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안타까운 생명이 별이 되었습니다.
지난 17일, 의정부 신곡동 도살장 에서 구조되었던 설희는 유난히 몸집이 작고 순한 ‘백구’였습니다. 잔혹한 도살의 흔적이 낭자한 아비규환 속에서도, 설희는 그저 조용히, 다소곳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이런 설희의 모습은 마치 지옥과도 같은 현장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느껴졌고 어쩌면 그래서 설희는 더욱 활동가들의 마음에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구조하려고 다가간 활동가를 경계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굴리며 바라보던 설희. 설희를 구조해 나오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깨끗하게 목욕도 하고, 맛있는 영양식을 먹으면 얼마나 더 예뻐지게 될까, 좋은 가족을 금방 만날 수 있겠다, 그런 기대를 했습니다. 설희의 행복한 삶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설희는 훨씬 더 힘든 시간을 겪었나 봅니다. 도살장을 벗어나 안전한 위탁처로 옮겨져 깨끗한 물과 영양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기도 잠시, 처음 실시한 키트 검사에서 홍역 양성반응을 보였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이제까지 간신히 버텨왔다는 것을 보여주듯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병세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에 걸린 채로, 뜬장에 갇혀 썩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죽음의 공포와도 싸워야했던 설희. 온순하고 착한 설희에게 이런 상황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가슴 아프지 않은 죽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도살장에서 구조되어 새로운 삶의 시작을 목전에 두고 맞이하는 죽음은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움을 넘어 비통함입니다.
우리는 설희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삶을 살다가 도살장에서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 지라도 설희의 삶 속에 뛰어들었고 설희를 향했던 우리의 손길은 다정했음을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러운 뜬장 위에서도 단아하게 빛이 났던 설희. 새하얀 눈 위에 박힌 검은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던 설희의 두 눈을 기억할 것입니다. 언젠가 설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곳은 더러운 뜬장 위가 아닌 푸른 잔디가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잠시의 시간이었지만 많이 사랑했던 아이, 설희가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함께 기억하고 빌어주세요.
설희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