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탈수와 영양실조로 2.6kg밖에 되지 않았던 길고양이 '진주' 이야기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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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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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4일,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에 콘크리트 바닥이 달궈지고, 모두가 빠른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종로구 세종대로 근방의 한 골목길에서 너무나도 비쩍 마른 길고양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뼈 위에 가죽만 남은 듯한 모습이었고, 당장 구조하지 않으면 탈수와 영양실조로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제게는 어떤 구조 장비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와 제 친구들은 그 고양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구조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주변 편의점에 들어가 박스 몇 개를 구해왔습니다. 목장갑과 청테이프도 구매했습니다. 다행히 카라 동물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잠시 이동하는 데 사용할 임시 이동장을 만들었습니다. 박스를 테이프로 이어붙이고 공기구멍을 뚫었습니다. 원래 고양이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있어 박스를 뚫고 나올 수 있지만, 진주라 이름붙인 이 고양이는 워낙 기력이 없어 박스만으로 충분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무리 말랐어도 길고양이인데 손으로 잡아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용기내서 장갑을 낀 손으로 확 붙잡았습니다. 역시나 고양이는 저항할 힘이 전혀 없었고, 제 손에 잡혀서 박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검진과 치료를 위해 택시를 타고 카라 동물병원으로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고양이가 성묘인데도 2.6kg밖에 되지 않는다며, 오랫동안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말랐을 뿐 아니라 10살 추정으로 나이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습니다. 계속 길에서 살았는지, 아니면 유기된 경험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보다 높았고 몸의 여러 곳이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능한 만큼이라도 기력을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카라 병원에서는 고양이의 체온을 높이기 위해 따뜻한 물을 담은 페트병을 크롬장에 넣어주셨고, 고양이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묽은 캔을 준비해주셨습니다. 물론 영양분의 빠른 섭취를 위해 계속 링거를 맞고 있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캔을 조금씩 먹었고, 만나러 가면 일어나서 앉는 등 기력을 회복하는 듯했습니다. 무더위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벗어난 환경이 편안한지, 비록 잠깐이었지만 허공에 꾹꾹이를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쩌면 고양이가 기력을 회복할지 모르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고양이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거의 없었고, 계속 같은 자세로 누워있기만 했습니다. 비쩍 마른 고양이가 같은 자세로 누워 있어서 몸이 아프지 않도록 담요를 깔아주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힘든 시기가 잘 지나가기를, 고양이가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고양이는 자신이 원래 살던 곳에서 죽기를 바랐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괜히 구조해서 낯선 환경에서 죽음을 맞게 한 건 아닐까? 구조를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까? 상황이 악화되자 이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걱정하는 제 모습을 보며 수의사 선생님은 고양이가 항생제와 진통제를 맞고 있으니 길에서보다는 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결국 7월 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양이를 살릴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길이 조금이라도 편안했다면 좋겠습니다.

길 위에서 길고 긴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만큼, 고양이가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랍니다.


구조 당시 전화로 도움을 주셨던 카라 활동가분들,

정성어린 치료와 간호로 고양이를 돌봐주셨던 카라 동물병원의 의료진분들,

같이 구조하고 같이 슬퍼해주었던 제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함께 있지 못해 괴로운 마음이었던 제게 큰 위로를 전해주셨던

카라 동물병원의 유화욱 원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댓글 1

연정은 2018-09-08 22:18

세상에 길위에서의 고된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쩜 저토록 앙상하게~~~~, 정말 속상하고 가슴이 미어지네요. 그래도 구조자님의 따스한 손길로 병원치료받고 무거운 길위의 삶을 마감했네요. 좀더 일찍 발견했으면 치료시기를 놓치지않고 좋은 묘연을 만날 수 도 있었을텐데.....아쉽네요. 이렇게 구조자님 처럼 그냥 스치지않고 길고양이를 구조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살맛나는 세상이라 여겨집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복받으실겁니다. 구조자님, 항상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