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에 남겨진 피해 동물에 대한 보호대책 조속히 마련해야
동거인 여성과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이 지난 1월 4일 검찰로 송치되었다. 이 씨는 지난해 8월 동거인 여성을 둔기로 살해한 뒤 그 시신을 유기하였으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이어 12월 20일 음주운전을 하다 택시와 접촉사고를 일으켰고, 택시 기사를 집에 데려가 둔기로 살해한 뒤 그 시신을 옷장에 숨겼다.
이 씨가 피해자와 함께 동거하던 곳은 살해된 동거인 여성 명의의 집으로, 집 안에는 개 1마리, 고양이 3마리의 반려동물이 있었다. 일부 보도에서는 ‘이기영이 기르던 동물’ 로 언급되기도 하였으나, 카라가 수사기관 및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모두 ‘피해 여성 소유의 반려동물’이었다.
이 씨가 피해자와 동거하던 집에 반려동물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은 현장을 수사하던 수사관에 의한 것이 아닌 해당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사무소 측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살인사건 범죄현장인 빈집에 피해자가 반려하던 4마리의 동물들이 남겨져 있었으나, 범행 현장을 조사하며 오고간 많은 수사관들 중 누구도 동물의 존재에 대해서 지자체에 알리지 않았다.
빈집에 동물들이 방치된 지 수 일이 지나서야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관리사무소에서 직접 파주시에 동물들의 존재를 알렸다. 신고를 받은 파주시는 보호자가 살해되어 빈집에 방치된 동물들을 범죄 피해 동물로 포섭하여 긴급 격리 후 보호 방안을 모색해야 함에도 단순 ‘유기동물’로 간주하여 파주시 위탁 유기동물보호소인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이하 동구협)로 입소 처리하였다. 그마저도 피해자의 반려동물을 가해자인 이기영의 ‘소유권 포기’ 라는 불필요한 절차를 밟아 진행함으로써 고인을 또 한 번 모독하였다.
동구협은 유기‧유실 동물들이 구조되어 마지막으로 가족을 기다리는 곳으로 입양 문의가 없을 경우 ‘안락사’가 시행되는 곳이다. 피해자의 반려동물은 보호자를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지자체의 부적절한 행정에 의해 한순간에 안락사 명단에 올라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카라는 경기도청에 연락하여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고 인수제 등 긴급대응을 요청하였으나 파주시에 의논하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정부에서 반려동물 복지 정책을 앞세우고 있으면서도, 지자체에서는 위기에 처한 동물에 대해 냉담하고 기계적으로만 대응하는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범죄 현장에 남겨져 위기에 처한 동물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범죄 연구에서 동물학대는 살인은 물론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등 다양한 범죄와의 관련성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번 파주 살인사건의 경우에도 이기영이 지난해 8월 한 펜션에 놀러가 수영장에 일부러 고양이를 빠뜨리고 고양이가 괴로워하며 나가려는 것을 다시 집어 들고 끌고 가며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1월 5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전문가들은 이기영의 이러한 영상을 통해 사이코패스의 특징 중 하나가 동물학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자신이 당한 학대를 말로 직접 설명할 수 없는 동물들은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어도 피학대동물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것이 국내 현실이다.
카라는 지난 9월 강남구 아동학대 현장에 6개월 동안 피해 아동과 함께 빈집에 방치된 반려견이 있다는 뉴스 기사를 확인하고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강남구청에 상황을 알리고 해당 동물을 방치 학대 피학대 동물로 긴급격리를 요청한 끝에 뼈만 앙상했던 방치견은 안락사가 아니라, 70여 일 동안 동구협에서 보호 받으며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현재 해당 방치견은 소유권 포기 이후 카라에서 인계받아 보호하고 있으며 동물등록을 마치고 입양 준비를 하고 있다. 카라는 살인사건으로 갑작스럽게 보호자를 잃은 것도 모자라 동구협에 유기동물로 입소되어 안락사를 기다리게 된 피해 여성의 반려동물들에 대해서도 입양처를 찾지 못할 경우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보호조치를 마련할 것이다.
정부와 수사기관은 범죄 현장에 방치된 동물에 대한 온전한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속히 수립하여야 한다. 특히 범죄 현장에 남겨진 동물에 대해 경찰과 지자체 간 긴밀한 협력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참혹한 범죄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들에 깊은 애도를 전하며, 직접 학대를 당한 것은 물론 보호자가 살해되었어도 스스로 구조 요청을 할 수 없는 말 못하는 동물들이 경찰과 지자체에게조차 외면당해 안락사 되지 않고 정당하게 피학대 동물로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수사기관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23년 1월 9일
동물권행동 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