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에 대전 오월드에서 발생한 비극, 뽀롱이의 사살에 대한 시민과 여론의 관심과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당시 동물원 페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에 65,000분이 서명을 하는 등 다수의 동물원 폐지 청원이 있었습니다. 9월 28일 뽀롱이가 화장된 지 오늘로 꼭 한 달이 되었습니다. 오월드는 한 달간 부분 폐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뽀롱이의 수목장이 치러진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과연 동물원의 개선을 위한 실질적 논의와 합의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동물권행동 카라는 뽀롱이 사살 사태를 돌아보고 이후 한국 동물원의 향방에 대해 어려분과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동물원 내에서 사살되기까지 뽀롱이의 죽음으로부터 많은 분들이 동물원에서의 야생동물의 삶과 복지에 대해 ① 동물원 전면 폐쇄 (동물원 무용론) - 동물원 동물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냄 ② (폐쇄와 개선 등)- 동물원의 발전적 개혁과 자연 생태계 보전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이러한 소중한 움직임이 동물원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의 향상과 실질적인 야생동물의 복지 개선으로 꼭 귀결되기를 바랍니다. 카라가 조사하여 객관적으로 정리한 뽀롱이의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 해 주세요. |
9월 27일, 동물권행동 카라는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뽀롱이가 사살된 대전도시공사가 운영하는 대전 오월드가 있습니다.
2시간 넘게 달려 대전 오월드에 도착했습니다. 카라는 당일 뽀롱이의 수색과 생포에 참여했던 동물원 관계자 그리고 대전시청 관계자와 함께 퓨마 뽀롱이의 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명절 끝이라 인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길, 세상은 멈춘 듯 고요하고 경건했습니다.
뽀롱이는 열린 문을 통해 사육장(빨간색 표기)을 이탈했고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최초 목격된 후 마취총을 맞았다(노란색 표기). 이후 약 3시간 여 후 최초 목격지점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옥색 표기)에서 사살되었다.
뽀롱이는 2010년 서울동물원에서 태어났습니다. 2013년 서울동물원과 대전 오월드간 교류를 통해 대전 오월드로 보내졌고 이곳에서 얼마 뒤 2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퓨마의 새끼는 한 살 경 독립하니 뽀롱이의 새끼 2마리는 야생이라면 어미 곁을 벌써 떠났을 나이입니다.
퓨마 사육장 외관
퓨마 사육장은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제2 사육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퓨마의 생태 특성상 높은 곳(Vantage Point)에서 관찰할 장소를 만들어 주기 위한 동물원의 배려로 보였다.
퓨마사는 중형 고양이과 동물들이 사는 쥬랜드에 위치해 있습니다. 퓨마사와 재규어사는 주 사육장 외에 구름다리로 이어진 부속 사육장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속 전시 시설의 뒤편으로는 오월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상당히 가파른 야산이 이어지며, 이 야산은 다시 보문산과 연결됩니다.
오월드 전체는 다소 우묵한 분지처럼 산지로 둘러 싸여 있다. 보문산은 시민들의 탐방이 잦은 산이다. 2m 높이의 하얀 철책으로 보문산과 오월드가 구획되어 있다.
철망으로 만들어진 구름사다리와 부속 사육장시설의 길이와 폭은 넓지 않았습니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동물원이 그렇듯 사육장은 야생동물의 생태환경과 동떨어진 크기와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비극이 시작된 문, 즉 사육사가 드나드는 문이 측면에 있었습니다. 부속 사육장 문 밖으로는 아무런 장애물 없이 바로 넓은 야산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당일 이 문이 잠겨있지 않았습니다. 뽀롱이가 익숙한 사육장의 구름다리를 건너 부속 사육장 측면의 문으로 나갔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뽀롱이가 되어 난생처음 사육장 밖의 시간을 함께 해 보겠습니다. 이제 녀석을 수색했던 동물원 수색조와 함께 녀석의 흔적을 따라가 봅니다.
비극의 문, 보통의 철망 펜스 문으로 일반적인 크기였다. 이 문을 통해 뽀롱이는 나갔고 다른 퓨마들은 머물러 있었다.
뽀롱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시간이 오후 5시경, 사고가 보고되고 동물원 관계자들이 조를 짜서 수색을 시작합니다. 마취총 2정과 마취용 블루건을 지참하고 산비탈을 뒤집니다. 다른 한편 사고 보고가 올라간 후 대전시청에서는 ‘동물원에서 퓨마가 탈출’을 했으니 외출을 삼가라는 재난 문자를 대전시 전역에 발송합니다.
동물원은 대전도시공사 소속입니다. 대전도시공사는 보고를 받자 소방관서와 경찰 특공대에 연락을 했습니다. 이때 출동한 소방관은 대전소방본부, 중앙소방본부 소속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때 동원된 인원만 370-380명이었으며 이중에는 소방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투입된 인원도 포함되었습니다. 뽀롱이를 사살한 엽사들은 환경부 관할 금강유역환경청에서 연락 받은 유해조수감시단 소속입니다. 수색견도 투입되었습니다. 총 수색 인원은 48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최초 동물원은 모든 직원들이 조를 편성해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동물원 기준 제일 최우측의 수색을 맡은 수의사가 포함된 수색 1조가 동물원내 야산에 앉아있는 뽀롱이를 발견합니다. 뽀롱이는 공격 행동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뽀롱이를 유도하며 마취총을 발사했고 마취총을 맞은 뽀롱이가 비탈을 타고 내려갑니다. 발견 위치는 동물원에서 사용되는 물을 저장하는 ‘배수지’ 인근입니다. 배수지는 외관으로 볼 때는 그냥 평지로 보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은 뽀롱이가 숨었다는 ‘박스’나 ‘배수로’는 그곳에 전혀 없었습니다.
뽀롱이가 발견된 산비탈과 배수로로 착각되어 보도된 배수지 모습. 뽀롱이는 배수지 넘어 산비탈에 앉아있다 동물원 관계자들과 마주쳤다.
뽀롱이의 1차 생포 시도 시간은 6시 40분경입니다. 뽀롱이와 익숙한 수의사 등 동물원 관계자들이 비탈을 타고 내려가는 뽀롱이를 보고 “내가 조금 다치더라도 저 녀석을 끌어 안아볼까?”라고 생각하며 추적했으나 산비탈에서 흔적을 놓치고 맙니다.
뽀롱이가 마취제를 맞고 사라져간 산비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9시 40분경 총성이 들려왔습니다. 최초 4인 수색조가 뽀롱이를 발견한 곳과 가까운 건초 저장 창고 인근이었습니다. 뽀롱이의 사체는 공원 배터리 차에 실렸고 덮개가 덮혔습니다.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기를 원해 덮개를 벗겨 사살된 뽀롱이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동물원 관계자가 아닌 누군가가 비공식적으로 ‘박제’ 의견을 냈습니다.
건초 저장창고의 모습
평지 위로 보이는 산비탈 즈음에서 뽀롱이가 사살되었다.
뽀롱이는 금강유역환경청에서 데려온 유해조수감시단 엽사에 의해 근거리에서 사살되었고 사살 당시 평지에 있었습니다. 총성을 몇 번 들었는지에 대해 동물원 관계자분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카라에서는 뽀롱이의 사체를 보고자 했으나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9월 28일 뽀롱이는 화장되었습니다. 9월 28일 동물원 직원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현재 녀석이 살던 곳에 작은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살된 뽀롱이가 동물원에서 낳은 퓨마 중 한 마리
뽀롱이가 방사장을 나간 것은 엄밀히 말해 ‘탈출’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야산과 연결된 열린 방사장 문을 통해 나갔고 동물원 안 바로 외곽에 머물렀습니다. 또한 뽀롱이는 박스나 배수로에 숨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은 뽀롱이가 사살되기 전 머물렀던 곳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뽀롱이는 6시 40분경까지 사육장에서 약 300여 미터 떨어진 1차 생포 시도 장소까지 이동했습니다. 3시간 후 사살되기까지 뽀롱이는 1차 생포 시도 장소로부터 약 150미터 이동했습니다. 뽀롱이가 방사장에서 나간 것을 알게 된 후 즉각 수 백 명의 인원이 투입되고 곧 수색견과 엽사의 추적이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뽀롱이의 마지막 4시간여는 자유를 누린 게 아니라 공포 속에 쫓겼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수색은 퓨마사 쪽부터 이뤄졌을 것이고 사람에 쫓긴 뽀롱이는 어쩌면 이런 혼란 속에서 자신의 원래 방사장 쪽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채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뽀롱이는 자신을 전혀 모르던 많은 국민들에게 ‘죽음’으로써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비로소 알렸습니다.
언론의 뽀롱이 ‘탈출’부터 ‘사살’까지의 과정 보도 기사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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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 뽀롱이 사살까지 4시간의 자취를 찾아서2 - 뽀롱이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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