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동물보호명예감시원이자 정읍시민행동에서 활동하는 최은희님은 싸움소 문제뿐만 아니라 유기동물, 개식용 문제에도 적극 대응하고 활동하는 활동가이자 작가입니다. 여름만 되면 성행하는 보신문화를 신봉하는 우리의 '아버님'들에게 보신탕의 숨겨진 이면이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비윤리적이며, 얼마나 반생명적인지를 절절히 알리는 편지가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아버님, 복날 보신탕은 위험한 음식입니다
아버님.
IMF 때 아버님 댁에서 한동안 저희가 얹혀 살았던 일 기억하시죠? 그때 아버님은 골목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주셨지요. 시장에서 생선 찌꺼기를 모아다가 솥에 끓여주셨으니 고양이들에게 인기가 넘쳐났죠. 생선 냄새를 맡고 고양이들이 몰려와 담장 위에서 야옹 야옹 아버님을 향해 용비어천가를 부르듯 요란하게 울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셨던 아버님에게는 골목 고양이도 집 잃은 큰아들처럼 품에서 돌보아야 할 하나님의 피조물이었을까요? 젖먹이였던 둘째가 아버님 등에 업혀 고양이를 보며 까르르 까르르 웃을 때, 시름 겨웠던 시절임에도 저도 따라 웃곤 했지요.
그런데 아버님, 요즘 저는 큰 고민이 있어요.
제가 동물보호 명예감시원으로 동물에 관한 법률과 현실을 배우고 보니 개고기가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잘 알았기 때문이에요. 팔순이 넘으신 아버님께서 오랜 친구분들과 가끔 만나 옛 추억을 나누시며 개고기를 드시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리고 곧 초복 중복 말복 복날이 오고, 어쩌면 개고기를 몇 차례 더 드실 것이 분명한 여름이기에 걱정은 더 커져만 갑니다. 무엇이 그렇게 위험하냐고요?
위험 1. 개는 더러운 음식쓰레기를 먹고 삽니다.
개 농장의 개는 사료를 먹여 키우지 않습니다. 대신 닭이나 오리 가공공장에서 창자나 머리같은 온갖 부산물을 받아 생으로 먹이지요. 개도 고기는 팔고 머리와 뼈 내장같은 부산물은 다시 개에게 줘서 개가 개를 먹고 자라는 개농장의 현실을 뉴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식당의 음식쓰레기를 걷어 먹이는데 부패를 늦추기 위해 퇴비발효제를 섞어 개에게 먹인다는 것 아버님도 알고 계셨어요? 이런데도 개고기를 몸보신 건강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험 2. 개는 법으로 허용된 식용가축이 아니어서 개고기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으로 안전하게 관리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법은 가축의 사육부터 축산물의 원료관리, 처리, 가공, 포장, 유통,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국민건강을 위해 축산물 위생관리법으로 엄격하게 허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개는 식용가축이 아니라 반려동물로 규정되었습니다. 개식용과 개 도살이 금지되었고 축산물 위생관리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도축 전 질병검사, 축산물의 병원성미생물 검사 및 오염방지 조사 심의, 항생물질과 농약등 유해성 물질 잔류방지, 가공, 포장, 보존, 유통의 기준이나 성분의 규격상황, 위생등급, 도살처리, 그 어느 하나도 개고기는 법에 의해 관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안전성을 전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위생이 엉망인 개농장에서는 개들이 병들어 죽지않게 늘 항생제를 물에 타서 먹입니다. 그러나 기생충은 항생제에 죽지 않으니 도살된 개의 창자에서 국수처럼 하얀 기생충 뭉치가 발견되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온갖 썩고 더러운 음식물쓰레기와 항생제로 길러지고, 병균이나 농약 항생물질 검사도 거치지 않은 이 개고기를 아버님이 친구분들과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다 생각하니 아버님 건강이 어찌 걱정 되지 않겠습니까?
위험 3. 보신탕이 되기 위해 벙어리 귀머거리가 된 개들은 뜬 장에서 짧은 생을 마칩니다.
개농장 주인들은 시끄럽게 짖는 소리로 민원이 발생할까봐 개들이 아예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자전거 바퀴에 공기 넣는 주입기를 강아지 귀에 넣어 고막을 뚫어버립니다. 또 짖지 못하도록 젓가락을 목에 찔러 성대를 끊어버립니다. 똥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바닥이 숭숭 뚫린 뜬 철장에서 키우다 보니 개들은 발이 빠져 제대로 일어 설 수조차 없어 네발이 모두 기형으로 비틀려있습니다. 좁은 장소에서 많이 키우기 위해 좁은 개장을 만드니 뛰기는커녕 몸을 한 바퀴 돌려볼 수도 없습니다. 듣지도 짖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이 오직 보신탕이 되기 위해 뜬장에 갇혀 생을 마칩니다. 한 생명이 한 생명으로 돈을 벌고, 한 생명이 한 생명을 먹기 위해 이렇게 잔인한 반생명적인 행위를 해도 되는 걸까요? 천벌을 받을까봐 저는 두렵습니다.
아버님.
열일곱 살이 된 둘째 손녀가 해남 장터에 놀러 갔다가 빨간 양파망에 담아 약재라고 파는 어린 고양이를 구해왔을 때 아버님은 한탄하셨습니다. 관절염으로 무릎을 쑤실 때는 고양이를 고아 먹을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관절염약을 처방받아 먹어야 한다고, 지금도 그렇게 미신을 믿는 무지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시며 혀를 차셨습니다.
보리밥도 배불리 못 먹고 땡볕에 농사일하느라 땀을 말로 쏟으며 온몸의 진과 기가 다 빠져버렸던 시대에는 개고기로 몸보신하는 것은 피치 못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힘든 일을 하는 가난한 이들이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이 동네에서 키우던 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관절약 뿐 아니라 에어컨도 있고 삼시세끼 배부르게 밥 먹고 영양제도 넘치는 시대입니다. 개고기로 몸의 양기를 보충해야한다는 말은 고양이로 관절염을 치료한다는 말처럼 미신에 가까운 말이 분명합니다.
어제 저녁 운동을 하다가 유모차에 작은 강아지를 싣고 천변으로 가시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개산책 시키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했더니 등이 굽으신 할머니는 요놈덕분에 내가 산다고 웃으셨습니다. 하루 종일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신데 강아지 때문에 웃고, 말도 하고, 밖에 나와 운동하고 움직인다며 요놈이 효자라고 등을 쓰다듬으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이 세 집중에 한집, 더 이상 고양이는 약이 아니고, 개는 음식이 아닙니다.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반려동물로 바뀌었습니다. 아버님 올 복날부터는 사람의 건강에도 위험하고 개에게도 잔인한 보신탕과 이별을 고해주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올 복날에는 콩나물이 듬뿍 든 아구찜을 먹으러 손자 손녀와 함께 가시지요. 아버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좋은 말씀 해주시며 언제까지나 저희 곁에 계셔주시길 기도합니다.
2020년 6월. 아버님의 큰 며느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