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
'동물권'
이 말들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의 동물과 생명에 대한 의식수준이 향상되었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이러한 동물보호 의식의 향상이 조금씩 우리사회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동물보호 열망이 만들어낸 변화 중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 정읍 축산테마파크 백지화 검토
전라북도 정읍시는 ‘축산테마파크’라는 이름으로 소싸움 경기장 건설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이름하여 ‘부전지구 생활환경 개선사업’의 일환이었는데요. 2016년부터 정읍시 부전동에 총 113억 원을 투입해 축산체험장, 전통가축마당 등의 가축테마존, 반려동물테마존, 이벤트존(소싸움장) 등 3개의 테마로 축산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정읍 축산테마파크 조감도. 조감도를 보더라도 ‘축산’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기 어렵다)
이름은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축산’과 연결되는 고리는 ‘소싸움’만이 거의 유일해 보였습니다. 축산테마파크가 들어설 지역이 조례에 의하면 가축사육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발표된 전라북도 감사결과에 따르면 정읍시가 정읍천 100m이내 가축사육 절대금지지역에 이 사업으로 가축사육시설을 위법하게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정읍시는 축산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잉꼬, 원앙, 토끼, 곤충 등을 이용한 전시‧체험 공간을 계획했고, 이벤트존에서는 유일하게 축산과 연결되는 소싸움장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싸움은 더 이상 농업사회라고 할 수 없는 오늘날 전통의 의미를 잃었고 동물을 오락용으로 이용하는 동물학대와 사행산업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지양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한데 정읍시는 지방정부로서 생명존중의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이처럼 소싸움을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지탄을 받았습니다.
카라는 즉각 소싸움장 건립 반대 성명서를 냈고, 정읍 지역 12개 시민단체 모임인 ‘동물학대 소싸움 도박장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은 정읍시청 앞에서 11개월 동안 200회가 넘는 일인시위를 했습니다.
이렇듯 많은 시민들의 반대 속에서 정읍시의 축산테마파크 사업계획은 예산낭비, 상수원 오염 등 지자체 조례 위반이라는 이유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라북도는 농촌테마공원 조성사업과 관련 지난 1월 16일 정읍시 앞으로 사업에 대한 반대 민원이 많으니 시민의견 수렴 등 사업 기본계획을 재검토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정읍시는 최근 기존 축산테마파크 사업을 반려동물공원 조성 사업으로 바꾸겠다는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읍시의 대안이 무엇인지 여전히 많은 질문이 남아있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1년에 걸친 시민들의 행동으로 소싸움장 건립 추진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8조(동물학대 등의 금지) 제2항 제3호에 따라 도박‧광고‧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명백한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싸움만은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동물학대의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변화의 시간을 고려한 것이지만, 소싸움이 동물학대가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싸움 동물학대 예외조항도 빨리 개정되어야겠습니다. 제2, 제3의 축산테마파크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요.
■ 부산 동부산관광단지 돌고래 수족관 철회
지난 2월 중순. 부산 기장군은 (주)골드시코리아인베스트먼트가 신청한 고래수족관 호텔 숙박업 허가 신청을 승인했습니다. 2019년 완공을 목표로 숙박시설과 아쿠아리움이 합쳐진 소위 ‘아쿠아월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동부산관광단지 조감도. 결국 돌고래 수족관 계획이 철회되었다!)
여기서 (주)골드시코리아인베스트먼트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주)골드시코리아인베스트먼트는 많은 수족관 돌고래가 폐사한 거제씨월드의 모회사입니다. 거제씨월드는 잔인한 돌고래 포획으로 악명 높은 일본 다이지로부터 돌고래를 수입해와 쇼에 동원하는 곳으로, 2014년 개장 이후 현재까지 6마리의 큰돌고래가 폐사한 ‘죽음의 수족관’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돌고래쇼장,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쿠아리움을 만들겠다며 나선 것입니다.
제돌이 등 남방큰돌고래 7마리가 제주 앞바다로 돌아가고, 돌고래 수입 금지법도 제정되고 있는 상황에 또 다른 돌고래 수족관과 돌고래쇼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동물단체 및 시민단체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이제는 많은 시민들이 돌고래 포획과정의 잔인함과 사육환경의 열악함 등 동물원수족관 사업에도 동물학대가 만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골드시코리아인베스트먼트와 부산시는 시대에 역행하는 돌고래 시설을 지으려고 한 것입니다.
심지어 서병수 부산시장은 “나는 돌고래 수족관 찬성한다.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를 바다로 보내면 적응 못하고 죽는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이는 돌고래 수족관의 동물학대를 직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동물을 전시용으로 다루는 산업을 옹호하는, 개념 없는 발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수족관에서 폐사한 돌고래들이 몇 마리인지만 보더라도, 아니 당장 작년 울산 남구청이 일본 다이지로부터 수입한 큰돌고래가 수입 5일 만에 폐사한 경우만 보더라도 이런 비상식적인 발언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산시와 (주)골드시코리아인베스트먼트의 움직임에 카라를 비롯한 여러 동물단체와 지역 시민단체들은 수차례 성명서와 기자회견을 통해 반대 행동을 펼쳤습니다. 시민들의 행동이 언론을 통해 여러차례 알려지자 여론을 의식했는지 결국 동부산관광단지에서 돌고래 시설 건설 계획은 철회되었습니다.
동부산관광단지 계획에서 돌고래 수족관이 철회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많은 시민들의 동물보호 열망이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돌고래쇼장과 돌고래 수족관이 철회된 것일 뿐 물개 등 다른 동물을 이용해 전시하고 쇼에 동원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여론을 의식해 철회한 것일 뿐 동물은 여전히 이용할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돌고래쇼를 비롯해 동물을 이용한 오락 행위를 완전 중단할 때까지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합니다.
동부산관광단지에서 돌고래 수족관이 철회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는7곳의 돌고래 수족관이 남아있습니다.
신규 돌고래 수족관과 신규 돌고래 수입의 완전 금지, 현존 수족관의 단계적인 폐쇄 그리고 (수족관 폐쇄 뒤 바로 방사가 어려운)수족관 돌고래들을 보낼 수 있는 바다쉼터 건립 등 앞으로도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습니다.
■ 변화들이 모여
아직 여러 지자체와 기업들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시민들의 동물보호 의식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대착오적이며 후진적인 행정 조치들이 관습이나 편의에 의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는 사회를 조금씩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목소리로 인해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미약하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사회 전체의 변화로 귀결될 것입니다.
카라는 인간의 개발 과정 속에서 동물‧생명 보호가 고려되는 사회가 올 때까지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