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또 유예되는 산란계 복지, 계란값 핑계로 닭들은 A4보다 작은 철창 속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달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산란계 한 마리당 사육 면적 확대 정책을 또 다시 2년 유예했다. 이는 이미 지난해 말, 좁은 공간에 5~6마리를 집어넣어 사육하는 배터리케이지 계란(4번)이 7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9월 완전 퇴출될 예정이었으나, 그 시행 시점을 2027년 9월로 한 차례 미룬 데 이어 다시 한번 유예한 것이다.
당초 농식품부는 이달부터 신규 입식하는 산란계의 사육 면적을 4번란(배터리케이지) 기준인 마리당
0.05㎡에서 50% 확대해 3번란(개선 케이지) 기준인 0.075㎡로
적용할 계획이었다. 현재 국내 산란계의 약 90%인 7천만 마리가 달걀을 낳기 위해 케이지에 밀집·감금 사육되고 있다. 배터리케이지 속 닭들은 A4용지(0.06㎡)보다도 좁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며, 날개조차 제대로 펼 수 없는 철망
속에 갇혀 있다. 이번 조치 유예로 이 비극적인 현실이 앞으로도 4년간
계속되게 됐다.
정부는 계란 수급과 가격 불안을 유예 사유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닭들이 겪는 평생의 고통은 외면한 채, 오직 계란값 안정만을 앞세우는 정책은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라
할 수 없다. 산란계 케이지 면적 확대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생명 존중과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정부가 계란 가격을 이유로 또다시
동물복지 향상을 늦추는 것은 그동안의 정책 방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조치가 사실상 규제 포기에 가깝다는 점이다. 정부는 2027년 9월까지
농가의 ‘자율적 이행’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강제력이 없는 ‘자율’은
곧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동안 농가가 동물복지 개선을 자발적으로 이행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으며, 이번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정부는 사육단수를 9단에서 12단으로 늘려 닭들이 쌓이는 층을 더 높였다. 이는 공간을 넓히는
대신 단순히 닭을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발상이다. 화재, 질병, 재해 발생
시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산란계의 평균 수명은 2년 남짓이다. 이번 유예는 최소 한 세대 이상의 닭들이 아무 변화 없이 좁디좁은 케이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뜻이다. 유럽과 미국 일부 주들은 동물의 복지를 극도로 훼손하는 배터리케이지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케이지프리(cage-free) 사육을 지향하고 있다. 정부는 즉시 산란계 케이지 면적 확대를 시행하고, ‘자율’이라는 이름의 방치를 멈출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또한 계란 가격 안정과 동물복지 향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요구한다. 닭들의 삶은 정부가 원하는 때마다 미룰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