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삶의 보금자리와 아늑한 쉼터를 의미하던 '집'.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집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거나 투기의 대상입니다.
재개발은 한편으로는 부동산 투기 바람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좀더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하고자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주'가 불가능하고, '공사'가 뭔지 모르는 길 위의 동물들에게 재개발은 삶의 파괴요, 죽음을 의미하는 대재앙입니다. 특히 한 곳을 터전으로 삼는 영역동물이면서 인간 곁에서 오랜동안 머물러온 길고양이들은 어떨까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2,052개 구역에서 재개발과 재건축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재개발로 죽음의 벼랑끝에 서게 된 모 지역 길고양이들에게 공사의 위험을 알리면서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절박한 신호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해당 지역의 여러 스테이크홀더(관련자)들을 중심으로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의 생명을 살리는 작업이 착수됐습니다.
이번 활동이 생명을 존중하는 재개발 사업의 좋은 사례가 되어 제도적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로 관련 글을 지속적으로 게시합니다.
<지난글 보기>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①] 모두가 떠난 황량한 곳을 떠나지 못하는 생명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②] 공사 앞둔 지역 길고양이를 돕기 위한 원칙 수립 및 아픈 고양이 구조 개시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③] 길고양이 질병치료와 TNR, 쉘터 지원이 시작되다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④] 인근 대규모 공사현장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생명의 절규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⑤] 재개발 조합의 도움으로 건설사와 만나 협의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⑥] 410 10001 2949375 어미 고양이
2015년 12월 최초 답사 이후 카라에서는 단지 내 지하실에 은신중인 재개발지역 고양이들을 살리기 위해 인근 개포 근린공원 쪽으로 ‘인도’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고양이들은 아주 영리한 동물들로서, 주변을 지속적으로 탐험하고 동료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학습하여 유리한 선택을 합니다. 고양이들은 누가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지 어디에서 먹이를 구할 수 있는지 심지어 먹이가 급여되는 시간까지 정확히 파악하여 반응합니다.
카라는 지역 자원봉사자님과 소통하여 밥자리를 순차적으로 안전 지역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무너질 지하실을 고양이들이 과감히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하실을 대체할 쉘터를 설치했습니다. 겨울철 혹한 속에서 지하실의 온기에 의존하는 고양이들을 안전지역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는 쉘터가 보급되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③] 길고양이 질병치료와 TNR, 쉘터 지원이 시작되다. ← 지난글 보기
최선을 다해 고양이들을 안전지역으로 이끌려 노력하는 동안, 고양이가 불쌍하다며 마을 주민 몇몇 분께서는 위험한 차도에 급식을 지속해서 이런 분들에 대한 설득활동까지 병행해야 했습니다. 먹이에 이끌린 고양이가 계속 위험 지역에 머물면서 결과적으로 생명이 위험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고양이를 돕는 길이 아님에도 설득이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카라와 자원봉사자 분들은 위험한 차로 가까이에 놓인 먹이를 치우는 활동까지 겸해야 했습니다.
밥자리 이동 활동을 약 3~4개월 진행하자 영리한 고양이들은 카라와 자원봉사자들이 보내는 신호에 잘 반응하여 반 수 이상의 고양이들이 개포 근린공원 쪽으로 올라와 주었습니다. 카라는 철거를 조금 앞둔 시점에서는 고양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호성이 높은 사료와 캔 등을 안전지역에서 급여하면서 더 강하게 고양이들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단시간에 인위적으로 영역 내 많은 수의 고양이들이 몰리게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영역다툼 문제를 막기 위한 치료와 지원 활동도 최선을 다해 전개했습니다. 고양이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이동 스트레스와 자원 다툼은 심해지고 결국 영역 이동 실패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3단지 고양이 의료지원내역(표1), "-"는 중성화가 되어있던 개체로 칩핑과 예방접종후 방사>
카라는 100% TNR로 이 와중에 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늙거나 구내염 등 질병으로 고생하는 고양이들은 중성화와 예방접종 이외 질병 치료도 병행하였고, 영역 이동 스트레스에 견딜 수 있게 도왔습니다. 길고양이로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유기묘들에 대해서는 입양활동을 위해 구조를 병행했습니다.
중성화 후 방사된 고양이들 중에는 이후로 사고나 질병으로 재 포획하여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상이는 어미가 죽은 뒤 영역에서 밀리는 게 관찰되었다.
지켜보던 중 꼬리 쪽에서 심각한 농이 흐르고 있어 포획하였으며 교상에 의한 염증으로 패혈증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였으나, 치료 후 재 방사하였고 현재까지 건강히 지내고 있다.>
<쁘니는 TNR방사 후 불과 몇 주 만에 원인불명의 사고로 다리에 심각한 골절을 입었다. 복잡한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으며, 오랜 재활 치료 후 아직 방사되지 못하고 더불어숨센터에 계류 중이다.>
이렇게 한 마리 한 마리 50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에게 최선의 치료와 지원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철거일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개포 2단지 공사현장에 남아 있는 10여 마리 길고양이들은 여전히 공사현장 방벽 아래로 밀어 넣어주는 사료에 의존해 살며 공사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위험한 공사판에서 살아갈 수 없는데다 건설사도 먹이 급여 중단을 강력히 요청해 왔습니다.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에게 생명을④] 인근 대규모 공사현장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생명의 절규 ← 지난글 보기
문제는 복잡했습니다. 2단지의 경우 자원봉사자분들이 재개발 당시 80여 마리의 고양이들을 찻길 건너 인근 1단지에 방사했습니다. 당시 참여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방사된 80여 마리의 고양이들 중 30여 마리는 다시 찻길을 건너 2단지로 돌아왔고, 나머지 50여 마리 중 1단지에서 목격되는 고양이는 10마리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카라는 이미 늦어질 데로 늦어버려 찻길을 오가며 위험하게 살아가는 남은 고양이들의 보호책이라도 강구해야만 했습니다. 이 지역 자원봉사자 분들은 3단지와 달리 협력이 원활하지 않아 더욱 활동이 힘들었습니다.
애초 2단지의 경우는 1단지로 강제 이주 계획을 세운 것은 합리적이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우 확산이 가능한 주변 지역을 조사하고 주변지역의 TNR을 진행해서 고양이들이 확산해 나갈 공간을 확보해 주는 활동을 했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고양이들을 살릴 방법은 생존할 수 있는 장소로 갈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여 카라는 교통량이 많지 않은 편도 2차선 길 건너 달터공원과 먹자골목 중심으로 고양이들 밀도가 높은 지역의 TNR을 서둘렀습니다. 먼저 이 지역에 먹이 공급이 원활한지 사전 조사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개포 근린공원과 달터공원, 그리고 2단지 맞은편 먹자골목에서 여러 시민 분들께서 길고양이 사료를 급여하고 있었으나 TNR은 거의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급했습니다. 이 시기는 고양이들의 대규모 발정과 출산이 이뤄질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카라는 곧 TNR에 착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서 포획한 고양이들은 전원 발정 혹은 임신으로, 개체수 증가 일로에 있었습니다.
<2단지 고양이 의료지원내역(표2), "-"는 중성화가 되어있던 개체로 칩핑과 예방접종후 방사>
한편 이미 영역 이동의 시기를 놓쳐버려 여전히 공사장에 거주하는 고양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건설사와 협의하여 카라가 전적으로 책임지기로 하고 공사장 방벽 외부 공통에 작은 계류장을 마련했습니다.
이 계류장에 아직 공사장을 떠나지 못한 고양이들을 포획하여 계류케 함으로써 강제로 영역을 이동시킨다는 계획이었습니다.
<2단지 계류장 모습>
몇 번에 걸친 밤샘 포획 작업을 통해 위험한 공사장을 오가며 살아가던 고양이들이 강제 영역 이동을 위해 포획되었습니다. 고양이들은 최소 2~3개월 동안 계류장내에서 먹이를 공급받다가 안전하게 방사하는 것으로 계획했습니다.
<2단지 계류장 모습과 계류중인 모습>
한편 3단지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약 4~5개월에 걸쳐 카라가 계획한 것처럼 70% 이상의 고양이들이 안전 지역으로 잘 이동을 해 주었지만, 10여 마리 정도의 고양이들이 여전히 곧 무너질 아파트 지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철거일은 다가오는데 이 고양이들은 도대체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죽게 놔 둘 수 없었기 때문에 카라는 이 고양이들을 안전지역에 강제 계류하기 위한 계류장을 개포 근린공원에 임시 설치했습니다. 계류장이라고는 하지만, 고양이들을 한시적으로 특정 장소에 계류하기 위한 철망을 구조물을 공원 내 인적인 드믄 장소에 설치한 것으로, 바닥 공사를 한 것도 아니고 못질 하나 하지 않은 바닥면이 없는 케이지를 땅에 엎어 둔 형태였습니다.
<3단지 계류장 모습과 계류중인 모습>
철거 예정일 며칠 전에 건물 지하에서 떠나지 못하는 고양이들을 포획하여 영역을 공유하는 녀석들끼리 짝을 지어 임시 계류장에 가두어 매몰 사고를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리 긴급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공원 내 일정 부위에 구조물을 놓아 둔 상태였기 때문에 고양이들을 계류장에 억류한 직후 즉시 강남구청 측에 긴급히 계류장을 설치한 사정을 설명하고 한시적 점유 허용을 요청하기 위한 미팅을 제안했습니다.
하루하루 급박한 상황들이 이어져 터지는 상황에서 카라는 동물들의 안위를 최우선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은 어제와 오늘이 달랐고, 재개발을 위한 철거는 전혀 계획대로만 되지 않았으며 변경되기 일 수 였습니다. 긴급히 결정하고 대응해야 할 일들은 너무도 많았고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은 거의 기대하기 어려워 모든 일들을 카라와 자원봉사자들이 결심하고 실행해야 했습니다.
카라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은 건물 잔해에 깔려 고양이들이 죽게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어려운 포획작업이었지만, 이 고양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포획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강남구청에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계류장 설치와 관련하여 협조를 구하기 위해 약속을 잡았습니다. 고양이들을 계류장에 안전하게 위치시키고 딱 하룻밤 안전하게 계류 중인 고양이들을 위안 삼으며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자원봉사자로부터 믿을 수 없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날은 카라와 강남구청의 미팅이 잡힌 바로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계류장이 없어졌어요, 그 안에 있던 고양이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계류장의 흔적만 남은 공터>
하룻밤 사이에 계류장은 어떻게 된 것이며, 무엇보다 살리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구조한 고양이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 불쌍한 것들, 자기 살길도 잘 못 찾고 죽음의 공간을 떠나지 못하던 그 고양이들을 누가 어떻게 한 것인지 밝혀야 했습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정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