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장에서 구조해 온 13마리의 개들은 ‘모견’, ‘폐견’, ‘방치견’이었습니다. 순전히 펫숍에서 ‘반려견’으로 판매되는 예쁜 새끼 강아지들을 생산해내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된 이 아이들은 이름이 아닌 견종과 번호로 기재된 일종의 분류기호로 불렸습니다.
번식업자들에게는 ‘새끼 빼는 기계’로 여겨졌던 이 아이들은 모두가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뜬장에서의 지옥을 가까스로 버텨냈습니다. 돈으로 거래되는 반려동물 생산·판매의 이면에는 이 아이들의 끔찍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작고 예쁜 품종견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는 그 희생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누군가의 반려견이 될 기회조차 박탈당한 이 아이들의 사연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왜 ‘사지 말고 입양해야’하는지,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모견(母犬)
[명사] 어미가 되는 개. ‘자견(子犬)’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비너스
번식업자에게 “수의사 선생님도 오셨으니 가장 아픈 애 보게 해달라”고 하자 업자가 데려온 아이.
번식장의 개들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 질환들은 여럿 있었지만 정작 심각한 질병은 없었다. 그런데도 업자가 이 아이를 데려온 이유는 ‘아무리 교배해도 새끼가 안생긴다.’는 것이었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선택(?)된 이 아이의 나이는 겨우 한 살. 아직 나이가 어려 치료를 한다면 앞으로 충분히 새끼를 낳을 수 있기에 업자는 치료가 끝나면 반드시 돌려달라며 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보라
어두운 번식장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이마의 상처는 꽤 심했고, 상처 주변엔 털조차 없는 상태였다. 번식업자는 ‘새끼를 떼어놓았더니 새끼한테 가려고 해서 상처가 났다’고 말했다.
보라가 바라보는 곳 끝에는 아직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새끼 세 마리가 있었다. 낳자마자 새끼와 떨어진 보라는 보이지도 않는, 냄새만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새끼에게 가기 위해 머리를 철장 밖으로 들이미느라 이마가 심하게 까진 것이다.
보라의 새끼들은 바로 다음날 경매장에 넘길 운명이었고, 보라는 그렇게 새끼들을 떠나보내고 또 다시 강제교배로 경매용 새끼를 출산할 운명이었다.
리즈
살이 쪄 운동을 하라고 번식장 안에 풀어놓았다던 리즈는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에 멀리서 봐도 눈에 띌 정도로 피부가 좋지 않았고, 유두에서는 피고름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를 달라는 카라와 제작진의 말에 번식업자는 “그 녀석 새끼 한 마리가 얼만데”라며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고, 간신히 치료만을 허락받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이미 수차례 출산의 경험이 있는 리즈는 피부병, 심장사상충, 자궁질환 등 온갖 질병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빨강
빨강이는 뜬장 안에서 한쪽 다리를 제대로 바닥에 딛지도 못한 채 힘겹게 서 있었다. 구조 후 검사해 보니 양쪽 뒷다리 모두 슬개골이 탈구되었는데, 아무래도 탈구된 상태로 장기간 방치된 듯 했다.
앞니가 모두 결손되어 항상 혀를 내밀고 있는 빨강이의 추정나이는 8살로, 번식업자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이미 쓸 만큼 다 쓴 동물이었기 때문에 ‘데려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는지 아이를 쉽게 포기했다.
초록
한쪽 눈이 심하게 훼손된 초록이는 발견 당시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번식업자들이 모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오로지 ‘자견 생산능력’ 뿐이므로, 초록이의 안구질환이 선척적인 것인지, 심한 상처로 인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예쁜 새끼를 생산해 내기만 하면 되던 초록이. 초록이는 현재 뇌수종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고, 초록이의 눈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이라면 창상에 의한 상처로 실명된 상태이다. 눈의 경우 빨리 치료가 되었다면 어느 정도의 시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폐견(廢犬)
[명사] 용도가 다 하여 폐기한 개.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급식도 간신히 이루어진다.
주황
‘새끼도 못 낳고, 팔아넘길 곳도 없어 쓸 데가 없다’며 카라에 넘긴 주황이는 여섯살의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작은 몸집의 배에는 여러 번의 제왕절개 흔적으로 빈틈없이 상처가 나 있어, 최대한 새끼를 뺀 후 더 이상 출산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억지로 교배를 하고, 출산을 하고, 그렇게 낳은 새끼들을 빼앗기기를 거듭한 주황이는 번식장에서 ‘쓸모없는 개’로 분류되었다.
노랑
번식업자가 처치할 방법이 없다며 주황이와 함께 데리고 나온 노랑이의 나이는 겨우 다섯 살. 이 아이 역시 여러 번의 출산 경험이 있어 더 이상 출산이 불가능한 상태다.
평생을 새끼 낳는 기계로만 살아와 몸은 엉망이 되고, 뜬장 밖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 노랑이는 심장, 발바닥에 질환이 있고 다리는 슬개골이 탈구된 상태이지만 이 정도면 모견 혹은 폐견 치고 ‘상태가 양호한 편’에 속한다.
방치견(放置犬)
[명사] 관리는커녕 급식, 급수도 이루어지지 않아
방치되어 떠돌아다니거나 죽음 위기에 놓여있는 개.
라니/파랑/남이
발견 당시, 음식을 편하게 먹거나 심지어 배변마저 곤란 할 정도로 털이 자라 갑옷처럼 뭉쳐 있었다.
구조 후 두꺼운 갑옷을 벗은 이 아이들의 건강상태는 남이의 간수치가 매우 높은 것을 제외하면 다른 모견, 폐견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번식업자는 이 아이들을 오랫동안 봐왔지만 자신 ‘소유’의 개들도 관리하지 않는 업자가 자기 것이 아닌 아이들을 괘념할 리가 없다.
털의 상태로 보아 최소한 1년 이상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라니, 파랑이, 남이.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이 10 마리와 보라의 새끼들 3마리까지 총 13마리의 개들이 번식장이라는 지옥을 탈출하였습니다. 적은 수의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에게 이제라도 안전하고 믿을만한 사람 품을 알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또 안도합니다.
펫숍에 진열된 작고 어린 생명들.
그 생명들 뒤에는 이런 잔혹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반려동물을 돈 주고 사는 ‘소비’가 지속되는 이상,
소비를 위한 시장은 계속 유지될 것이고,
시장에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계속 ‘모견’과 ‘폐견’이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끔찍한 악순환을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을까요?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그리고 사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