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물영화제 포커스 포럼 후기] 동물은 물건인가?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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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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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물영화제 포커스 포럼 후기>


동물은 물건인가?



제5회 서울동물영화제가 진행되던 지난 10월 29일. 유인원의 생존권, 자율권, 고문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비인간인격체> 상영과 함께 “동물은 물건인가”란 주제의 포커스 포럼이 진행되었습니다. 




영화 <비인간인격체>는 오랑우탄 산드라의 온전한 삶을 되찾아 주기 위한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산드라는 친구도 가족도 없이 33년 간 열악한 공간에서 전시동물로 살아갑니다. 복잡한 환경 속에서 동족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오랑우탄의 생태적 습성이 모두 부정된 채 말입니다. 동물보호단체는 산드라를 나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 인신보호영장 청구 소송을 제기합니다. 재판의 쟁점은 산드라를 ‘사물’과 ‘사람’ 중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는가였고, 법원은 “인지능력이 있는 동물을 사물로 다룰 수 없다”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며 산드라의 동물격, 즉 비인간인격체(non human person)를 인정합니다. 




이 판례는 인격(人格)과 같이 동물의 격(格)에 대한 고민을 인류사회에 화두로 던진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동물보호를 넘어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재고하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고, 지난해 발의된 민법 개정안으로 동물은 물건인가란 물음에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깊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남종영 기자(한겨레)의 여는말과 함께 본 포커스 포럼을 통해 동물의 격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해 보겠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권리가 있잖아요? ‘생태법인’ 제주남방큰돌고래 적용 모델과 추진과정 / 진희종 교수(제주대학교)


민법을 보면 권리능력이 인정된 주체를 자연인 그리고 법인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즉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존재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자연과 그 안의 동물을 ‘구성원’으로서 인정하면서도 사실상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 오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사회제도적 구분으로 인해 오랜 역사 동안 동물이 본 서식지에서 온전히 살아갈 권리가 무심히 간과되어 왔습니다.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진희종 교수는 “미래세대는 물론 인간 이외의 존재들 가운데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대하여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인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개념을 제시합니다. 자연인과 법인으로 이분화된 권리 주체와 더불어 “자연 존재”에게 법적 권리 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또 다른 법인을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생태법인이 제안된 것일까요? 진희종 교수는 “소중한 자연 생태계에 법인격을 부여해 그 권리를 인정받고 지속가능토록 하면서 자연을 인간의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을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관점으로 전환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가 생태법인”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생태법인의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위기 속에서 시대적 변화에 맞게 법체계 자체도 변화됩니다. 생태법인이라는 명제가 나왔다면 이것이 왜 나왔는지, 왜 필요한지 시대를 돌아보고 반영할 필요가 있으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법인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일부 법률가들은 ‘페이퍼컴퍼니’ 사례를 들며 실체는 없지만 법인 자격을 부여하는 가능성을 볼 때, 생태에 크게 기여하는 종 보호 목적으로 ‘생태법인’을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남방큰돌고래를 대상으로 하는 생태법인 제도의 개념 도입에 대해서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제주도에서 대중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었고 해양수산부에서도 전문가 간담회가 진행되었으며, 또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전교생이 참여하는 토론대회의 주제가 ‘생태법인’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의회에서 “생태법인 필요성에 공감하고 관심갖고 노력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보전해야 할 자연물을 보호하는 법률이 있지만, 좀 더 능동적으로 그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생태법인이라는 제도의 도입이 속도를 내면 좋겠습니다.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정, 이것이 ‘동물격(non human person)에 대한 이해의 바탕

한국 사회, 동물의 법적 지위와 동물격 /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


전진경 대표는 영화 <비인간인격체>와 같이 한국에서도 유인원을 구출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소개합니다. 지난 2014년 바다코끼리를 구타하고, 오랑우탄에 신발과 옷을 입히고 재롱을 부리게 한 체험동물원 쥬쥬를 카라가 강하게 대응했던 사건이었죠. (※ 당시 대응활동 보기: https://www.ekara.org/activity/wild/read/5504)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 진행과 별개로 동물학대의 정황이 분명해도 소유자로부터 영구 격리하거나 사육을 제한하기가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소송이 이어지던 중에 오랑이는 새로 반입된 복돌이 사이에서 새끼를 낳았고, 이 또한 대중에 전시되었죠.


산드라의 판결을 통해 동물의 ‘비인간인격체’가 인정된 사례를 확보하게 되었지만 한국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앞서 설명된 생태법인이 필요한 배경에도 있지만, 국내에서 동물의 존재 자체가 지닌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법적 한계로 쥬쥬는 여전히 동물을 소유하며 지금까지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전 대표는 영화의 서두에서 비인간인격체에 대한 힌트를 포착합니다. “영어로 Non human Person을 보면 ‘퍼슨’을 대체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Person의 어원을 살펴보면 무엇을 향하거나 통하는 뜻과 널리 퍼져나감을 의미합니다. 즉 관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퍼슨은 ‘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퍼슨은 본질의 구성체이자 각각의 특질을 지니죠. 서로간의 관계성을 지니고 이는 거대한 자연, 관계성을 가진 존재로 봐야 합니다.” 풀어서 보면 오랑우탄, 돌고래, 코끼리 등 생물도 퍼슨이며 모두 관계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나 퍼슨후드(personhood)를 ‘사람다움’으로 한계를 지어버림으로써 동물을 본질의 구성체로 보지 않고 착취의 대상으로 보게 된 것이라 설명합니다.


영국에서 두족류, 십각류 등도 동물보호법의 보호대상 범주에 포섭되는 등 동물권 인식이 확산되는 세계적 조류에 비해 우리나라는 동물에 대한 극과 극의 처우, 삭막한 콘크리트 전시실에 가둬두고 오락거리로 여기면서 이곳이 종보전 센터라며 대중을 호도하는 등 암담한 문제들이 존재하며 여전히 그들의 격이 부정되고 ‘물건화’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전 대표는 “산업의 중흥을 위해 동물을 도구로 이용해 오면서 여러가지로 직면한 낙후된 동물권 문제들, 동물학대를 실효성있게 막아내지 못하는 것은 거시적인 법제의 변화 - 민법, 헌법에서의 동물의 법적 지위 개선 및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 명시 - 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에서 기인한다고 꼬집습니다. 이어 전 대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동물의 존재 자체도 생태계에서 핵심적이며,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인간 또한 행복해진다”고 강조합니다.



오랑우탄 산드라가 비인간인격체로 인정받은 해외 사례를 보며 우리도 최근 해외 대형 체험동물원인 인도네시아 따만사파리로 보내질 뻔 했던 침팬지 광복이와 광순이를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사례가 있었죠. 또한 동물학대 등 큰 사회문제화 된 동물 관련 범죄에 대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으로 동물의 법적지위 개선, 우리사회가 바라보아야 하는 동물의 격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 광복, 관순이 반출 저지 시민집회를 주도한 김보경 대표(책공장더불어),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대표이자 동물권 법제를 고민하는 서국화 변호사(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대표), 그리고 카라의 동물범죄위원회 위원이자 동물학대 범죄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박미랑 교수(한남대학교 경찰학과)가 함께 해 주었습니다.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 관순이 반출 철회 집회 92일의 기록 / 김보경(책공장더불어 대표)


김대표는 “서울대공원의 침팬지 광복이와 관순이가 해외 동물원으로 간다는 기사를 보고 어떤 곳인가 찾아보니 굉장히 큰 체험동물원이더군요. 그 곳의 동물들은 관람객이 다가가면 입을 벌리고 있었어요. 즉 먹이를 구걸하는 행동이고 늘상 굶김이 일어나는 학대하는 곳이라 판단했고 그대로 보낼 수 없어 시민 반대 액션을 추동했다”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보유 동물을 거래하는 것은 동물원에서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서울대공원은 아시아 최초로 AZA 인증을 받은 동물원이며 국내에서도 동물복지 동물원을 자처하는데 생츄어리나 그보다 못하더라도 윤리적으로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원이 아닌 체험시설로 광복, 관순이를 보낸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김 대표는 이어 “60년 전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의 도구 사용 능력을 발견하고 지능과 인식, 사고력, 그들의 문화가 있음을 알리는 과학적 성취를 이뤘으나 2022년 대한민국의 침팬지는 고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당장 눈앞의 반출을 막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면서 서울대공원은 결국 반출 계획을 철회하죠. 큰 성과입니다. 그러나 남은 숙제들이 있습니다.


“미국 알래스카 동물원에 사육되던 코끼리는 갖은 질병으로 고통이 심했고 서 있을 힘조차 없어서 크레인으로 세울 정도였다. 이를 본 지역 주민들은 단체를 만들고 1년 6개월 만에 미국 서부 코끼리 보호구역으로 옮겼다. 이번 광복 관순이 반출 저지 운동도 마찬가지로 동물운동의 정치화가 필요하단 생각”을 전하며 동물원의 동물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시민운동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의 시급성 / 서국화(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대표)


지난해 법무부가 발의한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안이 국회로 넘어왔습니다. 민법 개정안은 앞서 나온 ‘생태법인’ ‘오랑우탄 구조’ 등 사례들뿐만 아니라 동물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서 변호사는 “민법이 개정된다 해도 동물에 권리가 생긴다거나 하는 등 당장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 보지만 근본적으로 민법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동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물은 절대 물건이 아닌데, 왜 물건으로 취급하는 지에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며 법률이 정하는 그릇된 정의가 결국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피력합니다.


거짓으로 이루어진 법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정의함에 있어서 그 개체가 지니는 특성을 생각해야 하듯, 동물 역시 그 고유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결코 물건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것이죠. 서 변호사는 동물이 물건에 불과한 제도의 개선으로 당장 현실이 변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를 기반으로 다른 법률을 바꿀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간 지지부진했던 동물 생명에 대한 온전한 보호기제의 부재. 동물의 격과 마찬가지로 법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만 온전한 보호가 가능할 것입니다.




동물학대 범죄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동물격 / 박미랑(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동물 관련된 뉴스를 볼 때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문을 연 박 교수는 민법 개정안 필요성, 침팬지의 제대로 살아갈 권리 등과 함께 무엇이 더 바뀌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앞서 몇가지 범죄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2014년 대구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습니다. 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면서 여성의 반려견을 칼로 찌르고 목 졸라 죽이려다 숨이 붙어 있어 세탁기에 넣고 돌린 사건입니다. 법원은 판결문에 ”시가 20만원 상당의 애완견“이란 표현을 쓰며 ”타인 소유의 재물을 손괴하였고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였다“고 표현합니다. 또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수차례 검거된 투견 도박 사건에서 법원은 이 사건들을 약식으로 처리합니다. 즉 사건을 중대하게 보지 않았던 거죠. 투견에 동원된 핏불테리어들은 살기 위해 서로를 물어 뜯어야 했고 죽어갔습니다. 과연 피해자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요?”


동물을 물건으로 치부하고 동물을 오락과 이윤 수단으로 이용한 도박자들을 관대하게 처벌한 사법부의 판결들을 설명한 박 교수는 “위 사건들은 동물이 아닌 생명 자체에 가한 학대와 범죄”이며, 수사기관 사법기관 모두 이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는 이어 지금 우리사회가 민법 개정안의 필요성, 비인간인격체라는 존재, 생태법인 도입에 목소리를 높이고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동물의 격을 인정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안전한 사회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살아있는 물건 정도로 동물을 대했던 인류는 성찰을 통해 실제적 행동을 드러내며 변곡의 순간을 거쳐 왔습니다. 1978년 유네스코 본부에서 선포된 “세계동물권리선언”, 2009년 “동물은 지각력 있는 존재”임이 천명된 리스본 조약, 2012년 캠브리지 선언* 등이 그러한 예일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동물을 어떻게 인정하고 보호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인격은 법질서에 의해 존재가 인정되고 권리가 부여됨에 따라 동물격 또한 법질서로 포섭되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동물의 생명을 온전히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비로소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요.




*캠브리지 선언(Cambridge Declaration on Consciousness): 2012년 7월, 신경생물학, 인지과학 등 과학자들이 “동물들도 의도적인 행동을 보이는 능력과 함께 의식적 상태를 구성하는 신경해부학적, 신경화학적, 신경생리학적 기질들을 가지고 있는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민이 신경기질을 지닌 유일한 생물이 아니다. 동물에게도 의식을 만드는 신경기질이 존재한다”고 선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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