 친구들과 입도 맞추고, 캣타워나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보기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배고플 걱정도, 혹한의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지만 보이는 풍경은 이전과 다릅니다. 친구들도 없습니다. 밥을 챙겨 주던 고운 손과 정든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녀석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사람의 마음을 알까요? 더 이상은 거리에서 버틸 수 없는 자신을 누군가 깊이 연민했고 홀로 길에서 죽어가게 내 버려 둘 수 없었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낯선 곳으로 보내야만 했던 고민의 나날과 아픈 마음을 말입니다.

 


맺는 말 :

현재 한국의 길고양이 보호 대책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직은 TNR 조차도 잘 정착되어 있지 않고 길고양이 밥 주는 문제로 다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길고양이의 복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물적 자원 사회인식개선까지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삼선이가 살던 지역은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TNR을 진행한 지역으로,
거의 모든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어 지역내 고양이 수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지역입니다.
삼선이가 10년을 넘게 살고 또 마지막 순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지속적인 TNR로 영역을 잃지 않고 동네에서 큰 마찰 없이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효과적인 TNR의 정착과 길고양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
그리고 아프거나 다치거나 늙은 고양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막대한 자원의 마련까지..

삼선이는 우리에게 앞으로 갈 길이 너무나 멀다고 말해줍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정책팀








댓글 1

김민아 2016-09-22 01:11

어떤 것이 최선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삼선이가 힘들거나 아프지 않고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기를, 모든 생명이 고통받지 않고 평온하게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