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름의 끝을 알리는 것처럼 무섭게 가을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밤에는 날씨도 많이 선선해졌고 새벽에 내린 빗소리에 여유를 느끼면서도, 길 위의 동물들이 폭염으로부터 한 시름 놓였구나… 싶은 생각을 했던 다음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이여서인지 유독 도로는 한산했습니다. 고양시에 위치한 이케아 앞을 지나는데 도로 가운데 검은 비닐봉지가 보였습니다. 비닐봉지가 점점 찻길로 굴러가는 것에 눈이 가는데, 가까이 가 보니 작은 새끼 고양이입니다.
급하게 차를 세우고 고양이에게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아직 사고는 당한 것 같진 않은데, 아기 고양이는 인도 옆에 주차되어있던 차바퀴 뒤로 달려갔습니다. 그 짧은 찰나 본 고양이지만, 비에 꼴딱 젖어 영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더더군다나 어미도 없이 6차선 도로를 향해 돌아다니는 것은 무척 위험했습니다. 아기고양이가 무사히 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 않았습니다.
바퀴 뒤에 숨은 아기고양이에게 캔을 따주고 간식을 던져줬지만, 고양이는 사람이 불편했는지 관광버스 차체 하부로 서툴게 몸을 숨겼습니다. 멀리 도망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워낙 힘이 없어 비틀거렸고요. 포획틀이나 두꺼운 장갑 등 구조장비는 하나도 없었지만, 도저히 두고 갈 수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오랫동안 동물들을 다뤄왔던 두 손이 있으니까요.
아기고양이들은 보통 다른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쪽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활동가는 바퀴 뒤에 몸을 숨기고 핸드폰 어플을 이용해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려줬습니다. 기계를 통한 목소리지만,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아기고양이도 ‘야옹’ 하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어미라고 생각했는지 혹은 보호를 해줄만한 어른고양이가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몇 차례 대답을 하던 아기고양이는 차체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활동가와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놀라서 도망을 갈만도 한데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푹 떨구었습니다. 실망을 한 건지 좌절을 한 건지, 알 수 없으나 활동가는 바로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아기고양이는 아무런 저항이 없었습니다. 그저 너무 가벼웠고, 너무 꾀죄죄했고, 발에는 기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병원으로 데려와 기본 검사를 해보니 별 이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너무 못 먹고 말라서 피하수액을 맞춰주었습니다. 밥을 주니 밥은 정말 열심히 먹었습니다. 워낙 조용했는데 삶에 대한 의지만은 강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집념도 무척 강하고요. 이제 갓 한 달이 된 것으로 보이는데 몸무게는 고작 400g이었습니다. 어미와 언제 떨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그대로 놔두었으면 로드킬을 당하지 않았을지라도 곧 도태되어 사망했을지 모릅니다.
아기고양이에게는 롤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롤로가 위험천만한 6차선 도로에서 우리 곁으로 와 이렇게 안전하고 편할 수 있어서 그저 다행입니다.
카라는 롤로를 보면서 TNR과 공원급식소 사업, 법제도 정비 등을 통해 길고양이들의 전체적인 삶을 위한 활동에 대한 믿음을 다시 다잡았습니다. 세상을 바꿔서 롤로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길고양이들이 더 쉽게 도움받을 수 있기를, 근본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동물이 최소화 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롤로는 저희가 아주 포동포동 귀엽게 살찌워 표준체중으로 만들어놓은 다음, 좋은 가족을 찾아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