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실이가 사는 동네는 서울 관악구의 한 재개발지역입니다. 언덕이 굽이굽이 이어진 좁은 골목. 그 사이에는 오래된 다세대주택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이곳의 집들은 저녁에도 등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녁거리에는 가로등 불만 깜빡입니다. 가로등 빛이 닿는 곳엔 사람들이 떠나며 버리고 간 짐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밥 짓는 냄새도, 찌개 끓이는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어느새 사람 사는 집보다 빈 집이 많아졌고, 몇 달 뒤면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도 모두 떠납니다.
봉실이와 카라의 첫 만남은 현장답사 때였습니다. 2019년 동물권행동 카라와 서울시가 진행한 재개발‧재건축 지구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 지원 사업으로 봉실이가 사는 동네를 지원하게 되었고, 카라의 활동가와 케어테이커가 만나 재개발지역을 같이 돌아봤습니다. 케어테이커 들은 살 곳을 잃을 길고양이 걱정에 속이 까맣게 타고 있었습니다. 이주를 앞두고도 길고양이를 돌보느라 이사 계획을 늦추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길고양이들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주를 시작하면서 길고양이에게는 여기가 천국 같았을 겁니다. 오래된 아파트의 보일러실에 들어가도 쫓아내는 이가 없으니 들어가 바람도 피하고 비도 피합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박스와 바구니는 널려있습니다. 좁은 바구니 안에 몸을 욱여넣고 가족끼리 그루밍도 해줍니다. 이 날 마주친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여러 마리가 함께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봉실이는 달랐어요. 길 생활을 오래한 암컷고양이였는데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구내염을 앓는 듯 입가가 지저분했습니다.
중성화 수술을 위해 포획을 진행하는 날, 재개발지역 안쪽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중성화가 시급해 골목 깊숙한 곳에 중점적으로 포획틀을 놓기로 했습니다. 봉실이가 주로 생활하는 지역은 재개발지역의 가장자리였고, 봉실이가 포획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봉실이를 다시 마주쳤습니다. 영역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포획틀 안에 들어가 있는 봉실이. 구내염 때문인지 전보다 훨씬 말라보였습니다. 앙상한 다리와 허리를 보면, 중성화 수술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봉실이에게 더 필요한 건, 중성화 수술이 아니라 구내염 치료였습니다. 급히 봉실이의 치료에 대해 논의했고 중성화 수술뿐 아니라 구내염 치료까지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적처럼 병원에 가게 된 봉실이의 상태는 역시나 좋지 않았습니다. 구내염에, 심한 탈수 증상. 성묘인데도 몸무게는 2kg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탈수 치료가 최우선, 구내염 치료는 그 다음이었고 중성화 수술은 먼 얘기였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수술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길에서 2kg밖에 되지 않는 몸을 이끌고 어떻게 버텼을까요? 체중은 2kg이지만, 아마 봉실이는 그 2kg의 몸이 너무 무거웠을 것입니다.
봉실이는 입원 후 매일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체중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원인 파악에 들어갔고 정밀한 혈액검사 결과 봉실이에게 내려진 병명은 신부전이었습니다.
이미 길에서 오랫동안 아픈 신장으로 살아왔기에 완치를 기대하긴 어려웠습니다. 카라 활동가도 케어테이커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완치되어 방사해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봉실이가 사는 곳은 재개발지역이라 돌봐주던 케어테이커도 계속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봉실이가 지낼 수 있는 임시보호처와 입양처를 수소문해도 아픈데다 사람까지 경계하는 봉실이의 여생을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없었고요. 봉실이를 위해 여러 차례 회의가 열렸고 봉실이는 결국 카라가 품기로 결정했습니다.
전국의 도시정비구역은 2,000개가 넘습니다. 얼마나 많은 동물이 사는 곳을 잃게 될지, 얼마나 많은 폐기물이 발생하여 환경에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는 이는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수익이 우선시되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의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동물이나 환경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도시정비에 대한 정보는 곧 ‘돈’이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압니다. 그러는 사이, 길고양이들은 안전하게 다른 서식지로 이사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잃게 되고요.
국토교통부는 올해 상반기 재개발・재건축 관련 정보를 관리할 목적으로 “도시정비사업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 서울시 재개발 길고양이 보호 조례가 서울시 동물보호조례 24조 3항으로 1월에 공포되어 시행중에 있습니다.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이러한 제도를 기반으로 도시 속에 살아가는 길고양이와의 아름다운 공존이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카라는 2015년부터 재개발지역의 길고양이에 대한 고민과 활동을 이어왔고, 2019년에는 관악구, 성북구, 동대문구 5개 재개발지역 케어테이커와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2020년에도 도시재정비구역 길고양이를 위한 활동은 계속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