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말 안락사 보조금 부정 수급’ 사건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하고, 농식품부와 한국마사회는 말 보호·관리 방안 마련에 나서라
지난 11월 23일 경기 과천경찰서는 허위로 말 안락사 확인서를 한국마사회에 제출하고 총 8천 490만 원의 보조금을 부정수급한 민간 승마장 대표 2명을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한국마사회가 농림축산식품부 위탁으로 퇴역 경주마 등을 안락사할 경우 마리당 보조금을 지급하는 ‘말 용도 다각화 보조금 지원사업’을 악용해 각각 말 48마리와 15마리에 대해 가짜 안락사 확인서를 허위로 제출해 무려 6천 240만 원, 2천 250만 원의 보조금을 수급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말 용도 다각화 지원사업’은 승용에 부적합한 말을 승용 이외 용도 전환 시 지원금을 지급하는 사업으로 타용도 전환 방식에 따라 마리당 150~200만 원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2023년에는 퇴역 경주마 200마리, 승용마 66마리 이내 사업비 4억 원 지원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퇴역 경주마는 해외수출 시 지원도 가능하나, 승용마는 랜더링(고열 멸균 처리 후 반려동물 사료 등 활용 기술) 처리만 허용해 수의사의 안락사 확인서를 제출토록 했다. 이번에 보조금을 부정수급한 둘 중 한 명은 수의사 허락 없이 안락사 확인서를 작성해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도 적용됐다.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더해진 중범죄이다.
한국마사회와 농식품부 역시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보조금 신청 시 마번과 마명, 칩번호를 기재하게 돼 있음에도 개체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지급한 점은 한국마사회의 보조금 운용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다. 더구나 말을 경주용, 승마용으로 활용해 이미 이익을 취한 마주에게 말의 기질과 부상, 노령 등의 이유로 랜더링 처리를 하는데 보조금까지 지원하는 일은 지나친 국가 재정 낭비이다.
현재 시행되는 말 이력제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부정확한 정보와 관리로 인해 퇴역 경주마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 등 허점투성이다. 실제로 2018년~2022년 연간 평균 1,400여 마리 경주마가 퇴역했고 그중 33마리가 파악 곤란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에서 허위 안락사로 지원금 신청된 말들의 생사와 동물 학대 가능성도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동물권행동 카라를 포함한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력제 의무화를 비롯해 말의 적정한 보호와 관리 방안 마련을 요구해 왔다. 한해 퇴역하는 1,400여 경주마 중 절반가량은 도축 또는 폐사 처리되고 있으며 절반 가까이는 승용과 번식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주 활용 목적으로 태어나 끊임없는 이용과 착취 끝에 죽음까지 존중받지 못하는 퇴역 경주마의 일생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21대 국회에서 퇴역 경주마의 관리와 복지를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두 차례 발의되었으나, 마주협회 등이 마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며 법안은 국회에 잠들어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지난 10월 한국마사회는 농협경제지주와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위한 말 복지 공동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퇴역한 명예 경주마에 안성팜랜드 내 휴양처를 제공한다고 대대적으로 알렸다. 그러나 전시시설 일부에 2027년까지 고작 10마리 퇴역 경주마들을 둔다는 계획은 매년 쏟아져나오는 퇴역 경주마 수를 고려할 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경주마를 이용해 매년 수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한국마사회는 최소한 퇴역 경주마들을 온전히 보호해야 할 책무를 이행해야 마땅하다.
말 복지 증진과 생명 존중 사회를 위해서 근본적으로 과도한 경주마 번식과 이용 후 폐기 처분 방식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농식품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나라 예산을 불법적으로 사용한 본 사안을 엄중히 조사하여 그 결과를 국민에게 밝히고 말 용도 다각화 지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 농식품부와 한국마사회는 말 보호와 관리를 위한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3년 11월 25일
동물권행동 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