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타이거] 전투냥이 '영동이' 이야기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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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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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이는 서해바다 어느 섬, 외딴 군부대에서 살아가던 고양이입니다. 새끼때 군무원 한분이 부대에 데려와서 장병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았습니다. 사무실에 쥐를 잡아와 사람들을 놀래키고, 두루마리 휴지를 발기발기 찢어대며 말썽도 피웠지만, 외딴 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인들에겐 귀염둥이 막내였습니다.



그런 영동이가 얼마전 많이 아픈 상태로 부대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반신 마비증세를 보였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는지, 다른 동물과 싸우다 다쳤는지, 또는 누군가에게 학대를 당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영동이를 돌봐주던 ‘영동이 아빠’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카라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카라에 도움을 요청하며 보내주신 구조자와 함께 찍은 사진 한장,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을 연상시키는 그 사진에서 영동이는 너무도 늠름하고 행복해보였습니다. 카라는 할 수만 있다면 영동이를 구조, 치료해서 구조자분 그리고 부대원들과 짬밥을 먹으며 함께 생활했던 부대에 돌려보내고 싶었습니다. 영동이를 구조하여 치료해주기로 결정하고 구조자와 연락을 취하던 중, 지난 목요일 드디어 영동이를 뭍으로 이송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배를 타고도 몇시간이나 가야하는 섬, 그 섬에서도 깊숙히 외진 곳의 군부대에서 영동이가 병원까지 오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갑자기 불어닥친 폭우와 짙은 해무로 배가 뜨지 못했고, 결국 영동이는 다음날인 금요일에야 드디어 뭍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박스에 담겨온 영동이의 상태는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이미 체온이 떨어져있었고 간신히 숨만 쉬며 간혹 고통스런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서울까지 데려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지역의 24시간 동물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습니다. 응급처치를 마치고 간신히 심박수가 안정되어 집중치료실에 입원하는 모습을 보고 병원을 나섰는데, 밤 12시쯤 상태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마지막 모습이라도 함께 하고싶어 서둘러 길을 떠났지만, 잠시후 결국 영동이가 별이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사랑은 받았지만, 영동이도 한마리 고양이로서 자기 영역을 지키느라 많은 싸움을 치렀던 모양입니다. 병원에서 확인한 영동이의 몸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형제들중 제일 약하게 태어났지만 군부대 짬타이거답게 당당한 전투냥이로 살아온 삶의 흔적들입니다. 두살이 채 안된 영동이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 별이 되었습니다.

60만 대군을 자랑하는 한국의 군부대에는 많은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짬타이거라 불리는 고양이, 군견같은 동물들입니다. 대한민국은 국군이 지키고, 국군은 짬타이거가 지킨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장병들의 가족이자 든든한 전우로 살아가는 동물들이 많지만, 군내의 동물복지 수준은 아직도 열악하기만 합니다. 아프거나 다쳐도 제때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쥐덫에 다치거나 학대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군대내의 인권문제도 여전한데 동물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집단, 생명의 소중함을 외면하는 공간에서 사람 또한 결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군대도 이제 생명존중의 선진병영문화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카라는 영동이를 잊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군부대내의 동물복지와 공존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영동이 구조자분께서 카라에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맘 아픈 사연이기도 하지만, 군대내의 동물들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글이라 생각되어 일부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사관 이면서 이제는 영동이의 영원한 주인이 된 ○○○ ○○입니다.

제가 영동이를 처음 만난것은 17년 ○월 ○일, 5년여 시간의 군생활을 마무리 하게 될 곳인 ○○도로 부임을 했을 때, 사무실에서 였습니다. 푹신한 곳을 좋아해 제 자리가 될 의자에 앉아있는 녀석의 이름은 영동이.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길에도 살포시 눈을 감고 받아주는, 처음 불러주는 이름에도 야옹 대답하는 넉살좋은 놈이었습니다.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저였지만 그런 영동이의 모습은 고양이를 안 좋아할래야 안 좋아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고양이들에게 당연하겠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좋았던건 아닙니다. 밥을 챙겨주려 다가가면 도망가고 의자에 앉아있어 들어 안아주면 내려달라고 야옹야옹 댔습니다. 성미가 급한 저로선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영동이만 보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자율급식이 곤란할 만큼 먹성이 좋은 덕에 밥을 놔두면 졸졸 다가와서 밥을 먹고... 어느덧 영동이는 저만 보면 울면서 달려오는 그런 존재가 되어있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곳 ○○도는 국군 전선중 제일 치열하고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 오려합니다. 저같은 말년에는 더더욱. 고립된 섬 안에서 친구하나 없이 지내는 제게 영동이는 제게 친구였고, 가족이었습니다. 주말이면 같이 산책도 하고 TV도 보고, 대외업무를 나갈때면 차량 옆좌석에 태워서 같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돼지고기를 좋아해 삼겹살을 굽거나 족발 등을 먹을때면 손으로 입에 넣어주곤 했습니다. 태어날때 4형제중 제일 약했던 영동이는 그렇게 건강하고 행복한 고양이가 되었고 그런 모습을 본 전임 대장님께선 제게 고양이 아빠 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영동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가 10일이 넘는 휴가를 다녀올 때마다 '너무 오래 떨어져서 잊거나 멀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괜한 걱정이란듯 복귀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오며 반기는 영동이는 존재만으로도 제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충성심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느순간부터 제 사무실에 쥐를 물어다놓고, 뜯어발긴 새를 물어다놔 사무실에 털이 잔뜩 날리고, 저와 마찰이 있는 선임의 수첩과 집기를 긁고 물어뜯어놓거나 두루마리 휴지를 물어뜯어 벌려놓는(항상 이 사람만 당했습니다) 골때리는 짓을 해도 그냥 예뻐보였습니다. 20만원짜리 방수전투화를 요강으로 만들어버렸을땐 화가 나긴했지만 고양이가 뭘 알겠습니까... 그날도 여느때처럼 밥 주고 산책했습니다. 10개월이 지난 아직도 그 전투화에선 영동이 오줌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이번 휴가 때 꿈에 영동이가 나왔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돌아가면 여느때처럼 반겨주겠지 하고 애써 걱정을 내려놓았습니다. 복귀하고 5일동안 모습이 안 보였습니다. 대원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하지 않거나 추측성 답변만 돌아올 뿐, 누구 하나 속시원히 영동이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저역시 복귀 직후 많은 양의 업무에 눌려 영동이를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애타는 마음을 뒤로하고 잠이 든 어느날 밤에 관사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경비병의 전화였는데 군견병이 순찰중 영동이를 발견했다는 제보였습니다. 군견병을 만나보니 입고있던 전투복 상의를 벗어 포대기처럼 영동이를 감싸서 데려왔습니다. 상태가 심각해보여 발만 구르다가 문득 호두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날이 밝고나서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가 선생님들과 제가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망소식을 듣고 군견병에게 전하러 가던 길에 영동이가 평소 자주 다니고 좋아하던 장소를 보니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어 엎드러졌습니다... 출근시간이면 현관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와서 함께 출근하고 퇴근시간이면 배고프다고 달려와 함께 내려가던 주도로... 따뜻해서 자주 올라앉아 잠을 자던 기관실 온수탱크... 어느순간부터 밥 먹는 자리로 정해진 동력기창고...야간순찰 때면 함께 올라가던 언덕길... 눈이 마주칠 때마다 듣던 그 울음소리가 그립습니다..... 이젠 문을 나서도 더이상 영동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제대할 때 같이 부대를 나서 ○○도를 떠나자는 약속을 지킬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영동이에게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영동이를 도와준 세 사람이 있습니다.

피곤한 야간순찰 중 영동이를 발견해 데려와준 군견병 ○○, 군견병을 도와 위병소 전화기로 소식을 전해준 경비헌병 ○○○, 영동이를 섬 밖으로 데리고 나와준 ○○○. 이 세사람의 도움이 없었으면 영동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 누군가는 이름조차 모르는 이 작은 섬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을 겁니다...

이제 영동이를 위해 해줄수 있는 일은 제 곁을 떠나지 않게 도와주는 일 뿐입니다. 화장하여 유골을 집으로 가져가고자 합니다. 그게 영동이에게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영동이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봉사활동도 좋고 후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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