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마을의 닭들이 결국 살해 당한다. 방역상 살처분이 아닌 정당화 될 수 없는 국가의 '살해' 행위다.
1.8km 떨어져 있던 대형 농장의 고병원성 조류독감 발병으로 지난 12월 23일 화성시로부터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받은 이래, 현재까지 비감염이 판명되고 있던 건강한 닭들이다.
무려 3만 7천 마리의 아무 문제 없는 닭들은 내일이면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이 죽음은 방역과는 무관하다.
방역상 살처분 명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바이러스 최대 잠복기를 도과하도록 산안마을 닭들은 비감염 판정을 받았으며, 이후로도 매일같이 비감염 판정을 받았다.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는 한 산안마을은 현재 안전한 상태다.
주변 농가가 일찌감치 싹쓸이 살처분 명령을 받아들여 가금류마저 없고, 발병 농가였어도 방역대를 완화해야 할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과학적 근거없이 3km로 일관한 탁상행정식 살처분 명령은 최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무조건' 밀어붙인 근거없고 과도한 예방적 살처분에 각계의 지탄이 쇄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역당국은 잘못된 방침을 신봉하다시피하며 3000만 마리 죽이는 참사와 혈세 낭비 등 막대한 피해를 유발했다.
그러고도 조류독감은 계속 발발하고 있는데 이는 야생철새 때문이라 하고, 그런데도 백신은 도입할 수 없단다. 죽여서 막을 수 있는 조류독감이었다면 이미 조류독감이 종식되고도 남았을 만큼 많이 죽였다.
무능 그 자체다.
방역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15일 공식 브리핑을 통하여 실패한 방역을 성과로 왜곡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역대 최악의 대량 살처분에 근접해 가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산안마을의 살처분이 현 시점에서 여전히 강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국회에 출석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미 살처분을 한 주변 농가와의 '형평성' 때문에 ‘산안마을 닭들도 죽어야만 한다’고 밝혔다.
위험도에 따른 살처분이 아니란 것을 자인한 셈이다.
닭들은 건강히 살아남아 온몸으로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해 보였다. 과학적 근거 없이 싹쓸이 살처분 방침만을 고집하며 이를 방역으로 포장하고 있는 현 정부를 궁색하게 만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생존 닭들은 어서 빨리 사라져야 했다.
산안마을을 살려달라는 대대적인 시민 탄원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화성시는 살처분이 집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안마을 방역대를 풀지 않았고 130만개 가량 달걀이 쌓여가던 산안마을은 닭들을 죽이지 않은 죄로 경제적 고사 직전에 내몰렸다.
농림축산식품부 또한 불통으로 일관하며 현 시점에서의 대책 마련 대신 오직 살처분만을 강제 종용해 왔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공장식 축산의 동물학대와 폐단이 심각한 현실에서 3만 7천 마리에 대한 생명폐기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잘못된 살처분 명령에 저항하는 산안마을과 함께 싸웠다.
산안마을 또한 정작 31만 마리 공장식 축산에서 발병한 조류독감으로 인한 희생자였다. 해당 방역대의 유일한 동물복지농장으로서 왜 닭들을 죽일 수 없었는지 ‘비감염’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근거로 입증해 보였지만 어차피 살처분 명령은 탁상행정이었고 소위 방역당국은 처음부터 위험도 따위에 관심 없었다.
모든 건 행정의 책임 떠넘기기와 근거 없이 찍어누르는 억압의 소산일 뿐 조류독감 위험도 평가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살처분 명령은 가축방역심의회 없이 기계적으로 내려졌으며, 법령상 명시된 살처분 제외는 제대로 된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당국의 발표와는 다르게 방역정책에 대한 전문가 논의 단위인 중앙가축방역심의회 또한 소집된 바 없으며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방통행에 불과했다.
중앙가축방역심의회 위원들마저 소식이 너무 없어 농림축산식품부에 본인이 위원인지 확인차 문의해도 답변조차 피할 지경으로 엉망진창이다.
카라는 방역대를 완화할 수 있는 권한이 법령상 화성시에 있는 만큼 농림축산식품부에 공식 확인을 요청했지만 20일이 되도록 정부는 답변 없이 회피하고 있는 상태이며 해당 과에 전화를 해도 결재가 나지 않았다는 핑계로 둘러대었다.
게다가 농림축산식품부는 산안마을에 대한 만남에 동물보호단체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조건을 다는 등 동물보호단체를 배제하기 급급했다.
강제 살처분 집행정지 인용을 통해 강제 살처분을 막았건만, 이런 식으로 정부는 스스로의 논거도 없이 귀닫고 눈감은 채 방역대를 풀지 않았고 산안마을을 죽이려 했다. 그래서 닭들은 이제 당국의 바람대로 아무 의미 없이 죽어야 한다.
거없는 살처분 명령으로부터 살아남아 오늘도 횃대에 오르고 날개를 펼치며 모래목욕을 하던 닭들은 잘못된 방역정책에 대한 국가의 증거 인멸 시도로 인하여 이제 몇시간 뒤면 살해 당하고 만다.
비단 산안마을 뿐이었을까.
엉터리 동물방역과 국가의 행정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가 되기를 강요 받았던 이들이 그간 무고하게 죽어가고 그 자리를 다른 생명이 메꾸길 반복해온 무시무시한 축산의 무한 수레바퀴 속 동물들의 산 목숨이 아깝다.
동물복지는커녕 동물의 생명을 종잇장보다 가볍게 여기면서 소통 없이 폭력과 야만으로 짓누르는 무능한 방역정책국, 아니 과학적 방역을 포기하고 생매장 불사하고 동물 죽이기에만 몰두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2021년 2월 18일
동물권행동 카라
전수희 2021-03-04 10:16
잘 읽었습니다. 평소에 육류로 소비되는 동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주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