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닌 치열한 ‘생존’입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위기의 동물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의 구조 사연을 공유합니다.
구조 사연
저희 동네는 필로티 타입의 개방형 주차장이 즐비한 주택가입니다. 건너편은 재개발이 막 시작되어 모든 건축물들을 다 허물고 허허벌판인 상태라 건너편 쪽 길냥이들이 반대편 우리 동네로 많이 이주해온 듯 합니다. 밥주던 고양이들 말고도 새로운 녀석들이 대거 나타나고 있다보니 좋은 밥자리는 경쟁이 훨씬 치열해진 것 같아요.
제가 구조한 참깨와 두리안은, 녹두와 함께 같은 어미에게 태어난 세 자매냥이입니다. 엄마의 이름은 '예쁜이'. 너무 예쁘고, 모성애도 너무 지극한 어미입니다. 소심하고 경계심도 많은데, 공격성은 너무 없어 다른 녀석들 것은 빼앗을 줄도 모르는 순둥이 그 자체입니다. 저희집 주차장은 이 동네에서도 보기 드문 폐쇄형의 철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다보니 예쁜이가 아가들을 키우기엔 더없이 안락한 곳이었을 겁니다.
언제나 느릿한 걸음걸이에 움직임도 많지 않으니 잘 먹고 통통한 줄 알았지 임신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작년 겨울, 예쁜이가 한달 가까이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놓아둔 밥이 없어지는걸 보니 밥은 먹고 지내는구나 하던 즈음에 주차장 구석 어딘가에서 아주 어린 아깽이들 소리가 나길래 샅샅이 주차장을 살폈더니만, 예쁜이가 구석에 숨어서 출산을 하고 한 달이나 사람 눈에 안 보이게 아가들을 키웠던 겁니다. 두번 째 출산 때 나은 아들은 벌써 예쁜이만큼 커서 성묘가 되어 엄마가 세번째 나은 아가들을 예쁜이와 함께 공동 양육을 하고 있더라구요. 부리나케 따듯하고 포근한 이불을 깔아줬고, 차가운 주차장 바닥으로 기어나오지 못하게 박스도 큰걸로 마련해주고, 세번이나 출산한 예쁜이한테는 보양도 필요해 보였습니다.
새끼 중 회색털을 가진 두리안은 태어나면서부터 눈과 코가 눈꼽과 염증으로 범벅이 되어 떠지지도 않고, 누런 코가 가득 끼어 숨쉬기도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고양이 허피스에 대해 정확한 지식도 경험도 없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나으려니 했지요. 하지만 두달쯤 지나니까 두리안은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졌고 저러다 큰 일 나지 싶을 정도로 기력이 안 좋아졌습니다. 엄마 젖을 빨러 갈 기력도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러다 죽겠다 싶어 급히 약을 지어먹이고 두리안은 간신히 위급한 상황들을 넘겼습니다. 늘 어미 예쁜이가 지키고 있다보니 아가냥이들은 접근조차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위급 상황이 되면 용기를 내어 하악질에 냥펀치를 마구 날리는 어미 품을 뚫고 아가를 구출해내어 약을 먹이고 중단하고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고, 두리안의 허피스는 만성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가들이 젖을 거의 떼어갈 무렵 구청에 TNR을 신청했고, 신청한지 한 달만에 저희집 주차장에서 예쁜이는 잘 잡혀줬고, 성공적으로 중성화 수술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네요. 보금자리로 돌아와 잘 방사된 예쁜이는 그 자리에서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어미가 가출을 하고나니 아직 젖을 먹고 있던 허약한 두리안, 그나마 씩씩했던 참깨와 녹두에게 위험천만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차장 밖으로 탈출이 잦아지면서 길거리를 마구 달리는 오토바이들, 자동차들에 치일 뻔 한 적도 너무 많았고, 따사로운 햇볕이 좋았는지 길 한가운데에 누워 있질 않나, 아무거나 막 주워먹기도 하고, 밖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다가 발견되기도 일쑤였습니다. 예쁜이가 정말 아가들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케어해줬던 모양입니다.
저희는 당분간 주차를 포기하고 임시방편으로나마 주차장 입구에 울타리 펜스를 쳐서 일단 아가냥이들이 쉽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는 했지만, 그까짓 펜스쯤이야 쉽게 뛰어넘는 녀석들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녹두는 어린이집 차에 치어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눈 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축 쳐진 녹두를 안고 엉엉 울면서 동물병원으로 달렸던 기억도 납니다. 이미 늦었지만 뭐라도 안될까 싶어서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남은 두 녀석(두리안과 참깨)을 일단 문을 닫을 수 있는 창고 비슷한 장소로 옮겼습니다. 더는 녹두처럼 보낼 순 없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17살 먹은 강아지와 입양한지 얼마 안 되는 2살된 고양이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집으로 들일 수는 없는 처지였구요.
두리안은 낫기는 커녕 상태가 갈수록 태산이라 병원을 데려갔었습니다. 콧물이 너무 누렇고, 콧 속까지 꽉 차서 숨을 쉬지 못할 지경에, 눈은 피가 나나 싶을 정도로 빨간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고, 수의사 선생님은 더 이렇게 방치했다간 콧속 염증 때문에 볼이 뚫릴 수도 있고, 비강에 염증이 꽉 차서 뼈까지 다 녹일 수 있다는 경고를 주셨습니다. 검사 결과도 역시나 허피스에 곰팡이균 감염 결과가 나왔고, 항생제와 진균제 등을 함께 처방해서 먹이고는 있는데 정말 잘 낫질 않습니다. 어미가 지도 면역력이 엉망인 상태에서 아가들을 임신했던데다, 태어나자마자 자란 환경도 결코 좋지 않았고, 초기에 집냥이처럼 딱 붙어서 치료를 해주지 못하다보니 두리안은 어쩌면 허피스를 계속 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항생제 특성상 며칠 쉬어야하는 동안은 그나마 좀 나아지는건가? 싶던 콧물이 다시 퐁퐁 나옵니다. 그때마다 허탈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정작 시원하게 숨쉬지 못하는 두리안이 몇배는 더 힘들텐데 아침 저녁으로 네뷸라이저도 해주고 해서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예쁜이가 가출한 뒤, 어미가 가출하고 얼마 안 되어 교통사고로 녹두도 별이 된 뒤, 참깨와 두리안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의지할 유일한 서로가 된 듯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목을 베고 잠에 들고, 밥도 함께 먹으러 오고, 배부르면 여느 아가들처럼 장난치고 우다다다 잡기놀이도 하면서요. 허약한 두리안을 신경쓰느라 씩씩한 참깨는 사실 살짝 뒷전이었습니다. 아픈 두리안의 눈과 코를 잘 핥아주는 씩씩하고 명랑한 참깨! 자기 꺼는 늘 잘 먹고, 두리안 밥까지도 빼앗아 먹고, 장난 잘 치고, 명랑하게 애교도 잘 부리니까 걱정스럽지가 않았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 참깨가 지나간 자리에 누런 콧물같은게 떨어져 있길래 두리안 콧물인 줄 알았습니다. 장마철 되면서 두리안 상태가 안 좋아졌나? 콧물을 이렇게까지 흘리네? 하고 이리저리 살피는데.. 세상에.. 참깨 생식기에서 누런 콧물같은게 뚝뚝 떨어지는 겁니다. 한참 털갈이 시즌이라 그루밍을 하는 줄 알았던 똥꼬를 핥는 행동이 이 염증을 핥아먹는 거였다니!! 참깨를 얼른 잡아 배를 살살 만져줬더니 생식기에서 고름이 계속 나오는겁니다. 배를 조금만 꽉 만지면 제 손을 물고, 소리도 요란하게 내면서요. 심상치 않아 바로 병원에 데려갔고, 검사결과는 자궁축농증이었습니다. 저한테도 TNR은 무섭고 아픈 기억입니다. 어미 예쁜이를 지켜주고자 신청했던 TNR인데, 결국 예쁜이를 쫓아낸 꼴이 되어버린 TNR.. 저의 기억도 이렇다보니 참깨와 두리안을 쉽게 TNR 신청을 못했었습니다. 두리안은 또 태어나면서부터 허피스로 계속 너무 고생만 하고 있다보니 중성화를 천천히 시켜줘야겠다 생각했었습니다.
치료 및 진료 과정
아직 1살이다보니 쉽게 참깨의 증상을 자궁축농증으로 진단내릴 수 없어 엑스레이와 복부초음파 등을 찍어봤고, 저게 만약에 자궁내 염증이라면, 배속에서 터질 위험성도 있어 바로 개복하여 적출하는 것만이 방법이라 하셨습니다. 하루 금식 후, 검사 다음날 바로 개복이 이뤄졌습니다. 선생님이 수술 끝나고 적출한 자궁을 보여주시면서도 놀라하셨습니다. 한껏 부풀어오른 참깨의 적출된 자궁을 핀셋으로 누르는데 그 누런 염증이 쭉쭉 나왔습니다. 저게 참깨 몸 속에서 터지지 않고 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선생님조차 1살짜리가 자궁축농증에 걸리는 사례는 정말 거의 없을 정도라 놀랍다고 하셨구요. 배 안에서 터졌으면 복막염 등으로 번졌을텐데 그러지 않아 다행이고, 보통 그루밍 등으로 핥아먹어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하셨어요. 염증이 새어나오는걸 어떻게 잘 발견했냐시며, 수술이 아주 말끔하게 잘 되었다고 합니다. 참깨는 살 운명인가 봅니다. 입원치료는 비용적으로 부담스러워서 3~4일간은 통원하며 주사 맞고 상태를 지켜볼 예정이구요. 3일차에는 꼭 염증수치를 검사해보신다고 하셨어요. 염증수치가 잘 나오기만 하면 클 탈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두리안 역시 허피스 치료를 하면서, 곧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1살짜리도 자궁축농증에 걸릴 수 있다는 사례를 자매인 참깨가 경험한 이상, 두리안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두리안은 열심히 약을 먹이는 것 말고도 해줄 수 있는 호흡기 치료를 병행하면 좋겠고, 특히 면역력을 강화해주지 않으면 재발은 너무 뻔한 일입니다. 가급적 아침 저녁으로 식구가 순번을 만들어 네뷸라이저도 해주고, 면역력도 키워서 두리안 스스로의 몸이 허피스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여정이 남았습니다.
앞으로의 진료 및 치료 후 보호 계획
폭풍같던 하루를 보내고, 지금 참깨는 수술 잘 마치고, 케이지 안에서 편안하게 제 옆에 있어요. 세상에 서로 뿐이었던 참깨와 두리안에게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 여력이 닿는대로 잘 치료도 해주고, 참깨와 두리안에게 더없이 안락하고 따스한 세상이 되어주려고 합니다. 제가 참깨와 두리안에게 평생 사는동안 든든한 키다리아저씨가 되어줄 수 있도록 동물권행동 카라의 큰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꼭 부탁드려요.
아이들을 케어하면서 느낀 점은, 제가 사람으로서 이렇게까지 지출 계획도 없이 경제상황을 하나도 안 고려하고 산 적이 없는데, 정말 돈이 많이 깨지면서도 아이들 구조하게 되는 건,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한 감동을 아낌없이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녀석들한테 준 건 밥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얘네들은 고작 1살도 안 된 녀석들조차 뭘 안다고 지네들의 전부를 다 주더라구요. 제가 나타나면 차가 오던말던 건너편에서 뛰어오고, 길 한복판에서 배를 까고 드러누워요. 저를 믿지 않고는 해줄 수 없는 일들을요. 아가들이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주는 것이 온전히 느껴지면, 사료를 살 때 머리속으로 지갑사정을 생각했던 미안한 생각만 나고, 추워서, 졸려서 미루고 합리화했던 저의 더 해주지 못했던 아쉬움만 남습니다. 오늘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주는 것! 그것이 마음이 되었든, 정성이 되었든, 시간이 되었든, 금전적인 치료나 해결책이 되었든 오늘의 최선을 매일매일 다해보고자 합니다.
최근 소식
아이들은 더 즐겁고 해맑은 장난꾸러기들이 된 거 같아요. 요즘 대세 중 초대세인 푸바오를 우리 두리안이 너무 닮았어요. 뚠뚠한 뱃살부터 강바오한테 마구 앵기는 사랑스런 모습까지 똑 닮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두리안~ 저한테만은 눈만 마주치면 일단 철푸덕 누워서 뱃살부터 까는 행동파예요. 천둥번개치면 카페트 속으로 몇 시간이나 숨느라 찾느라 식겁했던 겁쟁이예요. 장마 때는 수시로 안아줬네요~
참깨는 딱 반대예요. 눈빛이 엄청 요염하고, 날씬해서 걷는거도 사뿐사뿐~ 저를 보면 졸졸 쫓아다니며 쓰다듬어달라며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 참깨는 알고보면 사고뭉치랍니다.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르고, 하고 싶은 거도 많고, 사랑도 독차지하고 싶고요. 먹고 싶은 건 또 얼마나 많은지, 천둥번개는 참깨한테는 너무나 신나는 페스티발이예요~
같은 배에서 태어났다는게 믿겨지지 않을만큼 딱 반대인 두리안이랑 참깨지만, 둘은 서로가 없으면 절대 안 되는 하나랍니다. 제가 복받아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맞이했어요. 늘 활동가님들과 카라,, 그리고 이 땅의 고양이와 모든 동물들의 행복과 풍요, 건강장수를 기원합니다
*비록 낳아준 어미와는 헤어졌고, 남매 중 한마리가 별이 되었지만 살아남은 참깨와 두리안은 사람가족과 함께 반려묘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네요. 늦기 전에 병을 발견해 치료한 참깨, 안정적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된 두리안의 행복하고 씩씩한 묘생을 응원합니다.
*참깨, 두리안의 치료비는 '삼성카드 열린나눔'에서 지원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