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잘 따르다 구내염으로 구조된 '코점이'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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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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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점이를 처음 만난날>

코점이를 처음 만난 건 19년 2월 중순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급식소에서 캔을 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야옹거리며 갈대밭같이 메마른 풀숲 사이에서 코점이가 나타났습니다. 이 녀석 저를 언제부터 봤다고 오자마자 부비고 손길을 허락했어요. 그 뒤론 항상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여자아이임을 확인하고 한 달 뒤에 티엔알을 위해 아이를 포획했습니다. 아니 포획이라기보단 안아서 이동 가방에 넣어버렸어요.

바로 동물병원에 데려갔고 아이가 워낙에 얌전해서 무마취 상태로 초음파까지 봤습니다. 초음파 결과 확실치는 않지만 임신 같다며 병원에선 중절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돌아가라고 했고 다시 한 번 진료를 보기 위해 다른 동물병원으로 이동했다가 부주의로 아이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늘이 노랬습니다. 산에서만 살던 아이를 빌라와 상점이 즐비한 곳에서 잃어버렸으니까요. 그날부터 이동장을 들고 출퇴근을 하며 비가와도 아이를 찾아다녔습니다. 매일 몇 번이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전단도 붙였어요. 주말에는 3만 보 이상을 걸으며 찾고 또 찾은 지 약 40일 만에 제보를 받게 됐습니다.

<제보 받고 가서 만난 날>

잃어버린 곳과 차로 3분 거리의 작은 산이 있는 한적한 곳 코에 특징이 있고 사람을 좋아하던 아이라 눈에 띄었나 봅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야옹거리며 따라다녔다 고해요. 40일이 지났으니 배는 많이 불어있었고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아이를 이곳에 두고 출산을 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놓을 것인지 사실 집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지만, 가족의 반대로 무산됐고 괜히 임신했는데 스트레스 받게 하지 말고 이곳에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후 매일 퇴근길에 들리며 코점이를 돌봤습니다. 잘 지낼 줄 알았는데 다른 암컷 고양이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바로 이동 가방에 넣어 원래 있던 곳에 데려다주었습니다. 한동안은 코점이를 볼 수 없었어요. 그러다 무사히 출산을 한 건지 다시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아가들이 3개월쯤 됐을 때 코점이는 티엔알 수술을 했습니다. 퇴원시키러 간 병원에서 코점이가 구내염이 심하다고 곧 발치를 해야 할 정도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침도 전혀 안 흘리고 육안으로 보기에 너무 멀쩡한데 구내염이라고 해서 솔직히 의아했어요.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코점이가 평소에 잘 먹던 무스 타입 캔을 먹으면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닭가슴살도 잘 먹던 녀석이었는데 출산을 하고 나서인지 아니면 티엔알을 하고 나서인지 급격히 몸이 안 좋아졌는지 면역력이 떨어진 건지 그 이후로부터는 잘 먹지 못하더라고요. 일주일 클라벳을 먹이고 휴지기를 갖고 초유도 먹이고 베타시토스테롤 영양제도 먹였습니다. 무스 타입도 못 먹고 국물이 자작한 건더기 캔도 못 먹고 사료도 못 먹기 시작 마지막으로 반려동물용 닭죽을 사줘 봤는데 다행히 닭죽은 잘 먹더라고요.  이렇게 매일 닭죽만 먹어서 될까 했는데 최근엔 닭죽조차도 안 먹거나 괴성을 지르게 되어 구조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한 게 6개월 이상은 족히 된 것 같아요. 부쩍 살도 많이 빠져 지금은 3킬로도 안 나가네요. 부랴부랴 퇴근하고 이동 가방에 넣어 동물병원에 갔습니다. 엑스레이와 치아 상태 잇몸 상태를 보시곤 송곳니 제외하고 발치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미 앞니는 스스로 빠져있었고 어금니는 구멍이 뚫린 것처럼 삭아있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먹질 못해 엑스레이상 위가 텅텅 비어있었어요. 며칠 입원 후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입원 중에도 전혀 먹지를 않아 기다릴 수가 없어 우선 발치 수술을 했습니다. 


저는 코점이 말고도 구내염 아이 셋을 돌보고 있습니다. 길 아이들에겐 흔한 질병인 데 비해 치료비는 워낙 비싼지라 부담도 많았지만 못 먹어 서서히 죽게 두느니 비록 거두진 못하더라도 빚이라도 내서 치료해주고 다시 한 번 살아갈 기회만이라도 줄까 했지만 코점이의 경우, 다른 암컷이 자리를 잡아서 기존 아이들이 전부 쫓겨난 상태입니다.

구조 전부터 지인과 코점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이 쫓겨난 이야기를 듣고는 지인이 흔쾌히 코점이를 입양 전제 임시 보호로 받아주신다고 하셨어요.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퇴근하고 면회 갔을 땐 아직 마취에서 덜 깬 건지 아픈 건지 비몽사몽 해했는데 이름을 불러주며 만져주니 골골송과 꾹꾹이를 열심히 해줬습니다. 퇴원하면 코점이는 지인이 공부방으로 빌린 아파트에서 지내며 약과 영양제를 먹으면서 꾸준히 관리해줄 계획입니다.


퇴원 후 임시보호처에서 코점이는 요즘 식욕이 좀 줄었어요. 아팠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건사료를 입에 넣고는 뱉어내더라고요. 자꾸 습식만 먹으려고 해서 요즘은 습식에 알맹이 작은 건사료를 섞어서 주기도 하고 따로 주기도 하고 건사료만 주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는 나와서 활기차게 돌아다니진 않지만 소심하게 베란다도 나가보고 스크래쳐 위에도 올라가 보고 지인분과 같이 누워 낮잠도 자고 매트 위에서 연신 뒹굴뒹굴 뱀 춤추느라 정신없어요.


코점이와 여느 집고양이처럼 유대감을 형성하기까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지만 털도 많이 좋아지고 침은 전혀 흘리지 않고 습식도 못 먹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습식 캔도 잘 먹는 거 보니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카라 시민치료지원이라는 제도 덕분에 코점이의 남은여생이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할 뻔했던 코점이를 구조해  꾸준히 돌보며 치료해주신 구조자분께 감사드립니다. 급식소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좋아하던 고양이 코점이. 우여곡절이 많았던 코점이가 다행히 치료를 받고 임시보호로 지내다 입양으로 이어져 가족이 생겼습니다. 어디서나 사람을 좋아해 따라다니던 코점이는 아마도 집을 나왔거나 유기된것으로 추정됩니다. 힘겨웠던 지난 날은 모두 잊고 행복한 묘생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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