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고양이 ‘반달’ ‘바리’ ‘곰이’ ‘샛별’을 추모하며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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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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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행동 카라는 올해 서울시 중성화 지원 사업을 수행함에 따라 애니멀 호딩 제보를 받고 있으며 이 문제가 동물이 얽혀 있는 사람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동물 중성화를 지원하는 한편 모두를 위해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8월 9일 카라는 할머니 홀로 25마리 가량의 고양이들을 힘겹게 돌보고 있다는 주민센터의 연락을 받고 석관동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조 할머니는 한 주택의 일부 공간에 혈혈단신으로 세들어 살고 계셨습니다. 문 밖에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고양이 수가 늘어나게 된 것은 10년 전 ‘은영’이라는 고양이를 입양한 뒤 자체번식을 거듭한 결과인듯 했습니다. 할머니의 말투에서 은영이를 딸처럼 아끼는 마음이 묻어났지만 여러 고양이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할머니는 중성화의 시급성을 인지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보다는 당장 고양이 사료 걱정이 더 크신듯 했고요.


설명을 통해 중성화에 대한 동의를 구한 후 고양이들을 보고 싶다고 하자 잠시 머뭇 거리시던 할머니는 활동가들을 집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집에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했는데요, 아직 불을 켜기 전이었지만 현관 문을 열자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쿡 찔렀습니다. 눈이 살짝 매워지려 할 때 시야에 공간이 들어왔습니다. 4평 남짓되는 ‘큰’ 방과 그보다 더 작은 작은방, 그리고 좁은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곳이 조 할머니와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낡은 벽지가 다 뜯어진 채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바닥도 부분적으로 뜯긴 채 군데군데 똥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고양이 화장실로 보이는 통이 있긴 했으나 모래 없이 비어 있었습니다.   



25마리나 되는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


새끼 고양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들. 많은 개체들이 꼭꼭 몸을 숨겨 버렸다


고양이들이 이상을 감지한듯 몇 안되는 가구와 이불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인기척에 놀라 움직이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는 고양이들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고양이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활동가들 눈 앞의 많은 고양이들은 무척 어려보였습니다. 최근까지도 내부 번식으로 새끼가 태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끼들의 움직임은 활발하지 않았고 건강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방 안쪽과 화장실에 몸을 숨긴 성묘들에게 다가가자 고양이들은 극도의 경계를 드러냈으며 정확한 마리수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곳에서 할머니가 먹고, 자고 그렇게 함께 지내고 계신다고요?”

고양이에게도 힘들어 보이는 공간에 70대 노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다시 여쭤보자 조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어서 ‘가스가 끊어진 지는 수 개월’이라는 말씀 뒤로 바닥 한켠에 놓인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니 품에 안긴 은영이


조 할머니는 할머니를 따르던 고양이 한 마리를 안아 올렸습니다. “얘가 은영이야.” 은영이를 소개하는 할머니의 입가에 만난 지 처음으로 둥근 미소가 번졌습니다. 턱시도 암컷 고양이 은영이는 할머니와의 유대가 무척 깊은 듯했습니다. 여러 마리를 돌보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할머니는 누군가 잘 키워준다면 고양이들을 입양 보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보낼 수 없는 고양이로 은영이를 꼽으시며 은영이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이셨습니다.  


할머니의 깊은 사연은 알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자식이 있긴 했지만 할머니는 혼자였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고양이 사료를 마련하는 게 가장 큰 화두인듯 했고요. 고양이들의 복지도 그렇고, 이러한 환경에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의 건강도 염려되었습니다.  


그러나 조 할머니와 집주인, 조 할머니와 이웃간 갈등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애니멀 호딩 문제가 있기는 해도 이웃간 갈등에 있어서는 고양이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갈등은 이미 ‘고양이로 인한’ 갈등이 되어버렸습니다. 집주인은 망가진 집과 자기 집을 향하는 이웃의 시선을 안타까워 하며 두어달 남은 계약기간이 어서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이웃은 이 집 고양이들이 동네에 똥을 싼다며 싫어했습니다. 아마도 고양이들의 일부가 더러 열린 문 틈으로 외출하는 일도 있었던듯 합니다. 중성화 안된 반려묘를 외출냥이로 키워서는 안되지만 이 동네에도 길고양이가 없지 않을텐데 모든 고양이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잘 이해 되지는 않았습니다. 


8월 28일, 카라는 석관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여 조 할머니의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1단계로는 카라에서 서울시 사업을 통해 긴급 중성화 지원을 검토했고, 2단계로는 가능한 선에서 고양이들의 복지를 높이면서도 개체수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했습니다. 입양이 가능해 보이는 개체도 있었던 만큼 주민센터에서도 임시보호와 입양에 도움을 주기 위한 자원봉사단을 꾸리기로요. 한편 집 문제도 큰 일이어서 조 할머니가 지원 받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조 할머니에게 취해질 수 있는 조치 등을 펼쳐놓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기로 역할분담을 하였습니다.



8월 28일 카라와 주민센터 등이 함께 회의하는 모습


조 할머니 고양이들의 중성화 일정을 추진하며 주민센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조 할머니가 용달을 불러 고양이 11마리 정도를 다른 곳으로 보냈고, 그 뒤로 조 할머니의 딸이 할머니가 세들어 살던 집의 현관문, 방문, 창문을 사람을 불러 모두 뜯어냈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 할머니는 그 상태 그대로 집에서 남은 고양이들과 며칠을 더 거주했는데 그러던 중 어느날 아들이 조 할머니를 데려가 더이상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 할머니의 딸과 아들은 집주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연락처 남기기를 한사코 거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태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떠나고 황망히 남겨진 집을 향해서도 이웃들은 구청으로 ‘고양이를 빨리 치우라’는 민원을 넣었다고 합니다. 성북구청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한 동물구조관리협회(서울시 20개구와 지자체 시보호소 위탁계약을 맺고 있는 곳)는 집 안에서 발견한 새끼 고양이 9마리를 데려갔습니다. 구청에서 보낸 사람들이 고양이를 데려간다고 하니 사람들은 아마도 ‘잘 살겠지’ 생각했었나 봅니다. 하지만 카라는 2개월령인 4마리만 동구협 시설에 계류되고 있고, 수유기에 있던 5마리는 데려가자마자 바로 안락사 되고 말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카라와 주민센터를 포함하여 조 할머니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맞대었던 당사자들은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카라가 9마리의 안위를 걱정하며 동구협에 연락을 넣었을 때는 이미 5마리의 안락사가 진행된 다음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내용은 공고조차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카라는 참담한 마음으로 남은 4마리 새끼만이라도 살려보고자 공고중에 있던 이들 고양이들을 9월 27일 동구협으로부터 인계해 왔습니다. 이 네 마리가 ‘반달’, ‘바리’, ‘곰이’, ‘샛별’ 입니다. 블랙인 반달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은영이’와 닮은 턱시도 모양의 작고 어여쁜 고양이들이었습니다.         


지자체 시보호소의 검역 시스템이 예산 등의 문제로 제대로 작동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던 카라는 4마리가 제발 심각한 전염병에 걸려 있지 않기를 바라며 카라병원으로 옮긴 뒤 격리조치했습니다. 입소시 키트 결과는 괜찮았지만 며칠 뒤 치사율 높은 고양이 범백 양성이 차례차례 떴습니다. 치료에 들어갔지만 10월 5일 샛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데 이어 6일 반달, 7일 바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12일 곰이 가 범백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1마리라도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바랐건만 너무나 안타까운 결과였습니다.    



'반달', '바리', '곰이', '샛별' 은 범백을 이기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애니멀 호딩은 사람의 내면과 연관된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국내의 현 제도와 인프라 수준으로는 해소가 어려우며 동물과 사람 모두가 얽혀 있기에 동물, 사회복지, 정신보건 등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붙어야 합니다. 한편 애니멀 호딩 문제 자체만도 풀기 어려운데 이웃간 갈등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며 이해의 부족 속에 결국 동물들까지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조 할머니네 고양이들은 중성화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병원에 가본 적이 없는 만큼 어떤 상태였는지 모릅니다. 11마리의 고양이들을 할머니께서 어디로 피신 시켰는지 몰라도 자체번식이 빠르게 진행되어 상황을 악화시길 것입니다. 할머니 손에도 잡히지 않았던 일부의 고양이들은 증성화 안된 채로 집 근처를 배회하며 먹을 것을 찾고 있을 것이며, 이웃의 민원에 의해 동구협이 데려간 9마리 새끼들은 결과적으로 모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애니멀 호딩 문제에도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카라는 이 사례의 개선을 기대하며 중성화를 근간으로 상생복지 차원에서 바람직한 최선의 도움을 드리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카라는 조 할머니와 은영이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연락할 방법도 딱히 없습니다. 만약 할머니가 이 소식을 듣고 카라로 연락을 주신다면 장례를 치러준 반달과 곰이, 바리와 샛별이의 유골을 인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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