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산불 동물구호] 도살을 기다리던 소 '소원이'와 농장동물들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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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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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을 입고, 다리가 부러졌던 다섯 살 소


울진 소 ‘소원이’는 다섯 살 난 암컷 소로, 카라가 울진 산불현장에서 동물구호활동을 하다 만난 동물입니다. 불길이 마을을 덮친 날, 소원이는 축사에서 탈출하려다 실패했습니다. 그 여파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소원이의 주인은 소원이의 도살을 위해 브루셀라 검사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길 4일, 또 곡기를 끊은지 이틀. 카라의 활동가들이 소원이를 만났을 때 소원이의 엉덩이와 등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소원이는 다리가 부러져 일어서지 못할뿐더러 고개를 드는 것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소들은 도살장으로 갈 때 운송 차량에 자기 발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법적으로 기립이 불가능한 소라고 해도 사람이 먹는데 지장이 없다며 ‘부상’, ‘난산’ 등으로 인한 경우도 도살이 허용됩니다. 설 수 없을 만큼 아픈 기립불능 소들의 경우는 장비를 이용해 운송 차량에 실려집니다. 500kg이 넘는 쓰러진 동물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갈고리차, 지게차, 쇠꼬챙이, 밧줄 등이 동원되기도 하며 참혹한 학대를 예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살장에서는 가격 등급이 매겨지고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살아있다면’ 또 한 번의 참혹한 과정을 거쳐 도살이 이뤄집니다. 운송 중 죽거나 도살장에서 계류 중 죽으면 폐기물로 처리됩니다.


카라는 소원이가 그런 과정을 겪게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해당 농장은 너무 좁고 열악해서 소원이를 심각한 학대 없이 운송차에 실을 방법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농장주를 설득해 소원이를 매입 구조하여 소유권을 확보하고 즉각적으로 치료에 착수했습니다. 수의사님도 한달음에 달려와 치료해 주셨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것들을 다 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활동가들이 수액을 들고 어두운 축사에서 불을 밝히며 소원이의 생존을 간절히 빌었습니다. 확률은 낮더라도 치료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소원이의 죽음과 장례


이름 없이 평생 이표번호로만 구분되며 살았던 소. 카라는 그에게 ‘소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즉시 매입비와 치료비 500만원에 대한 긴급 모금을 시작하며 소원이를 어디서 지낼 수 있도록 할지 등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아프게도 소원이는 다음 날 아침 해를 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도살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소원이가 죽었다면 폐기물로 처리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소원이를 후원자님들의 지지와 성원이 있어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지만, 소원이의 다리에 밧줄이 묶이거나, 낯선 도살장에서 동료의 피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활동가들은 5년의 시간동안 소원이를 ‘고기’로 얽매여 이력이 추적되던 소원이의 귀에 달린 ‘이표’를 제거했습니다. 이제 그를 고기로 규정했던 이 세상과 분리되어 녀석은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돌아갔습니다.


소원이를 묻어주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이 꼬박 삼 일을 기다려서야 소원이의 매립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싸우고, 설득하고, 뒤돌아 우는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소원이가 잠든 곳은 양지 바른 땅입니다. 소 사체 처리에 대한 규정을 따랐으며, 카라의 활동가들은 존엄하게 장례 과정을 지켜 소원이를 배웅했습니다. 이제 백일 여쯤 지나면 소원이의 몸은 완전히 분해될 것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간 소원이의 명복을 빕니다.






모두가 평등한 생명, 농장동물들의 평화와 안녕을 빕니다


산불의 고통은 소원이를 비롯한 다른 농장동물들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어느 닭은 무너져내린 골조에 몸이 관통당한 채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감겨줄 두 눈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정중히 예를 표하고 사체를 수습했습니다. 카라가 현장을 다니며 잿더미 속에서 꺼낸 닭만 해도 십여 구에 이릅니다.


며칠동안 사람이 오지 않은 닭장에는 까맣게 그을린 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사료와 물을 부어주자, 닭들은 사료보다는 물그릇으로 가 한참 동안 목을 적셨습니다. 산불의 열기를 맞고서 이제야 물을 먹는 처지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한 염소농장에는 20여 마리 염소들이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염소는 다섯 마리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나머지는 며칠 내내 행방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냥 죽지 않았기만을, 어디선가 개울에서 목을 적시고 불타지 않은 새순이라도 뜯어 먹으며 목숨을 연명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어떠한 권리도 자유도 없이 살아야 하는 농장동물들의 삶. 개나 고양이와는 달리 구조해도 갈 데가 마땅치 않고, 구조를 위해서는 매입밖에는 방법이 없는 '사유재산'의 지위밖에는 없는 생명들의 삶도 너무나 참담합니다. 살아 있다면 기회가 있을 거라고 낙관하기에 손 쓸수도 없이 너무 많은 생명이 도살되고 고기로 팔려나갑니다.


우리 집의 반려견과 닭이, 반려묘와 염소와 다를 게 무엇이 있을까요. 이들과 사람은 또 뭐가 다를까요.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을 경계짓는 것은 대체무얼까요. 고기가 되기 위해 죽어야 했던 목숨을, 다시 공장식 축산의 동물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합니다.


울진 현장의 동물들을 태운 건 산불이지만, 동물권행동 카라는 이 농장동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들을 과도한 육식주의로 지나치게 풍요로워진 우리 사회를 지목합니다. 축산업과 생산-판매의 유통 구조가 변화하길, 비거니즘의 확산으로 동물들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길 바라며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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