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한복판에 길게 뻗어 아사 직전 구조된 '소망이'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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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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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닌 치열한 ‘생존’입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위기의 동물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의 구조 사연을 공유합니다.


구조 사연


6월 초 등산을 하시던 모친이 등산로 한복판에 고양이가 쓰러져 있는데, 파리가 잔뜩 모여 있고 전혀 일어나질 못하니 뒷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 같다 연락을 주셨습니다. 당장 제가 산에 가서 박스에 고양이를 담아 하산했습니다.

발견 당시 소담이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등산로 한복판에 옆으로 길게 뻗어 누워서 고개만 겨우 가누는 상태였습니다. 하체에는 파리가 잔뜩 들러붙었고, 몸은 차가웠으며 뼈가 만져질 정도로 말라 있었습니다. 상태를 지켜볼 시간도,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다른 구조자를 기다릴 시간도 없었습니다. 무작정 병원에 가자는 마음으로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도착한 동물병원에서는 박스에 담긴 소담이를 보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곧 죽을 아이니 너무 상심은 마시라'며 작은 캔 두어 개와 함께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체온도 너무 내려가 있었고, 다친 부위를 보기 위해 꼬리를 들자 항문과 성기에 우글우글한 구더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외상을 입은 게 아니라, 아사 직전이며 심각한 구더기증에 감염되었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곧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숨만 헐떡이는 아이를 다시 산에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깨끗한 곳에서 외롭지 않게 다음 생을 축복해 주며 보내기 위해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소담이는 병원에서 챙겨 준 캔을 눈도 못 뜬 채 깨끗하게 비웠고 물도 한참 마시며 살고자 했습니다. 직후에 경련과 발작이 번갈아 찾아오며 약 30분 이상을 괴로워했지만, 거품을 물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고양이에 대한 지식도, 경제적, 심적 여유도 무엇 하나 준비된 게 없었지만 작은 생명이 보여준 삶에 대한 열망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치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치료 및 진료 과정


구조일 저녁 구더기가 끓고 있는 소담이의 항문께에서 피가 번지기 시작해 24시 진료가 가능한 병원에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심각한 구더기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항문을 통해 내장 깊숙히 번져 있어 개복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또 항문뿐만 아니라 성기 등에도 구멍이 잔뜩 뚫려 파먹힌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개복 수술로 우선 제거할 수 있는 벌레를 모두 정리했으나 아이가 너무 오래 굶어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하루 입원을 결정했습니다.

이튿날에 병원으로부터 소담이의 입에서도 구더기가 나온다며 다시 한 번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안락사에 대한 설명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에 저와 가족은 이 이상 치료를 진행하면 사람도 금전적으로 괴로울 테고, 고양이도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기에 전원 안락사에 동의했으나 몇 시간 뒤 소담이가 밥을 먹는다며 안락사를 재고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실은 이 시점이 되어서야 소담이가 죽을 목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죽을 것 같은 아이를 어찌할 수 없었다는 동정심만으로 빚어진 마음을 강하게 다잡고, 가족들 모두가 소담이의 완치를 위해 임시 보호를 결심했습니다.

다음날 소담이를 퇴원시켜 함께 귀가했습니다. 함께 지내고 있던 강아지로부터 소담이를 안전하게 격리시키고, 아침저녁으로 하루 2회 알약 투여와 환부 소독, 연고 도포를 진행했습니다.습식캔을 구입해 하루 네 번 급여를 시도했습니다. 초기에는 일회용 스푼으로 두세 스푼 정도를 겨우 삼켰으나 한 번도 식사를 거부한 적은 없었고, 구조 5일차부터는 그릇에 반 캔이 조금 안 되는 분량(약 40g)을 담아 주면 거의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소변도 깔아 준 패드에 한두 번씩 건강하게 보고 있습니다.  

퇴원 이튿날에는 여전히 고개를 겨우 가누는 수준이었고, 그 다음날에는 사람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었으며, 또 다음날에는 기어다니며 약을 도포할 때 가벼운 발버둥을 쳤습니다. 몸을 세워 엎드릴 수 있게 되었고 방에 들어오는 구조자에게 야옹야옹 울며 인사를 건네고, 손을 보여주면 먼저 와서 코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구조 일주일만에 자력으로 일어서서 두어 발짝을 이동했습니다.

소담이의 경과와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다시 내원했습니다. 약이 잘 들어 환부 상태도 상당히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새로 10일치의 약을 처방받아 귀가했습니다. 


앞으로의 진료 및 치료 후 보호 계획


당장은 소담이가 걷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을 때까지 임시 보호하며 곁을 지켜 줄 예정입니다. 성묘는 반려견와의 합사가 어렵다고도 하고, 무엇보다 모친이 고양이를 무서워하셔서 구조자가 평생의 가족이 되어 줄 수 있을지는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담이가 걷기 시작했으니 곧 SNS, 지역 커뮤니티 등에 적극적으로 입양 홍보를 해 볼 생각입니다.

소담이는 아주 살갑진 않아도 충분히 손을 탔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사람을 겁내지 않고, 먼저 다가오는 고양이입니다. 소담이와 구조자 가족이 힘을 합쳐 어렵게 지켜낸 생명을 방사라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꺼뜨릴 생각은 없으니, 잘 보살피다가 꼭 안전한 가족의 품으로 인도하겠습니다.

소담이는 이제 다른 고양이들처럼 건강해졌어요. 잘 먹고 자고 뛰고 상처도 다 아물었습니다. 첫 열흘 간은 상처 때문에 배변 활동도 제대로 못 해서 걱정이었는데 이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소담이 화장실을 정리해 주는 삶을 살고 있네요. 사료도 습/건식 안 가리고 뭐든 잘 먹어요. 

사람도 좋아해서 제 손이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눈을 감고 먼저 뺨을 문질러요. 사랑 받을 준비는 다 된 것 같으니 좋은 가족을 만날 일만 남았네요. 겁이 많은 건지 방법을 모르는 건지 장난감 몇 종류를 사다가 흔들고 굴려 봐도 반응이 없고 잘 안 움직이려고 하는 게 마음에 좀 걸리는데, 이미 새로운 장난감이랑 스크래처 택배가 오는 중이에요. 소담이는 온 힘을 다해 살아 주었으니 저는 임시지만 열심히 집사 노릇을 해 보려고 합니다. 


* 많이 당황 하실 수 있는 상황에 차분하게 구조를 하셨기에 소담이도 마음을 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담이가 궁디 씰룩거리며, 눈 크게 뜨고 사냥하겠다고 하는 그런 장난감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소담이가 마음에 꼭 드는 장난감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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