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세이버 1편 – 그저 날아갔을 뿐인데 결국 생명을 잃은 동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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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어딜 가나 통유리가 있는 건물과 투명 방음벽이 심심찮게 보이곤 합니다. 도시의 미관과 도로 환경의 편의성을 위한 이러한 투명 창들에 수많은 야생 조류들이 부딪혀 죽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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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1500여 마리의 철새 무리가 전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는 고층 빌딩에 단체로 충돌하여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3시간 동안 수거된 사체만 400구가 넘는 대규모 조류 충돌 사건이었습니다. NABCI(북미 조류 보호 계획)의 2014년 보고서에 의하면 유리창 충돌 문제는 사람이 직접 연관된 조류의 사망 원인 중 2위로 나타났습니다. 또 다른 해외 연구에서는 미국에서 연간 5억 9900만 마리, 캐나다에서는 연간 2500만 마리의 야생 조류가 유리창에 충돌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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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립생태원은 2019년부터 올해까지 총 17차례에 걸쳐 인천시 내 한 아파트 일대의 투명 방음벽을 모니터링 했습니다. 그 결과 야생 조류 133마리가 방음벽에 충돌하여 폐사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약 800만 마리의 야생 조류가 유리창,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것으로 추정하며, 발견되지 못한 사체를 감안하면 실제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조류 피해가 발생함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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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금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류의 눈은 머리의 전면이 아닌 측면에 위치해 있어 비행 도중 전방에 있는 장애물과의 거리를 가늠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또한 자연 환경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구조물의 투명도와 빛 반사를 인식할 수 없어 유리창과 같은 투명한 인공 시설물은 조류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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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에서 출발하여 현재 조류 충돌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제안되는 것이 조류 충돌 방지 필름, ‘버드세이버(Bird Saver)’입니다. 버드 세이버의 한 종류로 일반적인 야생 조류의 천적인 맹금류 등의 형상을 한 스티커가 널리 쓰이고 있으나, 이는 새들이 그 스티커만을 피해갈 뿐 유리창 및 방음벽 자체를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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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2019년 발간한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가이드라인’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조류 충돌 문제 방지책으로 ‘문제가 되는 투명 구조물에 일정한 패턴을 넣는 방법’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류가 패턴의 높이가 5cm, 폭이 10cm 미만일 경우 그 사이를 통과해서 날아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감안하여 투명 소재의 시설물에 일명 5x10 법칙이 적용된 수평, 수직, 격자, 도트 등 여러 패턴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패턴이 적용된 투명 시설물은 조류 충돌 문제에 있어 그 실효성을 입증하며 조금씩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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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태백시에서는 투명 방음벽에 야생 조류가 부딪혀 폐사하고 있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접수됨에 따라 5x10 패턴이 적용된 버드세이버를 280m 길이의 방음벽에 부착한 후 약 5개월 간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단 한 구의 폐사체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관련 민원도 0건에 이르는 성과를 거둔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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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행동 카라는 구조된 동물들을 보호하는 더봄센터에도 조류 충돌을 저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부가 권장하는 5x10 법칙보다 좀 더 촘촘한 5x5 간격의 도트가 찍혀 있는 필름을 전체 창에 시공하여 새들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 상의 5x10 간격의 패턴은 여전히 참새 등의 소형 조류에게는 효용성이 떨어지며 이미 미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국가들에서는 5x10이 아닌 5x5 간격의 패턴이 권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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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공포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정부 및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건축물, 방음벽 등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그 역할에 의무를 지우고, 야생동물 피해가 심각할 경우 정부가 요청한 조치에 지자체가 따라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향후 공공기관으로 한정된 주체를 민간에게도 확대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야생동물 피해 저감에 함께 행동하고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