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마음껏 만지는" 생태체험,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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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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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439

카라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이런 내용의 제보 연락이 도착했습니다.

OO생태학교에 갔는데, 사육사가 "고슴도치는 물에서 수영을 잘하고, 물에 들어가면 가시를 안세워서 만지기 쉽다"며 고슴도치들을 물에 풀어놓았고 아이들은 그들을 만졌습니다. 고슴도치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고슴도치는 귀에 물이 들어가면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거기있는 관람객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안내받지 않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고슴도치가 물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체험하는 것을 막고싶습니다.


이 제보자는 OO생태학교를 방문하여 위와 같은 고슴도치 만지기 체험을 한 어린이의 가족이었는데, 고슴도치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체험 방식이 고슴도치에게는 학대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시하셨습니다.

고슴도치(Erinaceus europaeus koreensis, hedgehog)

고슴도치는 낮에는 쉬고 해가 진 후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입니다. 어둡고 주변이 막힌 공간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야생에서는 하룻밤에 1~2km를 이동할 수 있는 활동성 또한 갖고 있으며, 야생성이 있는 다른 종의 동물들처럼 억지로 물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특히 고슴도치는 물과 관련하여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고슴도치의 귀에 물이 일정 이상 유입되면, 중이염과 같은 질병으로 전화할 가능성이 있어 반려 고슴도치를 목욕시킬 때에도 물의 깊이를 2.5~5cm(1~2inches)로 하고 귀나 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 잘 알려진 수칙입니다. 때문에 고슴도치를 일부러 깊은 물에 담그는 것은 최대한 지양해야 합니다.

고슴도치가 중이염에 걸리면 간지러움(긁는 행동)을 호소하거나, 머리를 흔드는 행동을 보이며, 안면마비와 두통, 고열 등의 증상도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증상이 나타나 동물병원에 가면 그때는 이미 염증의 진행이 많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고 괴사 및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죽음에 이를 가능성도 상당해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카라에 제보된 위 고슴도치 만지기 체험 장면 사진을 보면, 고슴도치들이 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시를 몸에 붙여 접고 몸을 쭉 뻗어 물통의 벽을 향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고슴도치들이 물에 빠져 이런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일까요?


이 생태학교는 왜 야행성인 고슴도치에게 대낮에 일어나 물에 잠겨 수영하도록, 생태에 맞지 않는 격렬한 신체활동을 하도록 하는 걸까요?


아마도 답은 이것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만지는 걸 좋아하니까", "엄마들이 좋아하니까"

이 생태학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많은 동물들을 어린이들이 직접 만질 수 있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생태학교 체험의 유일한 가치는 동물복지도, 생명존중도, 생태학습도 아닌 '만질 수 있어 좋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이 그래도 되나요?

대낮에 물에 잠겨 허우적대는 고슴도치, 생명의 위협을 느껴 살기 위해 가시를 접은 고슴도치를 보며 "이제 만지기 쉽네"하고 만지게 해주는 것이 진정 교육적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상황을 연출하며 “고슴도치는 야행성 동물로~~ 반려동물로 고슴도치를 키운다면 목욕시킬 때 물이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라는 기본적 생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동물이 하루종일 어린이들 손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하면서 "동물도 자기만의 욕구가 있고, 우리가 그걸 존중해 줘야 해"라고 말하는 것은 곧 거짓말과 괴리를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입니다. 동물을 좋아한다고 느끼면서도, 물건으로 다루고 학대하는 실수를 하도록 하는 인식의 괴리 말입니다.

동물의 생태에 대한, 그들의 복지에 대한 내용이 빠진 이름뿐인 '생태교육'에 남은 건 가장 쉽고 인간중심적인 '만지기'만 남은 것은 아닐까, 우리 어른들부터 동물을 생명으로 대하는 시각이 부족하기에 이렇게밖에 교육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씁쓸함이 듭니다.

동물학대나 다름 없는 '만지기' 체험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상을 존중하면서 진행하는 진정한 의미의 생태체험이라 볼 수 없고, 오히려 반생명적, 비교육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기에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카라는 위 생태학교에 공문을 보내 고슴도치를 물에 넣어 가시를 접도록 강제한 후 만지도록 하는 체험활동을 즉시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울러 우리 동물보호법에서 명하는 ‘동물보호의 기본원칙’에 따라 동물돌봄과 방문객 생태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종의 동물의 전시 및 체험 방식을 점검하고 동물의 생태와 복지를 고려한 전시, 그리고 동물을 방해하지 않는 관찰 위주 생태학습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체험활동은 동물학대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동물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을 표현하고 즐기면서, 동물에 대한 존중까지 함께 배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물의 5대자유를 동물보호의 기본원칙으로 준수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동물보호법 제2조(정의)
1의2. "동물학대"란 동물을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하거나 피할 수 있는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 및 
굶주림, 질병 등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게을리하거나 방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동물보호법 제3조(동물보호의 기본원칙)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ㆍ관리 또는 보호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원칙이 준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1.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할 것
2. 동물이 갈증 및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아니하도록 할 것
3.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고 불편함을 겪지 아니하도록 할 것
4. 동물이 고통ㆍ상해 및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할 것
5. 동물이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지 아니하도록 할 것


그러나 위의 내용을 충분히 따르는 현장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동물복지를 고려하는 시민 분들이 기분 좋게 즐기고, 마음의 불편함 없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동물과의 만남 장소가 많지 않은 아쉬운 상황입니다.

법제도도 소규모 동물원과 동물카페, 각종 만지기 체험장의 동물들을 모두 보호하기에는 부실합니다. 동물원법이 2016년 제정되어 올해 5월 발효를 앞두고 있지만, 동물을 충분히 보호하기에는 약합니다.(참고: [카라논평] 동물원법 대안 국회 환노위 통과의 의의와 한계 https://www.ekara.org/activity/policy/read/7448) 2017년 3월 2월 통과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동물전시업'이 신설되는 성과가 있었지만, 앞으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동물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기준들을 잘 만들어가야 할 위중한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의 동물복지는 한발짝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태교육 현장들이 동물복지를 고려하고, 아이들에게도 동물에 대한 존중을 배우도록 가르치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 여러분의 관심, 그리고 학부모님들의 의견 개진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께 다음의 내용을 부탁드립니다.

1 동물복지를 고려하지 않는 만지기 체험은 가급적 거부해 주세요
2 만지기 체험 현장에 가시게 된다면 동물복지를 면밀히 살펴주세요
3 만지기 체험 현장의 동물복지가 좋지 않다면 주최측에 항의해 주세요
4 현장 사진, 동영상과 함께 카라를 비롯한 동물단체에 제보해 주세요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교육팀 -


댓글 2

최슬기 2017-04-04 09:54

학교의 목적이 더 많은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것인지, 진정한 생태교육인지 묻고 싶네요.


강석민 2017-03-29 20:22

이런 학교를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