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는 2020년 촬영 단계별 및 종별 가이드라인, 미디어 준수사항을 담은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작하였습니다. '동물을 어떻게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을까' 막연하게 고민하던 미디어 종사자들은 카라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하기 위해 카라에 직접 연락하기도 했습니다. 가이드라인 공개 이후, 잔인한 장면에 동물이 등장하더라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시청자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연출 방식을 택한 작품들도 확인할 수 있었고, TV 방송에서도 '동물 복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동물은 안전하게 촬영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고, 미디어 종사자들이 참고하여 고민했기에 가능한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얼마 전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장미맨션>의 고양이 살해 장면이 방영되었습니다. 고양이가 목덜미를 붙잡힌 채 불편해하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었고, 배우가 칼을 들이대자 고양이는 앞발로 이를 막아서려는 장면, 배우가 고양이의 목덜미만 붙잡고 이동하는 장면도 방영되었기에 시청자들은 고양이의 상태를 걱정했습니다. 때마침 엔딩 크레딧에 "훈련된 동물들이며 전문가의 입회하에 안전하게 촬영된 장면이거나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촬영입니다."이란 문장이 등장하자, 시청자 대부분은 컴퓨터그래픽이었겠다고 안심하기도 했습니다. 카라 역시 이 부분이 컴퓨터 그래픽이었는지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 고양이를 촬영한 것이었고, 안전하게 촬영된 것도 아닙니다. 카라는 동물 촬영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하여 수의사가 배치되었는지, 촬영현장에 있던 전문가가 누구였는지 답변을 요청했지만, 제작진은 이에 대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미맨션> 제작진은 '동물이 안전하게 촬영되었다'라는 문장을 왜 넣었을까요? 이 문장이 엔딩크레딧에 들어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국내 동물학대 촬영이 표면 위로 드러날 때마다 여러 차례 이야기하는 것이 '미국 인도주의 협회(AHA, the American Humane Association)'의 인증마크입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등장하는 "No Animals Were Harmed"이란 표시는 영화의 제작 과정 중 어떤 동물도 다치거나 해를 입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영화나 방송에서 AHA의 인증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제작사는 동물을 촬영하기 전에 AHA에 서류와 등록양식을 제출한다.
(스크립트, 스토리보드, 촬영 스태프 명단, 촬영 스케줄, 동물 촬영일 콜시트 등)
- AHA의 동물 안전 담당자는 촬영현장에서 동물 행동을 직접 모니터링하고 보고서로 남긴다.
- 촬영 완료 후 개봉 전 AHA에 최종 버전의 영상물을 시사한다.
- AHA는 현장보고서를 검토하고 모니터링한 동물행동을 최종 확인한 후 인증마크를 발행한다.
- AHA는 모니터링한 모든 영상물을 홈페이지에 등급별(전체 인증 / 부분 인증)로 게시하며, 모니터링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그렇다면, 장미맨션은 AHA와 카라 가이드라인 지침 어디에 속할까요?
<장미맨션>의 고양이 살해 장면은 '동물 촬영은 컴퓨터그래픽이나 소품을 최우선으로 권장한다. 특히 동물의 죽음을 묘사한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카라의 가이드라인에 해당하지 않으며, '미디어는 동물학대를 정당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라는 준수사항에도 위배됩니다. 물론 AHA의 어떤 과정도 충족하지 못했기에 'No Animals Were Harmed' 인증마크를 달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장미맨션>을 비롯한 국내 영상물은 그 누구의 인증도 없이 '동물은 안전하게 촬영되었거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했다.'라는 문장을 사용했습니다. 시청자들이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AHA의 'No Animals Were Harmed'
장미맨션의 '동물이 안전하게 촬영되었다'
이 두 문장의 무게는 다릅니다. 영상물에 이 문장을 달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KBS <태조 이방원> 사건으로 인해 정부도 올해 상반기까지 '출연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3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마련한 협의체의 회의에서 일부 참여자는 가이드라인이 법적 규제로 작용될 것을 염려하기도 했습니다. 카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준수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내 영상물의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을 있는 그대로 믿기 위해서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과정, 전문기관의 검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동물 학대 촬영현장을 예방할 수 있으며, 시청자들도 미디어 속 동물과 인간의 안전을 믿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