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카라동물영화제가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7일간 온, 오프라인 공간에서 열렸습니다. 2018년 단 6편의 영화로 시작한 카라동물영화제가 어느덧 3회를 맞이했습니다. 올해는 더 다양한 영화와 부대행사로 카라동물영화제를 기다려주시는 관객을 맞이하고자 했으나 팬데믹 한가운데 카라동물영화제는 기존의 방식대로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 국면이 계속 이어지면서 카라동물영화제는 비대면,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했고, 전 세계적인 위기의 시기에 동물영화제가 관객들과 나눠야 할 분명한 이야기가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2020년 카라동물영화제의 슬로건인 "우리는 (인간) 동물이다"는 많은 의미를 함축합니다.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기후 위기, 지구 온도 상승, 플라스틱 쓰레기, 공장식 축산의 폐해.. 이 모든 것이 그동안 인간 이외의 모든 동물을 위기 속에 몰아넣었던 인간동물의 폭력이자 전 지구적 위기가 바로 인간 스스로 만들어온 결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는 영화제 슬로건이 던지는 많은 질문과 연결 짓는 11개국의 21편의 영화를 선정했습니다. 영화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도 하고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합니다. 7일간의 짧은 영화제 기간이었지만 각자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영화가 남기고 간 이야기들을 후기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 했습니다.
개막작 <애니멀 피플> 단 한 번의 오프라인 상영
10월 29일, 신촌 아트레온 CGV에서 제3회 카라동물영화제 개막작 <애니멀 피플> 단 한 번의 오프라인 상영이 있었습니다.
연초에 계획하고 협력했던 CGV 명동 라이브러리가 코로나의 여파로 잠정 문을 닫게 되어 급작스럽게 상영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신촌 아트레온 CGV 180석 규모의 상영관으로 장소를 변경하고 안전을 우선시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80여 석의 유효 좌석만 오픈했습니다. 그리고 그 좌석을 관객분들이 모두 채워주셨습니다. 간소하게 진행된 개막 프로그램에서는 작년에 이어 2회 연속 작품을 출품하신 <고기가 되지 않을 자유>의 임진평 감독님께서 상영작 감독들을 대표하여 관객들에게 인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사라진 세상에서 더 많은 분과 함께 삶의 변화를 이끌어주는 카라동물영화제 영화들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임순례 카라 대표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영화제의 풍경 속에서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한 영화제가 고민해오고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은 인간 중심적으로 동물과 자연환경을 파괴해 온 결과와 직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제3회 카라동물영화제의 영화를 통해 인간중심의 사유를 해체하고 동물과 환경과 어떻게 균형 있게 공존할 수 있을지 사유를 확장해 간다면 우리가 직면한 코로나 시대에 더 많은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어 황미요조 객원 프로그래머는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애니멀 피플>을 소개했습니다. 할리우드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소개하여 관객의 관심을 받았던 <애니멀 피플>이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유를 들려주었습니다. 동물 착취 뒤에 최종적으로 숨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리고 힘을 모아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볼 만한 논쟁거리를 담은 개막작이었습니다. 상영 후 데니스 헨리 헤넬리, 케이시 수챈 감독과 임순례 감독이 원격으로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에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우리를 분리하는 '선'들을 없애려고 노력할 때, 유사함을 느낄 것이고 각각의 운동 사이 공통된 것을 위해 싸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더 나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_케이시 수챈
각자의 공간, 각자의 시간에서 열린 온라인 영화제
지난 7월, 카라동물영화제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바로 온라인 상영관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카라동물영화제와 같은 소규모 영화제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에는 자본, 배급 등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자체 플랫폼을 제작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대기업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업체보다는 카라동물영화제의 정체성과 의의에 공감하고, 규모과 서비스의 질이 적합한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인 '퍼플레이'는 여러 면에서 카라동물영화제와 가장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퍼플레이 역시 카라동물영화제의 의의에 공감하여, 카라의 제안을 받아 짧은 시간 안에 안전한 카라동물영화제만의 온라인 상영관을 구축했습니다.
10월 30일부터 11월 4일까지 퍼플레이에서 열린 온라인 영화제에는 2,127명이 방문해주시고 800여명의 관객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작품별 판매 순위는 <도나 해러웨이: 지구생존가이드>, <인류세: 인간의 시대>, <애니멀 피플> 순이었습니다. 관객 온라인 설문조사 내용을 분석해보니 서울, 경기를 비롯해 춘천, 청주, 고성, 부산, 목포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영화제에 참가해주셨습니다. 온라인 영화제에 대한 평가는 매우 만족이 49%, 만족이 35%였고, 내년에도 영화제 참여하겠다고 96%가 답해주셨습니다. 일반 상영관에서 접하기 힘든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짧은 영화제 기간과 상영 시간(결제 후 12시간)과 잦은 버퍼링, 홍보에 대한 아쉬운 의견을 전해주셨습니다. 보내주신 의견들은 내년 영화제에 잘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중한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영화제를 더 알차고 풍성하게! 두 가지 주제의 온라인 포럼
올해는 부대행사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고자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포럼은 영화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10월 30일에 열린 첫 번째 포럼은 쟁점 섹션과 함께 기획된 <인류세, 인간중심 사유를 해체하기>로 시민 100명이 함께했습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기조발표를 시작으로,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와 강철 서울시립대 객원교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사회는 황미요조 프로그래머가 토론은 최유미 수유너머104 연구원이 맡아주었습니다. 팬데믹 시대, 인간과 동물 모두의 위기를 현명하게 넘길 방법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기 위해 포럼 참여자들은 '인간 중심적 사유'에 비판적 물음을 던지고 진지하게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인간은 '동물은 모를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동물들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인간을 피하거나 선택적으로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기도 한다" _최재천
"인간 사회에 팬데믹이 생기기 전에, 동물들은 이미 가축 전염병과 그에 따른 살처분으로 심각한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일이다. 사람도 사람이 키우는 가축도 이 지구상에서 포화 상태에 이른 지금, 팬데믹이라는 현상은 우리에게 우리의 판단이 틀렸으며 지구가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_전진경
"'전염병'이라는 말은 '전염시키는 존재'를 전제한다. 하지만 '감염'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적 행동에 따라 다종의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고 이에 '감염'될 뿐이기 때문이다." _강철
"인간이 자신을 '동물'에서 제외하고 '동물'을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지금과 같이 인간 중심적이며 동물을 억압하는 관계가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_최유미
10월 31일, 5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포럼 또한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1년간 긴 호흡으로 준비했습니다. 실태조사, 인터뷰, 가이드라인 제작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관련 종사자들과 가이드라인의 의의를 함께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권나미 카라 활동가의 제작과정과 가이드라인 발표를 시작으로 미디어 동물학대 사례와 처벌현황을 김지혜 PNR 변호사가 발표를 이어갔습니다. 포럼 2부는 현장에서의 생생한 고민을 듣기 위해 영화, 방송, 유튜브 관계자들을 모셨습니다. 미디어 동물학대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이드라인 제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주요한 발판이 될 것을 기대하는 자리였습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논의 끝에 촬영 현장에서의 노동권이 높아지고 있다. 성평등 관련 부분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제 동물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시기기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이드라인을 제작하면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꼈던 것을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_구정아
"방송 기획 단계에서 제작진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지', '동물에게 좋은 활동이 맞는지'였다. 예전보다 현장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최근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유튜브와 전문가의 의견인 것 같다. 전문가가 말했으니 괜찮은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유튜브에 그대로 반영될 때 우려스럽다. 1인 미디어에서 아무렇지 않게 동물학대 영상이 계속 나타난다면 많이 개선된 영화나 방송 현장이 역행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_설채현
"사람들이 귀여운 동물의 영상을 즐기기만 한다면 미디어 동물학대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종을 물어보는 댓글이 펫샵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고 키울 수 없는 환경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콘텐츠를 짤 필요도 없고 챌린지를 할 필요도 없다. 반려동물의 아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현실적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_이삼 집사
"AHA처럼 현장에 감독관을 파견하고 활동하고 싶다. 동물이 많이 출연하는 영화에 카라가 협업하고 카라의 인증 크레딧이 달려 있으면 관객들이 안심하고 영화를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에서 인력까지 많은 부분이 필요하다. 지금의 가이드라인 발행이 그 초석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_임순례
고맙습니다!
마주했던 난관들 앞에서도 카라동물영화제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었던 것은 카라동물영화제를 '우리의 영화제로'로 여겨주신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제의 대표 이미지를 함께 고민하고 표현해주신 분들, 동물의 권리를 섬세하게 담기 위하여 활동가들과 함께 관점을 고민하고 질문하며 영화를 선정해주신 분, 소규모 영화제를 위해서 온라인 상영관의 공간을 내어주시고 밤새 함께 지켜봐 주셨던 분들, 카라동물영화제 홍보를 위해 따뜻한 글과 목소리로 마음을 나눠주신 분들, 영화제 운영에 큰 힘이 되어준 후원사들, 영화제 포스터를 자신의 공간에 붙여주고 함께 홍보해주셨던 든든한 분들, 그리고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남겨주셨던 관객 여러분까지. 영화제는 많은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많은 분들 덕분에 카라영화제가 3회까지 이어졌습니다. 제3회 카라동물영화제는 끝났지만, 4회 영화제를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내년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