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유기묘들, 결과는 어땠을까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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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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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회사 근처에서, 공원 산책길에서, 바람 쐬러 떠난 여행지에서 우연히 길고양이를 만납니다. 말 그대로 길 위에서요. 고양이를 만나면 참 반갑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밖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있으니 내가 키우던 고양이를 길에 버려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집에서 반려묘로 지내던 고양이는 길고양이로서 먹이를 구해본 경험이 없고 위험한 상황에 대한 대처력이 떨어집니다. 야생의 길고양이들이 벌이는 영역싸움에서도 곧바로 밀려납니다. 이것은 고양이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고 결국 고양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나의 반려묘가 길고양이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유기묘 ‘하루’

지난 겨울의 문턱, 퇴근하던 길 위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코숏이 아닌 긴 털에 사람에게 야옹 수다로 대답하는 자태가 한 눈에 유기묘였습니다. 

‘혹시 산책 나온 것은 아닐까?’

보호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며칠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추운 겨울 문턱, 유기묘 '하루'는 같은 곳을 떠나지 않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했다


길고양이 중성화 표식인 귀커팅이 (오른쪽에 잘못) 되어있는 점이 이상했지만 (길고양이에게는 귀커팅 중성화 표식(왼쪽)을 하지만 반려묘의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해도 귀커팅 표식을 잘 안하므로), 보호자와 고양이 사이에 특별한 사연이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고양이는 마치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듯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근 한 달 가량 같은 화단에 머무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분명 이 고양이에게 신경을 써주고 있었습니다. 사료와 물이 공급되고 있었고 눈에 잘 안띄는 곳에 쉘터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보호자인지 아니면 우연히 눈에 띈 고양이를 돌봐주고 있는 캣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고양이가 산책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지낸다는 건 분명해 보였습니다. 


주변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고양이를 돌봐주는 캣맘과의 만남은 묘연했고 추위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어 고양이를 구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동장을 들고 고양이 ‘하루’가 지내는 화단을 찾았던 날, 하루는 마치 ‘간식을 가져왔니?’라고 말하듯 기지개를 켜며 쉘터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동장을 본 순간 하루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평상시 간식을 주면 머리도 내밀어주던 하루는 이동장이 무엇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처음으로 경계심을 나타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꺼리는 등 완벽한 거부 의사였습니다. 

손쉬운 포획을 예상했다가 의외의 반응에 낭패를 본 후 길고양이 포획처럼 통덫을 사용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며칠 더 말미를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첫 포획 시도 실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했지만 그 뒤로는 정말 하루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부디 하루가 도태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구조된 것이기를 바라며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평시 경계심 없는 하루의 사랑스러운 모습. 그러나 언젠가부터 하루는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유기묘 ‘라라’

이듬해 봄, 동네 주택가 주차장에서 못보던 얼굴의 고양이가 또 한 마리 발견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러시안블루 품종이었습니다. 

‘넌 또 누구니? 집은 있는 거야?’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접속해 잃어버린 동물 찾는 공고를 검색했지만, 인근에서 러시안블루 고양이를 찾고 있다는 소식은 없었습니다. 유기가 강하게 의심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유기묘 '라라.' 두번째 마주친 날, 첫번보다 비쩍 마른 몰골로 인해 먹이활동에 비상이 걸렸음을 짐작했다 


처음 ‘라라’를 발견한 뒤 보름 정도 지나 두 번째 만났을 때 녀석의 허리는 반쪽이 되어 있었습니다. 먹이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것 같아 구조를 결심,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라라는 사람을 매우 잘 따랐으며 케이지에 넣으려 할 때 다소 발버둥은 쳤지만 발톱은 절대 내밀지 않을 정도로 순했습니다. 


병원에 데려가 라라를 검진한 결과, 라라의 체중은 고작 3kg에 불과했습니다. 라라의 연령은 2살로 추정되었고 (놀랍게도) 중성화 수술은 이미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지나치게 마른 것, 그리고 심장 한편이 조금 크다는 소견이 있다는 것을 빼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만 항체가가 낮아 예방접종을 하기로 했습니다. 


라라는 입양가기 전까지 임시보호자 분께서 정성껏 돌봐주셨고 2차 접종시에는 4.3kg, 마지막 3차 접종시에는 5kg까지 살을 찌웠습니다. 라라는 순할 뿐만 아니라 애교도 넘치는 가족냥이었고 사랑스러운 성격에 임시보호자 분과도 깊은 정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이런 라라를 버렸다는 생각을 하면 믿기지 않습니다.

임시보호자분 댁에서 긴장을 푼 라라


누구에게나 서글서글한 애교쟁이 라라는 순둥, 그 자체였다


6월 9일 라라가 평생가족을 찾아 입양 가던 날, 임보자 분께서는 라라의 세세한 정보를 입양자분께 편지글로 전해주셨고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입양자분께서도 라라를 늘 지켜주시겠다 듬직한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임보자 분과 입양자 분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라라 임보자분께서 입양자분께 쓰신 손편지



길 위의 유기묘들, 결과는 어땠을까

하루와 라라는 ‘인간의 의도적 유기’라는 같은 기억 속에 존재합니다. 어쩌다 눈에 띄어 구조하려는 사람을 만난다한들 결과는 달랐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 유기묘 ‘하루’는 추운 겨울 갑자기 사라져 생사불명이 되었고,  유기묘 ‘라라’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새로운 안식처를 찾았습니다. 


미처 눈에 띄지 않은, 길 위의 많은 유기묘들의 사정은 어떨까요? 

이들은 제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들의 결과는 모두 해피엔딩이었을까요? 


더 이상 유기묘가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동물유기는 학대에 버금가는 무책임한 범죄라는 것을, 키우던 반려묘가 하루아침에 길고양이로 생존할 수 없음을 제발 사람들이 알고 몰래 가족을 버리는 행위는 이제 그만 중단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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