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 달걀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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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표면의 10가지 문자와 숫자의 마지막 숫자(1~4번)를 통해 달걀이 어떤 환경에서 키워진 닭에게서 나왔는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 중 1번(자유 방목)과 2번(평사 사육)은 동물복지인증이라고 하여, 케이지에서의 밀집 사육이 아닌 동물의 복지 기준에 맞춰 사육되는 환경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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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케이지 프리 Cage-free 사육환경이라고 상상하는 것만큼 동물복지 농장에서 닭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키워질까요? 최근 여러 기사를 통해 알려진 ‘개방형 케이지’인 에이비어리는 동물복지인증 마크를 달지만 동물복지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일맥상통하는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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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계 동물복지 농장 244개소 중 자유방목 하는 곳은 46개소뿐이며, 그 외는 평사 사육이라 하여 실내에서 닭들을 풀어놓는 형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런 평사 사육시설에도 1층만 있는 곳이 있는 반면 4층까지 있는 곳도 있습니다. 아파트처럼 다단으로 슬랫을 쌓아 두배에 가까운 사육밀도에서 닭들을 키우는 시설을 '에이비어리(유럽형 개방 케이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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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케이지 사육이 금지되면서 케이지의 문을 없애면서 처음 도입된 이러한 형태의 농장은 닫힌 케이지보다는 나은 사육환경을 제공하지만, 국내에 도입되고 있는 에이비어리는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높은 사육밀도와 제한 없는 사육두수 문제가 여전합니다. 슬랫(다단구조물)이 면적에 포함되면서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했을 때 1㎡당 17마리(마리당 0.058㎡)로 1㎡당 9마리 기준인 일반 평사(마리당 0.11㎡)보다는 기존 4번란인 배터리 케이지(1㎡당 20마리=마리당 0.05㎡)에 더욱 가까운 사육밀도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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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란계 총 7,015만 마리 중 동물복지 농장에서 사육되는 닭의 비율은 7.6%에 그치며 자유 방목 환경에서 키운 닭은 0.5% 정도에 불과합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에이비어리 케이지가 등장하면서 원래 동물복지 취지에 맞게 닭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키우고자 했던 소농가들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농장에서 생산하는 달걀의 개수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 판로의 확보 등에서 대규모 에이비어리 농가와 경쟁 하기 어렵다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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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비싼 값을 주고도 동물의 복지를 위해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했지만, 동물복지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또다른 공장식 축산을 부르고 있는 에이비어리와 같은 사육 시스템을 진정한 동물복지로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동물의 복지를 최우선 가치로 지향해야 하는 동물복지 농장의 방향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동물권행동 카라는 2번이어도 같은 2번이 아닌 '에이비어리 달걀' 문제를 계속 알려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