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삶의 보금자리와 아늑한 쉼터를 의미하던 '집'.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집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거나 투기의 대상입니다.
재개발은 한편으로는 부동산 투기 바람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좀더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하고자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주'가 불가능하고, '공사'가 뭔지 모르는 길 위의 동물들에게 재개발은 삶의 파괴요, 죽음을 의미하는 대재앙입니다. 특히 한 곳을 터전으로 삼는 영역동물이면서 인간 곁에서 오랜동안 머물러온 길고양이들은 어떨까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2,052개 구역에서 재개발과 재건축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재개발로 죽음의 벼랑끝에 서게 된 모 지역 길고양이들에게 공사의 위험을 알리면서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절박한 신호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해당 지역의 여러 스테이크홀더(관련자)들을 중심으로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의 생명을 살리는 작업이 착수됐습니다.
이번 활동이 생명을 존중하는 재개발 사업의 좋은 사례가 되어 제도적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로 관련 글을 지속적으로 게시합니다.
하나의 생명은 하나의 우주이다.
재개발 지역에서는 날마다 수없이 많은 우주가 파괴되는 비극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이곳을 아직 떠나지 못하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들이 안타까워 떠나지 못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황량한 바람과 냉기가 감도는 이곳은 서울 도심의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 단지입니다.
추운 겨울 사람도 동물도 온기를 찾아 깃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동물들은 다가올 운명도 모른 채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사 나간 단지의 출입문에는 빨간 페인트로 이주완료 표식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곳 혹한의 겨울날 해질녘 찬바람을 맞으며 새끼를 보살피고 있는 어미 고양이의 모습은 너무 슬프고 쓸쓸해서 초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지역에만도 이제 곧 허물릴 건물들 지하에 최소 60~70여 마리(추정)에 가까운 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더럽고 쓰레기로 가득찬 곳이지만 이곳은 이 생명들이 그동안 삶을 이어 온 ‘안식처’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올해 정부는 재개발과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2016년 국토교통부 업무 계획에 따르면 전국 2,052구역에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도권에서만 1,058구역, 서울지역에서만 583구역에서 개발 사업을 추진중입니다.
재개발 과정에서의 이주와 새거주지 정착은 어떤 이에게는 기회가, 또 다른 이에게는 시련이 됩니다. 그런데 동물들에게는 재개발 그 자체가 고통 속에서 삶이 단절되는 대재앙입니다. 사람의 거주지에서 함께 살아가던 개들이 버려지기도 하고, 길에 정착해 살고 있던 길고양이들은 서식지를 잃게 됨으로써 크나큰 위험에 노출됩니다. 나무에 둥지를 튼 까치, 덤불에 집을 마련한 참새, 풀밭에 살던 수많은 곤충들까지... 수많은 생명들이 재개발 지역에서 삶이 단절되는 비극을 겪습니다.
비극의 중심으로 들어가다
2015년 11월, 재개발 예정지에 남아 끝까지 길고양이를 보살피시던 한 분으로부터 다급한 도움 요청이 왔습니다. 재개발 예정지에 남겨진 수많은 고양이들... 모두가 떠나갔지만 그럴 수 없었던 한 분의 목소리.
카라는 2015년에도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구조와 TNR(포획-중성화-방사)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이번 일은 그 규모 자체가 훨씬 더 큰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전조사에서 재개발 단지 내에 길고양이들이 매우 많을 뿐만아니라 TNR된 개체들 또한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카라는 이분을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도심 속 인간과 길고양이 공존의 최후 보루인 TNR된 길고양이들마저 재개발 사업의 일방적 희생양이 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카라는 대규모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활동에 착수할 당시 이미 대부분은 이사를 나간 상태였고, 공사 시작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카라는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안전 관리를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고 당장 재개발 단지 내에 남겨진 길고양이들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위기 상태였습니다.
카라는 해당 재개발 지역 전역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셨던 분께는 카라의 활동을 도와 길고양이를 보살펴 줄 자원봉사자분들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카라와 보조를 맞추며 먹이를 주면서 고양이들을 관찰해 주실 자원봉사단도 꾸려졌습니다.
<최초 현장 조사 결과 – 총 25개 구역 조사>
발견된 고양이 수 |
밥그릇 존재 |
쉘터 흔적 |
특이점 |
총 20마리 (TNR 10마리, 50%) |
총 20곳 (사료 2곳, 10%) |
총 8곳 (이불 3곳, 37.5%) |
구내염 고양이 여럿 발견 여타 지역보다 중성화율 높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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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나간 곳에 쓰레기들만 가득하다. |
이주가 끝난 건물에는 빨간 표식이 그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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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입구 여러 곳에 누군가 길고양이를 보살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
쓰레기 장 근처에서 이제 막 독립한 것으로 보이는 청소년 고양이 한 마리가 사람을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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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 중 약 50% 정도가 중성화 표식인 이표식(eartipping)이 되어 있었다. 이주 나가기 이전 홀로 남게 될 길고양이의 수를 줄이기 위해 누군가 고민과 실천을 했던 증거이다. |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고양이들도 있었고, 아픈 아이들도 여럿 보였다. 나무 뒤편 노랑둥이는 구내염으로 침을 몹시 흘린다. |
첫 현장 조사에서 단 몇 시간 만에 20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는 최소 3~4배수의 고양이가 아직 이곳에 살고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암담한 현실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황량한 재개발 단지에서 카라와 자원봉사단은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이 무고한 동물들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입니다.
모든 노력과 진행 과정은 낱낱이 기록되고 보고될 것입니다.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모든 동물들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고통 받는 생명들을 위한 대안을 찾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보호 활동의 목적과 실현 방법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보호 활동의 목적
- •재개발 지역에서 서식하는 길고양이 등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명도 존중하는 재개발 또는 재건축의 사례 마련
- •재개발 조합, 건설사, 관공서, 시민, 동물단체, 자원봉사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동물의 생명도 고려된 재개발 사례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하는 공동의 노력 실현
- •재개발지역 내 길고양이의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대응 및 실천 방안의 표준 사례 마련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보호 활동의 방법
- •동물보호법과 TNR의 모든 원칙에 충실할 것
- •고양이의 생태적 특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가능한 다수의 고양이들에게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복지를 확보할 것
- •자원봉사자/동물단체/재개발조합/관공서/건설사들의 협력 하에 고양이들이 실질적으로 생명권을 보호받을 수 있을 것
-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장기적으로 길고양이들이 안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또 한 가지. 재개발 단지, 바로 그곳에 ‘동물’이 ‘아직’ 살고 있거나 이주 과정에서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 이 ‘생명’들의 고통과 생존 또한 외면되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무시되어 오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 사회에 알릴 것입니다.
여러분, 이어지는 카라의 활동을 지켜봐 주시고, 이 활동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많은 동물을 살리는 한편 이 사회에서 재개발 지역의 동물들을 살리기 위한 표준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큰 관심과 격려로 지원해 주세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정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