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F 발병 농장 살처분은
반드시 법에 의거 인도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근본적으로 공장식 축산의 폐기선언과
육식주의 타파를 위한 사회 변혁이 필요하다
지난 17일 파주 소재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병한 지 하루 사이에 경기 연천지역에서도 ASF 확진이 나왔다. 처음 발병한 농장 및 가족소유 농장의 돼지 4,700여 마리가 어제 살처분으로 희생되었고, 오늘 ASF 확진 판정이 난 농장의 돼지 4,700여 마리도 살처분 됐으며 인근의 돼지들 1만 마리까지 추가적으로 예방적 살처분으로 매몰될 운명에 처했다.
ASF 잠복기까지 고려한다면 방역망은 이미 뚫려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국은 여전히 전파 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방역을 ‘예방적’ 살처분에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으로서는 더 많은 생명희생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바이러스 전파경로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500m를 넘어선 반경 3km 이내 기계적 살처분을 마치 최선인 양 대책으로 내세우고 모습은 무능을 넘어 생명경시의 점철을 보여준다. 방향을 상실한 예방적 살처분의 확대는 더큰 생명희생만 낳을 것이 뻔하며 무고한 생명희생으로 장차 방역 실패에 대한 더욱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을 정부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천마리의 돼지들이 발버둥 치며 땅 속에 매몰되고 있다. 발생한 농장 안에 같이 있었거나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무고한 생명들이 기계적으로 예방적 살처분 되고 있으며 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예방적 살처분 희생은 반드시 최소화 되어야 하며 피치못해 이뤄지는 돼지에 대한 살처분은 의식의 소실 뒤 고통을 경감시키는 최선의 조치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ASF 긴급행동지침(SOP)에 의하면 ∆전살법, ∆약물사용법, ∆가스법(이산화탄소 사용) 및 ∆가스법(질소거품 사용)을 제시하고 있으며 각 방법에 따라 동물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세부사항을 두고 있다. 동물을 구덩이 등에 이동시킬 때는 안정적인 상태에서 추락하지 않도록 완만간 경사로를 만들어 주어야 하며, 구덩이 안에서 동물들이 서로 겹쳐지지 않도록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만약 의식 회복이 의심되는 개체가 있다면 약물 등 보조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죽음을 유도하는 것이 옳다. 2016년 구제역 발병으로 이산화탄소 주입 후 집단 살처분을 시행한 바 있으나 제대로 기절하지 않은 상태로 구덩이에 매몰되어 ‘생매장’된 사례가 목격되곤 했고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이같은 규정 미준수는 이후에도 관리감독 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지금 ASF로 인해 이뤄지고 있는 살처분에 대한 당국의 규정 준수 여부도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ASF 발병으로 살처분이 진행되는 이 시점에서 과거의 공포와 고통을 야기하는 생매장 살처분이 결코 또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되며, 그러한 살처분 방식은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만큼 만에 하나 이같은 행적이 드러난다면 당국은 이에 대한 책임을 명백히 지고 가야 할 것이다. 있으나마나 한 가이드라인은 필요 없지 않은가. 사회적으로도 집단 생매장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다면 동물의 생명에 대한 윤리 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국가가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당국에서 마련한 지침이 단순 문서로만 그치지 않도록 ‘인도적 살처분’을 반드시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이번 ASF 발병으로 가축 전염병에 대한 완벽한 방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상기되었다. 이제는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거슬러 저질러 놓은 거대한 문제를 막아낼 수 있다는 오만한 자세를 버려야 한다. 또한 당장의 문제를 제어하기 위한 방역 체계 개선 외에도 기본적인 가축사육 구조의 재편과 변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전염병 발병 시 대규모 희생을 야기하는 국가 주도의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이미 파국에 이르렀고, 새로운 전염병의 대두, 밀식사육을 바탕으로 더 넓은 전염병 확산, 그리고 처참한 살처분의 악몽으로 귀결되고 있다. 과도한 육식주의를 조장하는 사회 속에서 이에 편승하여 이익을 보려는 축산업의 비윤리적 사육 및 도축, 동물을 오직 이익 추구의 ‘도구’로만 보는 태도 또한 전면적으로 타파되어야 한다.
이번 파주 돼지 사육농가의 사례에서 보듯, 축산은 거대 자본화 되어 스스로 수직계열화를 이루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환경과 인간, 동물 모두에게 막대한 위험을 부과하고 있다. 이제 이를 제어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오래 전부터 ∆ 농가 사육 마릿수의 상한제를 수립함으로서 한정된 공간 내 밀집사육을 야기하고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육환경 종식, ∆ 감금틀 사육 등 대규모 공장식 사육을 가능케 하는 사육방식의 과감한 폐기, ∆ 대규모 농장에 대한 살처분 보상금 차등 지급, ∆ 동물복지 농장의 확대를 위한 지원을 주창하며 공장식축산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제는 축산업의 판도 자체를 재편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또한 과거 구제역, AI 감염으로 인한 대량 살처분을 목도하면서도 과도할 정도로 육식문화를 장려하고 있는 육식주의 문제도 시급히 타파되어야 한다. ∆ 육식 소비량의 절반 이하 대폭 감축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고, ∆ 전염병 확산의 주요 원인이 되는 음식쓰레기의 모든 가축에의 전면 급여 금지는 지금 당장의 위험 관리를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에 시행되어야 한다. 이는 ‘위험이 확인될 시’에만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제한적 조치가 아닌 상시적인 금지로 규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방역 목적으로 살처분되는 가축에 대해 ∆ 기계적인 살처분이 아닌 다각도의 역학조사를 진행하여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는 법의 준수 문제일 뿐 아니라 인륜과 도덕의 문제이기도 하다. 살처분을 당연시 하지 말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부분부터 고쳐야 함은 물론이다. ASF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음식물쓰레기에 대하여 빈틈없이 방비해야 함을 당위의 사실로 받아들이고 음식물쓰레기 동물급여 금지 등 평시에 위험을 줄여 나가야 한다.
이번 ASF 발병으로 희생된 돼지들이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느끼며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인도적 살처분의 엄정한 이행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요구하며, 동물들의 생명을 우선시한 윤리적인 사육 환경과 구조를 재정립하고, 과도한 육식주의를 타파하고 건강하고 소박한 채식 밥상을 추구하는 우리사회가 되도록 한걸음 더 나아간 당국의 특단의 조치와 노력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