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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파주에 소재한 개 농장에서 만난 설희는 분변이 가득 쌓인 녹슨 뜬 장안에서도 눈부시게 빛이 나던 개였습니다. 낯선 활동가들을 경계하며 큰소리로 짖거나 뜬 장 구석으로 숨어들던 개들과 달리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있던 설희는 구조를 위해 활동가가 뜬 장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자 조용히 다가와 활동가의 손을 핥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쓰다듬어 주는 활동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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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은 이런 설희가 언제부터 이곳 뜬 장에 갇혀 지내게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나 가족으로부터 유기된 것은 아닌지 동물등록 칩 삽입 여부를 확인해 보았으나 설희의 몸에는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을 떠돌거나 버려진 개들을 데려왔다는 농장주의 설명으로 한때 누군가의 가족이었다가 버려진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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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장안으로 들어가 전염병 키트 검사, 채혈 등 기초적인 검사를 진행하고, 뜬 장 밖으로 안겨 나오는 동안에도 설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았고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낯선 장면과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연신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설희는 2살 추정의 어린 암컷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잔혹한 도살이 행해지던 개 농장을 완전히 벗어난 설희는 혹시 모를 전염병 잠복기에 대비하여 임시로 격리 기간을 보내게 될 카라 위탁처에 도착하였습니다. 활동가의 품에 안겨 밝게 빛나는 햇살과 푸르게 펼쳐진 잔디밭을 바라보는 설희의 표정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순식간에 변한 자신의 상황에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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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설희를 안심시키며 조심스럽게 잔디밭 위에 내려주었지만, 설희는 한동안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습니다. 땅에 발이 붙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설희에게 손을 내밀며 “걸어볼까?”라고 연신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혹시라도 땅 위에서 걷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흙냄새와 풀냄새를 맡으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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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가 마지막으로 땅을 밟고 흙냄새를 맡았던 것은 언제였을까요. 설희는 풀냄새를 맡으며 어떤 기억을 떠올렸을까요.
여느 개들처럼, 잔디밭을 신나게 달리고 그 위로 뒹굴며 행복해하는 설희를 보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식용 개 농장’에 갇혀 있던 설희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오버랩되었습니다. 이날 개 농장에서 구조되지 않았다면 설희는 마을을 떠도는 개장수 트럭으로부터, 자가 번식으로 인한 강제 임신과 출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뜬 장 위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이날 구조된 개의 대다수가 1살~2살가량의 어린 개였지만 11마리 중 9마리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태어난 후 계속 방치되어 살다 도살장으로 보내졌거나, 혹은 뜬 장에서만 살아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어린 개들에게 사람에게 사랑받아본 시간이 있기는 했을까요? 앞으로 펼쳐질 시간은 더 이상의 유기나 방치, 학대 없이 오롯이 사랑과 보살핌으로 가득한 삶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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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린 개들이 힘든 치료를 무사히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의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설희를 비롯한 11마리의 개들에 대한 소식은 지속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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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희 영상 보기 : https://blog.naver.com/animalkara/222719594441]
- 구조된 개들은 치료를 마친 후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 동물권행동 카라는 물리적 경제적 이유로 살처분(안락사) 하지 않는 시민단체입니다.
- 해당 개 도살장은 완전히 철거되었으며, 이곳에 더 이상의 죽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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