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은채 구조된 '돌쇠'
[길고양이와의 인연 계기]
저는 전라북도 전주시 소재 전주박물관 근처의 한 철물점 직원입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철물점은 전주시의 끝 또는 경계 지역에 있어서, 전주 도심까지 차로 5분도 안 걸릴 정도로 가깝지만, 가게 주변은 작은 산과 논과 밭으로 빙 둘러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게에 쥐와 뱀이 종종 나타나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곤 합니다. 2012년 어느 날 가게 사장님께서 고양이가 쥐뿐만 아니라 뱀도 잡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곤,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지인으로부터 얻어 오셨습니다.
그때 저는 생전 처음으로 고양이를 가까이서 보고 만져봤던 것 같습니다. 이 아기 고양이는 첫날부터 가게 곳곳을 아장아장 걷고 뛰어 다니며 혼자서 잘 놀았고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기도 해서, 저와 사장님, 그리고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의 사랑을 흠뻑 받았습니다. 하지만 잠이 올 때는 늘 사람들 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특히 가게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후 혼자서 보낸 밤 시간이 외로웠는지, 제가 아침에 가게로 출근을 하면 고양이는 가게 안쪽에서 문 앞을 서성이며 문이 열릴 때까지 야옹야옹 울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저에게 뛰어올라 정신없이 몸을 부벼댔습니다. 그 모습이 짠하고 안쓰러워서 저는 한동안 사장님과 다른 직원 몰래, 퇴근할 때마다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고 출근할 때는 다시 가게로 데리고 오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출퇴근을 한 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저는 사장님께 용기를 내서 제가 이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신 철물점에 출몰하는 쥐와 뱀을 쫒기 위해서는 가게 앞에 길고양이들을 위한 밥자리를 만들어 놓자고 제안했습니다. 사장님께서도 그동안 아기 고양이가 안타까웠다고 하셨고, 저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해주셨습니다. 저는 즉시 가게 문 앞에 길고양이들을 위해 밥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7여 년이 지나는 동안, 가게 앞뿐만 아니라 저희 집 앞, 교회 주변, 언니네 집 주변 등... 제가 정기적으로 다니는 길목에 밥자리를 두게 되어, 지금 밥자리는 4곳으로 늘어났고, 각 밥자리에 오는 아이들을 모두 합하면 20여 마리가 됩니다. 그렇게 저는 흔히들 말하는 ‘캣맘’이 되었습니다.
[돌쇠와의 인연 및 구조 과정]
이번에 구조치료지원을 하게 된 ‘돌쇠’도 제가 관리하는 밥자리에 오는 아이들 중 하나입니다. 다른 길아이들이 그렇듯 돌쇠도 1년 반쯤 전에 어느 날 갑자기 밥자리에 나타났습니다. 돌쇠는 밥을 먹고 나면 잠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음 날 밥시간이 될 즈음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저를 기다렸습니다. 다른 길고양이들과 싸운 건지, 거친 가시 덩굴에 걸린 건지, 가끔씩 몸 곳곳에 작은 상처가 난 채로 오기도 했습니다. 다소 깊어 보이는 상처인 경우엔 사진을 찍어 동물병원에 가지고 가면 수의사선생님께서 가루약을 지어주셨고 저는 그걸 간식과 섞어주었습니다. 약이 섞인 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해주는 건지, 돌쇠는 약 섞인 간식을 줄 때마다 그것을 담아준 그릇까지 싹싹 핥아 먹는 기특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돌쇠가 빈 밥그릇으로부터 두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돌쇠가 어디서 신나게 놀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좀 일찍 왔다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릇에 밥을 채워 주고는 다시 일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한참 후에 나가보니 밥은 그대로고 돌쇠는 없었습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일 아니라 여겼습니다. 다음날은 돌쇠는 오지 않았고, 그 다음날에 제가 외부에 일을 마치고 오니 같이 일하는 동료가 돌쇠가 왔다 갔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돌쇠가 온몸에 물에 젖은 채로 밥자리에 웅크리고 있길래 사료를 주었는데 입도 대지 않고 그냥 갔다고 했습니다. 그저께와 똑같은 행동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돌쇠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바로 동료와 함께 돌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구석진 곳과 가게 주변 빈집들, 동네를 돌면서 돌쇠가 있을 만한 곳을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돌쇠는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은 토요일이라 아침 일찍부터 돌쇠를 찾아 나섰습니다. 몇 시간쯤 후 가게 바깥에 자재들을 쌓아놓은 곳에서 아주 조그맣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빗물을 막기 위해 쳐놓은 천막을 들춰보니 저쪽 끝 부분에 돌쇠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어두웠지만 몸은 여전히 젖어있었고 진흙 같은 것이 얼굴에 까맣게 묻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조금씩 돌쇠에게 다가가려 시도했고 돌쇠에게 가까워질수록 심한 오물 냄새가 났습니다.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저는 놓칠 새라 손을 뻗어 덥석 돌쇠를 안아 들었습니다. 도망갈 힘도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동안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이었는지, 돌쇠는 전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저에게 잡혀주었습니다. 저는 급한 대로 박스에 돌쇠를 넣고 바로 동물병원으로 갔습니다.
[돌쇠 치료 과정]
병원 진찰대 위에서 본 돌쇠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온몸에서 시궁창 냄새가 났고, 얼굴은 진흙뿐만 아니라 고름 같은 것이 까맣게 엉겨 붙어있었습니다. 진물이 나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코 일부와 입천장이 찢겨져 있었습니다. 치아는 위쪽 앞니와 송곳니가 모두 빠져 있었으며, 아래쪽 양쪽 송곳니도 끊어져 있었습니다. 몸 곳곳에 작은 상처가 있었고 한쪽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눈에서 진물이 나는 것은 감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동안 전혀 먹지도 못한 채 상처를 혼자서 견뎌내느라 면역력이 약해져서 호흡기질환에 걸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담당 수의사선생님께서는 기본 신체검사와 X-ray 검사를 하신 뒤 바로 수술을 시작하셨습니다. 입천장과 앞니가 빠진 부분을 봉합하고 부러진 아래 송곳니 신경 치료를 하셨다고 합니다.
수술 후 일주일간 돌쇠는 기력이 전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입안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감기 때문인지 스스로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눈도 뜨지 못한 채 거친 숨을 내쉬기만 했습니다. 영양제와 항생제, 소염제 등 수액을 맞으면서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계속 닦아줘도 눈에서 계속 진물이 나왔습니다. 다시 일주일 뒤, 돌쇠가 드디어 눈을 떴습니다. 다음 이틀 후에는 스스로 먹기 시작했고 점차 기력을 많이 회복해서, 오후에는 구조 첫날에 미처 다 못한 아래 송곳니 신경치료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퇴원 후 보호계획]
돌쇠가 일주일 후 퇴원을 하면 저희 집에 임시 보호를 하면서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돌볼 예정입니다. 현재 저희 집에는 7년 전 가게 쥐 잡이 고양이로 왔다가 저의 첫 반려묘가 된 그 아기 고양이(건강이) 외에도, 그동안 제게서 밥을 얻어먹다가 더 이상 길 생활이 힘들다는 판단에 저의 가족이 된 고양이가 두 아이 더 있습니다. 돌쇠까지 하면 네 마리 고양이가 좁은 저의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은 결정은 아닐 것 같습니다. 만약 돌쇠가 기력을 회복하고 야생성을 보인다면 어쩔 수 없이 길로 다시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돌쇠가 사람에게 정을 준다면 제가 책임지고 좋은 입양처를 알아볼 것이며, 혹여라도 좋은 입양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제가 돌쇠를 저의 네 번째 반려묘로 받아들일 예정입니다.
[치료지원 후기]
돌쇠의 치료비를 지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돌쇠의 상처부위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아직 눈물이 흘러서 평소에는 얼굴주변이 지저분하지만, 눈물을 닦아주기만 하면 전혀 다른 모습의 돌쇠가 되곤 합니다. 곧 눈물이 멈추고, 시간이 지나 점차로 얼굴 상처부위를 가려줄 정도로 털도 많이 자라게 되면, 예전 길냥이 시절의 돌쇠도 아니고, 병원에 치료받던 때의 돌쇠도 아닌, 완전 멋진 미묘 돌쇠로 변신할 것 같습니다.
돌쇠는 가정생활에도 잘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시보호 집에 있는 다른 냥이들과 (아직은 서로 데면데면하긴 해도) 한 번도 심한 신경전을 벌이지 않았고, 또 지난 주말부터는 돌쇠도 다른 집냥이들처럼 낚시대 등 장남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다른 냥이들이 놀이할 때 돌쇠는 멀찍이 물러서거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놀이에 다소 무심하고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최근엔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른 아이들이 뛰어오르고 달리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자신 주변에 낚시대가 오게 되면 얼른 손을 뻗어 (약간 소심하게?) 잡아보기도 합니다!
돌쇠가 이렇게 빨리 집 생활에 적응을 해주는 것이 참 기특하고 놀랍습니다. 돌쇠가 심한 상처에도 치료를 잘 마치고, 이렇게 집냥이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 주신 카라에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감사를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 감사한 마음 늘 잊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서 카라를 응원하겠습니다. 든 생명이 마음/몸 따뜻한 밤이길 기도합니다….
고통속에 위태롭게 생명을 이어오던 동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새 삶을 살게 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도처에 위험이 늘 있는 길생활로도 고단했을텐데 심한 상처를 입어 힘든 치료 과정을 잘 버텨준 돌쇠가 참 대견하기도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구조해주시고 가족으로 맞이해주신 구조자분 정말 감사합니다. 돌쇠와 가족분들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