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길고양이와 아기 길고양이의 세상 여행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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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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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길고양이의 세상 여행

 

삼선이는 최소 10번의 겨울을 길에서 견디고 10번의 봄을 맞은 길고양이입니다. 수십번 맞았을 죽음의 위기를 넘길 만큼 현명하고 강인한 녀석이었지만 나이가 들자 더 이상 길에서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처참한 모습에 이제 지켜보는 것이 고통이 되었을 즈음 녀석은 동네분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케어테이커의 노력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 작은 몸으로 감당해왔던 삶의 기쁨과 고통을 뒤로하고 위탁보호소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몸은 집안에 갇혔지만 이제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았으며 돌팔매나 자동차바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10번의 겨울을 견디고 10번의 봄을 맞은 길고양이 '삼선이‘ 

https://www.ekara.org/activity/cat/read/7652

 

일 년 여 후 어느 날부터 삼선이의 볼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인근 병원에서 진료한 결과 큰 병원에 가라고 합니다. 판단을 내리기 위해 검사와 진단이 필요했습니다. 검사를 위해 녀석을 데리고 오는 길, 놀라지 말라고 이름을 계속 불러주었습니다.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야생고양이였던 삼선이가 웬일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입을 벌리기 힘들어 입안에서 맴도는 작은 목소리로 ~ ~ ~”... 삼선이는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원망 없는 눈망울로 눈물 흘리는 케어테이커를 조용히 응시했습니다. 결코 잊지 못할 경건하고 아름다운 이해와 용서 그리고 치유의 눈빛이었습니다.

 

진단 결과는 암이었습니다. 녀석의 턱 관절에 침투한 암은 관절까지 녹여버린 상태로 치유 불가능 상태였습니다. 암은 감정도 없고 이유도 없이 작은 생명의 마지막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편안히 보내줘야 할까...? 하지만 녀석은 벌어지지 않는 입이지만 혀로 핥아 영양식을 먹었습니다. 그간 삼선이의 삶을 살펴보면 극히 독립적이고 강인하며 현명했습니다. 삼선이라면 삶의 주인으로서 나 자신에게 모든 판단을 맡겨 달라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병원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최후까지 자신이 삶의 주인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위탁보호자분도 아이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어 했습니다.

 

다시 위탁소로 아이들 데려갔습니다. 녀석이 다시금 대답을 합니다. “삼선아~” “~”.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도착하여 케이지 문을 열자 녀석이 냉큼 살던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그날은 비가 참 많이 내렸습니다.

 

한 달 반 후 녀석은 위탁보호자님의 품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사람의 손길을 허락하더니 일이주 전부터는 안아주는 것도 허락했다고요.

 

너무 슬픈 기억을 감당해 내는 일은 당사자 몫입니다. 녀석이 살아 온 삶의 마지막, 암으로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과 늙어 바싹 마른 몸의 모습은 녀석의 존엄한 마지막을 기리며 케어테이커와 위탁보호자의 마음에만 담아 놓습니다.


<중성화 수술 후 3년차의 아름다웠던 삼선이(2009)>


 

아기 길고양이의 세상 여행

 

아기 길고양이가 주차하던 차에 그만 치이고 말았습니다. 옆에 노련해 보이는 어미 고양이가 있었지만 철부지가 당하는 사고를 막지 못했습니다. 어미 고양이 옆에 다른 아기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미는 아마도 이번 출산에서 겨우 한 마리를 살려낸 듯합니다. 이 고양이 모녀는 이 지역에서 전혀 볼 수 없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살기 위해 다른 곳으로부터 이사 온 뒤 얼마 되지 않아 낯선 곳에서 비극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고를 당한 뒤 아기 고양이는 하반신을 끌며 앞발로 도망가 다른 차 밑에 숨었습니다. 어미가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구조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차를 둘러싸고 구조자가 담요를 들고 차 밑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아기는 앞발만으로도 재빨리 도망을 다녔습니다. 이렇게 지체하다간 다친 부분이 더 악화될텐데... 어쩔 수 없이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해 아기 고양이를 구석으로 몰고 담요로 덮쳐서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아기 고양이는 토실토실하고 길고양이 치곤 털도 깨끗했으며 귀에 진드기도 없었습니다. 사고를 당하기전까지 어미가 정성으로 돌본 게 분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미는 아직 어린 새끼에게 훈육도 철저히 해 놓았습니다. 그 아픈 몸을 하고도 녀석은 하악질과 경계가 여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뒤 진통제 처치를 했음에도 아기는 전혀 밥도 먹지 않고 기운이 없었습니다. 지금 봐선 하반신이 이미 마비되어 치료는 물론 생존도 힘들 것으로 판단되었지만 아기 고양이의 경우 수술 처치로 극적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어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척추는 절단이 나 있었지만 신경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수술을 해 볼만 하고, 아직 어려서 순화도 가능하다고 하니 이대로 포기하면 후회가 남을 거니까요.

 

이 세상이 아기와 어미 고양이에게 너무 가혹하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술비 걱정은 머리를 흔들어 지우려했습니다. 돈 생각을 해 벌을 받은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세상이 무심해서일까요. 아기 고양이는 척추 신경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습니다. 수술은 불가능하며 설사 살아난다 해도 평생 하반신 마비는 물론 자발적인 배변과 배뇨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아기 고양이를 위해 편안히 생을 마감해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아기는 약 두 달 여 세상 여행을 마쳤습니다.

 

새끼가 단 한 마리라 아마도 어미는 좀 더 오래 이 아기를 길에서 보살피려 했을 것입니다. 아기도 외동이로 어미의 사랑을 많이 받아 병원으로 온 뒤에도 어미가 많이 그리웠을 테고요. 그렇게 이 세상 많은 슬픔과 이별의 사연 속에 이 고양이 가족의 사연이 추가되었습니다.

 

아기의 한 줌도 안 되는 유골은 예쁜 주머니에 담겨있습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좋은 곳에서 보내줄 예정입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미에게도 아기의 마지막에 누군가 함께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짧은 세상 여행을 마치고 고요하게 잠든 아기 고양이>


 

맺는 말:

서울시는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후 방사를 10여 년간 시행한 결과

201325만 마리로 추정되던 길고양이가 지금은 13만 마리로 줄어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중성화 10서울 길냥이 반으로 줄었다. http://bit.ly/2EDqRLD)

 

TNR이 길고양이 복지의 근간이 되는 중요 정책임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서울시를 제외하면 아직 우리나라는 길고양이 TNR조차 일반화되어 있지 않으며,

제일 앞서가는 서울시의 TNR도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지적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이제서야 초보적인 TNR이 정착되어 가는 현실이지만

카라는 동물보호단체로서 TNR 이후의 보다 상향된 길고양이 복지 정책과 제도 마련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고양이 복지 이슈는 이제 TNR을 넘어 공식 급식소 설치와 겨울 집재개발지역의 길고양이 보호,

거리에서 질병을 앓거나 TNR 후 거리에서 늙은 고양이,

사고로 외상을 입은 길고양이들의 보호책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정책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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