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 철장 속 사육곰 이야기
좁은 철장, 콘크리트 벽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야생동물이 많습니다. 이런 환경을 이야기하면 보통은 동물원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 동물원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가 있는데요. 바로 사육곰입니다.
ⓒ동물권행동 카라
사육곰이라 불린 곰들
1980년대 초 농림부는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재수출용 사육곰 수입을 장려했습니다. 사육곰을 번식시켜서 해외로 수출하도록 한 것이지요. 정부의 방침대로 우리 농가들은 사육곰을 무작위로 들여왔고, 한 농가에서 10여 마리, 많게는 200여 마리를 좁은 철장 속에 가둬 사육했습니다. 1993년 정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곰 수입 금지정책으로 선회합니다.
그러나 기존에 들여온 사육곰의 지속적인 번식으로 2000년대 후반들어 사육곰 개체수는 어림잡아 2,000~3,000여 마리로 추산된 바 있습니다. 개체수 조절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사육곰 증식 금지를 위한 중성화수술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현재 526 마리로 공식 집계되고 있습니다. 애초에 쓸개 채취용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죽어서야 감옥을 벗어날 수 있는 곰들은 현재 웅담 수요가 높지 않아 좁은 철장 속에 방치되어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육곰 ⓒ동물권행동 카라
사육곰은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인가요?
사육곰으로 불리는 곰들의 90% 이상은 반달가슴곰이라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천연기념물 제329호인 반달가슴곰과 같지만 종자가 다른 ‘아시아흑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흑곰 아종들은 우리나라 우수리산, 일본산, 히말라야산으로 구분하고, 모두 반달무늬가 있어서 통칭 반달가슴곰이라 부릅니다. 1980년대 초 웅담채취용으로 수입된 곰들은 대부분 아시아흑곰인 반달가슴곰이고, 불곰이나 말레이곰 등은 매우 극소수입니다.
전국 526마리의 사육곰들은 반달무늬를 지니고 있어도 천연기념물 제329호인 반달가슴곰으로 오롯이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평생 1평 감옥 속에서 죽어가도 정부에 지워지는 어떠한 법적 의무도 없습니다. 온전한 반달가슴곰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육곰들이 방치되는 현실은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할 숙제입니다.
아픈 사육곰들
인간의 사욕으로 저 멀리 건너오거나 태어난 사육곰들은 좁고 단조로운 철장 속에서 겨우 생존하고 있습니다. 2005년 환경부는 ‘사육곰 관리지침’을 통해 사육시설 및 운영 기준, 사육곰 관리 원칙 및 방법, 사육곰 용도변경 신고 등을 마련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러한 정부의 지침으로 사육곰의 복지가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침 내용 또한 농가와 행정 관리자 중심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심한 정형행동을 보이고, 열사병에 쓰러져도 말 그대로 ‘사육곰을 위한’ 관리방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카라는 올 봄, 강원도에 위치한 사육곰 농가 현장을 조사했습니다. 이곳의 곰들은 약 20마리 정도였고 모두 뜬장 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1번, 지방 많은 돼지고기 한 덩어리가 그들의 ‘먹이’였고, 이 마저도 잘 먹지 못하는 곰도 있었습니다. 다른 농가의 경우 개사료만 주는 곳도 있고, 음식물쓰레기를 급여하는 곳도 있습니다. 야생에서의 곰은 과일, 채소, 때때로 생선 등을 섭취하며 살아가지만, 이곳의 곰들은 제대로 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어 건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심각한 정형행동의 일상화입니다. 한 농가의 경우 모든 사육곰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거나 좁은 보폭으로 왔다 갔다 하고, 일부는 앞발을 입에 물고 씹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정형행동은 일종의 ‘정신적 장애’로 쇠창살에 갇힌 환경에서 오는 무료함,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 스트레스를 풀 수 없는 상황 등으로 행동의 빈도가 잦아지게 됩니다. 정형행동이 심한 경우에는 환경에 변화를 주어도 자연적으로 치료되기 어렵고 지속될 수 있습니다.
연신 앞발을 입에 넣고 있는 곰 ⓒ동물권행동 카라
국내 사육곰 생츄어리 조성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감옥과 다를 바 없는 1평 철장 속 사육곰을 위한 방법은 없을까요? 현재 520여 마리의 사육곰이 자연사하도록 조치 없이 놔둬야 할까요? 지금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방치하는 방법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뜻을 같이하는 녹색연합,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동물자유연대, 카라는 곰들을 위해 ‘사육곰 생츄어리 건립’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생츄어리(Sanctuary)는 야생성을 잃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야생동물들을 위한 보호소입니다. 오랫동안 자연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 자연과 흡사한 환경에서 평생 살아가는 집이 되고, 자연으로의 방사가 가능한 경우 일정 기간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간 기착지가 되기도 합니다. |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사육곰을 위한 생츄어리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중국 청도의 베어 생츄어리, 베트남의 땀다오 생츄어리와 깟띠엔 생츄어리, 그리고 캄보디아의 프놈타마오 동물공원 등은 국내에서 논의 중인 생츄어리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사례 모두 정부가 부지 및 시설을 제공하고, 민간단체가 운영을 맡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곰의 평균 행동권역은 약 100㎢ 정도로, 평균 수치를 맞추지 못하더라도 상당 규모의 부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민모금으로만 부지와 시설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생츄어리라는 대안을 향해 도달하기까지 어떤 과정과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베트남 땀다오 국립공원 곰 생츄어리 전경 ⓒ긴수염
중국 청도 곰 생츄어리 전경과 흙바닥에 누운 사육곰 ⓒ동물권행동 카라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현재 4개 단체들은 사육곰 생츄어리를 원활히 그리고 조속히 조성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이 문제와 대안에 대해서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밑받침될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하고 현실화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목소리도 필요합니다.
1평 철장 속 사육곰들, 괴로움으로 가득할 곰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생츄어리를 만들 수 있고, 곰들을 구조하여 그 안에서 살아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 바람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수 있도록 여러분들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