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행동 카라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은 강원도 양양군이 끈질기게 밀어붙인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한 마음으로 저지해 왔습니다. 2010년 발간된 <산양 보고서>(환경부)에서 오색케이블카 사업 구간 일부가 산양의 주 서식지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양양군은 ‘숙원사업’이라 칭하며 거듭된 불허를 받아들이지 않고 밀어붙여, 결국 천연보호구역의 문화재현상변경을 허가받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구간에 모습을 나타낸 산양 ⓒ 녹색연합
이에 지난 2월, 설악산국민행동과 동물권연구단체 PNR은 사업구간에 사는 산양 28마리와 산양 연구가와 함께 케이블카 사업 허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재판부는 재판도 하기 전에 소송비용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각하할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소송비용 담보제공명령’을 내렸습니다.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납부해야 하는 것인데, 아직 재판도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송비용 청구 명령을 내렸다는 것은 산양이 원고인 본 소송을 재판부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토), 창비50주년기념홀에서 동물권을 위한 법조인들, 환경단체, 동물권단체가 모여 설악산 산양이 제기한 케이블카 중지소송 모의법정을 진행했습니다. 본 모의 재판의 주요 쟁점은, △ 산양이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와 △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중지되어야 하는 합당한 이유 2가지입니다.
“잠깐, 산양 소송을 한다면서 왜 저를 부르지도 않고 이렇게 재판을 합니까? 제가 당사자라고요!”
산양 ‘뿔이’역의 배우 윤주희님 ⓒ 녹색당 라용이
그간 국내 법리상 동물을 권리 주체로 인정한 바 없지만, 해외에서는 동물 또는 자연을 소송 당사자로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州)의 그래엄산(Mt. Graham) 경우, 대규모 천체물리학 단지 건설 계획이 발표되면서 미국 환경단체 시에라클럽(Sierra Club)이 그래엄산 고지대 전나무 숲에 서식하는 붉은다람쥐를 원고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였고, 미국 연방대법원이 원고 적격을 인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입니다. 높은 바위산과 숲이 뒤섞인 곳에 주로 서식하고, 반경 1km 내에서만 활동하는 습성 때문에 사업 예정지에 공사가 개시될 경우, 산양은 상당한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국책연구기관에서 케이블카 사업의 “입지 적절성”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바 있고, 공사로 인한 소음 등 인위적 요인으로 산양, 담비, 삵 등 주요 국내 야생동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심각성을 인지한다면 산양의 당사자 적격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증인으로 나온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 ⓒ 녹색당 라용이
증인으로 나온 박그림 대표는 “천연기념물 제217호, 멸종위기동물 1급으로 지정했다고 해서 산양형제의 삶이 바뀌지 않은 까닭은 우리끼리의 일일 뿐 산양형제가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라 증언했습니다.
“동물들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만의 표현 방식을 통해서, 심지어 죽음으로 온몸으로 표현해 왔습니다...(중략)...그 동안 우리 판례가 어때왔는지 우리 법원이 어떻게 법해석을 해 왔는지 보다는 앞으로 우리 법원이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현행 법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원고측 변호사로 분한 서국화 변호사(동물권연구단체 PNR 대표)의 최후 변론이 이어졌습니다.
원고 ‘뿔이’를 변론하는 서국화 변호사 ⓒ 녹색당 라용이
9명의 시민 배심원단의 전원 의견일치를 기반으로 재판관은 판결문에 “우리 법률상 자연물, 동물을 보호해야 할 특별한 법적 의무가 있고, 특히 산양은 야생생물법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를 받는 종으로 자신의 권리로 소송을 제기할 능력이 있다고 보인다”며 원고 적격을 인정했습니다.
이어서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 “이 케이블카 공사가 진행될 경우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이 멸종으로 이어지게 할 가능성으로 산양의 생존권을 침해하게 되고, 산양의 멸종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며, 사람들이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여 얻는 이익보다 산양의 생존 및 산양 종 보전의 이익이 더 중대하다”며 케이블카 설치 공사 중지 평결을 내렸습니다.
양양군은 사업 입지의 적절성 및 계획의 타당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양양군은 케이블카 사업이 산양의 생존권보다 우위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산양은 법률 하에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모의법정의 산양처럼 말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보호하는 주체가 보호받는 객체의 생존권을 존중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양양군은 이제라도 산양 주서식지 파괴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하고, 재판부는 산양이 처한 상황을 염두에 두며 사안을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전시, 실험실, 공연 등에 이용되는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서식지를 잃을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모두 그들이 속한 자연 속에서 자유의지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적어도 야생동물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활동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 -
※ 판결선고문
먼저, 산양이 원고 대리인인 법무법인 설악에게 대리권을 유효하게 수여하였는지 여부와 관련해서, 산양이 위임장을 작성할 능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원고대리인이 산양의 이익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그것이 산양의 의사에 반한다고 볼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산양의 추정적 의사에 따라, 그리고 오늘 재판에 출석한 뿔이의 명시적 의사에 따라 원고 대리인은 적법하게 소송대리권을 위임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산양의 당사자 능력과 관련해서, 특히 당사자인 뿔이가 직접 이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들을 볼 때, 충분히 자신의 권리를 소송에서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입니다. 그 외 원고 대리인이 제출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우리 법률상 자연물, 동물을 보호해야 할 특별한 법적 의무가 있고, 현행 민사소송법 규정이 동물의 당사자능력을 부인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여 지며 특히 산양은 야생생물법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를 받는 종으로, 자신의 권리로 소송을 제기할 능력이 있다고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 공사가 진행될 경우 산양은 활동반경이 좁고 서식환경이 특수해 멸종위기에 있는 점, 그리고 케이블카 공사가 진행될 경우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으로 인하여 서식지의 변경이 아닌 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점, 결국 케이블카 공사는 산양의 생존권을 침해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산양이 멸종할 급박한 위기에 처한다는 점이 원고가 제출한 IUCN의 자료와 증인 박그림의 증언에 따라 인정됩니다. 나아가 산양의 멸종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는바, 이 사건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경치를 감상하여 얻는 이익보다 산양의 생존 및 산양 종 보전의 이익이 더 중대하다고 보이는바, 이 사건 공사를 중지할 필요성 역시 인정됩니다.
이에 선고합니다.
주문, 피고는 설악산 오색구간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공사를 진행해서는 아니 된다.
집행관은 위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피고는 제 1항의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1일당 1,000,000원씩 원고들에게 지급한다.
** 사람과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도 자유의지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헌법에 동물의 권리를 명시하도록 촉구하는 ‘개헌을위한동물권행동(개헌동동)‘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동참을 기다립니다.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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