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돌아갈 수 없다면
‘바다쉼터’라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좁디좁은 유리 수족관에서 전시되고 체험 대상이 되며 소화제, 항생제 등 각종 약으로 연명하는 존재, 바로 수족관에 전시된 고래류입니다. 지난해 비봉이의 야생 방류를 끝으로 현재 5개소 수족관에서 큰돌고래와 벨루가 등 21마리의 고래류가 남아있습니다.
큰돌고래는 10℃~32℃ 정도의 온대 해역에서 해저 기울기, 침전물 유형 등 이질성을 지닌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벨루가(흰고래)는 북극 해역에 분포하여 서식하는 특성 상 열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두꺼운 지방층을 지니며 북극해 얼음을 부술 정도로 단단한 등면을 지닌 동물로 진화해 왔습니다. 큰돌고래는 하루에 약 130km, 벨루가는 1,000km 이상을 유영할 정도로 엄청난 장거리 이동력을 지녔습니다. 광활한 바다 속 다채로운 생명체들과 살아가며 다양한 대역의 초음파로 소통하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큰돌고래와 벨루가는 정상적인 활동영역의 만분의 일 수준인 좁고 단조로운 수조에 죽을 때까지 감금돼 인간들의 눈요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언어도구인 초음파는 유리벽면에 반사되어 메아리처럼 퍼지고, 더 힘차게 나아갈 공간도 되지 않아 돌고 도는 행동에 그치고 맙니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수족관 운영자나 정부가 묵인하는 사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수족관 고래류의 높은 폐사율이란 오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일부 나라에서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그들의 복지 문제를 제기했고,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는 지난 2019년 유흥 목적으로 돌고래와 고래의 감금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 일부 주에서 수족관의 고래 전시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 일부는 통과되었습니다. 프랑스, 멕시코, 브라질, 노르웨이 등 일부 국가들도 그러한 변화의 추세를 따르고 있죠. 그리고 일부 국가에서는 야생으로의 귀환이 불가능한 고래들을 위해 보호시설인 ‘생츄어리(sanctuary)’를 건립하기에 이릅니다.
캐나다, 유흥 목적의 고래류 감금 금지 법안(Free Willy bill)이 통과되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2018년 7월 고래류 전시를 중단하거나 사육환경을 대폭 개선할 의지도 없는 수족관에 대항하며 시민사회단체들과 ‘바다쉼터’ 조성을 정부에 제안했습니다. 바다쉼터는 야생성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거나 원 서식지로 돌려보낼 수 없는 전시동물들이 더 이상 쇼를 하지도 눈요깃거리로 소비되지도 않고 자연과 유사한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대안입니다. 바다쉼터는 비단 감금된 고래류뿐만 아니라 부상당하거나 좌초되어 치료가 필요한 고래류들의 회복 및 야생복귀를 돕는 역할도 가능합니다.
거제씨월드, 울산 고래생태체험관, 한화아쿠아플라넷 제주에 전시된 큰돌고래들은 모두 일본 다이지 출신입니다. 이들은 원 서식지로 돌려보내는 것이 옳지만, 상업 포경을 이어가는 현지 상황과 오랜 감금생활로 인해 자연으로의 방류가 어려운 경우 등을 고려하면 바다쉼터 조성이 필요하며, 북극에 서식하는 벨루가의 경우 아이슬란드에 위치한 벨루가 생츄어리로의 이송을 추진해 볼 수 있습니다.
해외 바다쉼터 사례들
국내 바다쉼터 조성의 필요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캐나다 서부에 위치한 해안가에서 고래 생츄어리(whale sanctuary)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본 생츄어리 조성을 주도한 웨일 생츄어리 프로젝트는 130여개소의 해역들을 물색해 오면서 최적의 생츄어리 부지를 확보합니다. 생츄어리 부지 선정에 있어서 다음 사항들이 고려됩니다.
△물리적 기준: 물의 깊이, 해저 상태, 조수 및 해류, 수생물, 그물 설치 위치와 방법, 담수 및 전기 접근성 등 해양학적 및 수문학적 분석
△야생동물에 미치는 영향: 기존에 살고 있는 지역 야생동물이 받는 영향 평가
△지역사회의 이익: 상업 및 여가 낚시의 이익, 보트 접근성, 해안선의 인구 밀도 및 “이해관계자 이익” 등
이를 고려하면서 충분한 넓이와 깊이를 지닌 공간인지, 극한의 날씨로부터 보호할 공간이 있는지, 하수, 오염물질이나 소음이 없는지, 사람들의 액티비티나 보트 이용이 잦은 곳인지 등 여러 사항들이 꼼꼼히 확인되어야 합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위치한 웨일 생츄어리 조감도 ⓒThe Whale Sanctuary Project
아이슬란드 헤이메이 섬에 위치한 벨루가 웨일 생츄어리 ⓒBeluga Whale Sanctuary
해당 공간에 대한 다양한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이곳이 돌고래들에게 합당한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 또한 필요합니다. 웨일 생츄어리 프로젝트(Whale Sanctuary Project) 팀은 물이 얼마나 빠르게,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가늠하고, 멀티빔 소나(multibeam Sonar) 장비를 이용해 침몰한 배 또는 오래된 자동차 등 해저의 이상 물체의 여부를 파악합니다.
돌고래는 음향 동물로서 보트나 다른 소음과 같은 인위적인 소리가 청력 주파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그 영향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수중 청음기나 수중 마이크를 통해 수중 소음을 파악합니다. 또한 수중 비디오 촬영을 통해 해저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조사하고 데이터화하고, 다양한 위치에서 물 샘플을 채취하여 오염 수준도 측정합니다. 이 외에도 인근 하천 등의 담수 조사 및 태풍 착륙 시 파도 높이, 해안가로 잔해가 오는 정도 및 적재량 위치 등 세밀한 정보를 구축해 둡니다.
또 다른 요건은 바로 주민수용성 확보입니다. 후보 부지 내 어촌계의 어업권 분쟁 소지가 높다면 ‘환경보전해역’ 또는 ‘해양동물보호구역’ 등 지정된 지역 중심으로 바다쉼터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바다쉼터 조성에 있어서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을 구상할 수 있고, 주민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 이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서로 수용 가능한 범위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더 넓게 확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도 요원한 대한민국 수족관 고래류의 해방
해양수산부는 2023년 정부 예산안에 바다쉼터 조성에 대한 타당성 검토 및 기본계획 수립에 소요되는 예산 2억 원을 편성한 바 있으나 기획재정부에 의해 전액 삭감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민간이 소유한 수족관 고래류의 방류 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국비를 동원해 보호시설을 연구하고 조성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바다쉼터 조성 가능성이 확보되고, 실제 조성이 추진된다면 수족관 업체들이 고래들을 바다쉼터로 보내겠다는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게 하는 카드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바다쉼터 적지 선정 및 타당성 조사를 시작으로 실제 건립에 들어가는 소요시간을 생각하면 최소 4년 이상이 걸리지만, 현재 정부나 민간 어떤 단위에서도 조사단계 조차 돌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사이 불필요한 고통과 희생이 또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이용하지 않고 있는 가두리나 육지를 향해 들어간 만(bay) 등 지형적 특성을 활용하여 바다쉼터를 조성하는 것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해외 생츄어리의 추진 사례들을 연구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에 위치한 가두리
우리사회는 남녀노소를 불문, 구시대적인 수족관의 동물 전시와 체험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직접행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과된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에 동물을 만지거나 밟고 올라타는 체험을 금지하는 시대요구가 드디어 반영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유흥을 위해 납치, 감금해 온 고래류에 대해서 대한민국 정부의 비전과 결의가 요구됩니다. 바다로 돌려보낼 수 없다면 ‘바다쉼터’ 필요성을 인지하고 조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또 다른 희생을 목도하지 않도록 정부의 결단과 노력을 다시금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