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대신 농장을!] 하늘로 간 삐용이와 스토리펀딩 소식 전합니다

  •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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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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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이가 없는 봄이 왔습니다



공장식 축산에서 탈출한 돼지, 삐용이는 가을에 태어나 이듬해 봄의 문턱에서 돼지별로 떠났습니다. 봄날의 따뜻한 볕을 받으며 피어나는 풀을 그 까만 코로 만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꽃비가 내리는 나무 밑에서 생전 처음 맞이하는 계절을 만끽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몸이 약한 돼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구조할 당시에도 많이 아팠고, 몇 차례 찾아왔던 감기도 회복한 삐용이였습니다. 때문에 삐용이가 죽음을 맞이하기 며칠 전부터 앓았던 감기도 잘 회복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여러 차례 다녀가시며 약을 먹였고, 주사도 놓아 주셨으니까요.


어쩌면 삐용이가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고 안일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웠던 겨울도 버틴 삐용이였으니까요. 그 작은 돼지에게 최선을 다 했지만 그래도 더, 조금 더 잘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삐용이는 동물복지농장이 내려다보이는 산의 언덕, 항상 햇볕이 드는 땅에 묻혔습니다. 봄이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방사된 닭들이 목청껏 울고 모래목욕을 하는 것이 보이는 자리입니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삐용이는 영영 잠들었습니다.


삐용이는 지금쯤 봄바람을 느끼고 있을까요. 돼지별에서 좋아하는 땅콩을 잔뜩 먹고 있을까요.



삐용이의 죽음을 두고 활동가들은 서로 위로를 건네며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삐용이가 진흙목욕을 마음껏 했고, 나뭇가지를 씹고 돌을 굴리며 잘 지냈다고요. 그리고 공장식 축산에서 탈출해 도축되지도, 죽어서 고기가 되지도 않았으며, 사람들의 따뜻한 애정 속에서 존중받는 생명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요.


생각해보면 삐용이의 죽음은 '평범한 돼지'의 것이었습니다. 태생적으로 코가 삐뚤게 태어난, 몸이 약한 돼지. 추위에 약한 듀록 종의 어린 돼지가 꽃샘추위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것은 요상한 이야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섭리일 것입니다.



우리는 삐용이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했습니다. 다른 돼지들만큼 몸집도 커지고, 수명을 다 누리면서 앞으로 구조될 다른 친구 돼지들과 즐겁게 지내기를 바랐습니다. 공장식 축산을 탈출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농장동물의 대표적인 존재로 희망의 상징이 되길 바랐습니다.


지금은 삐용이의 죽음이 공장식 축산의 돼지들에게 꼭 찾아주어야 하는 섭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헤어짐에 슬퍼하고, 남은 사람들끼리 위로를 건네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죽음.


삐용이의 죽음은 지금도 이름없이 도축되며, 구제역으로 생매장 당하는 돼지들에게 꼭 찾아주어야 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삐용이는 도축장으로 가던 평범한 새끼 돼지들 중 한 마리였을 것입니다. 우리와 아무런 연고도 없었을 그런 돼지였겠죠.

다만 삐용이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은 직접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눈을 맞추고, 체온을 나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삐용이의 안전을 위해 집 주변에 펜스를 설치할 때, 삽질을 하자 축축한 흙냄새를 맡고 신난 삐용이가 달려와서 몸통박치기를 해 넘어진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삐용이가 좋아하는 간식인 치즈를 살까말까 고민하다가도, '그래도 같은 농장동물의 유제품은 먹이지 말아야지'하고 뒤돌아선 기억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삐용이는 언제까지고 우리 마음 속에 남아 공장식 축산 속에서 죽어가는 돼지들을 가르킬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삐용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공장식 축산의 돼지들도 고기 생산 기계가 아닌 돼지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삐용이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다른 돼지들과 함께, 돼지별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모금 소식도 전해드립니다 ----------

2018년 3월 16일에 시작된 다음스토리펀딩 <공장식 축산에서 탈출한 돼지>는 500만원을 목표로 시작되었습니다. 공장식 축산에서 탈출해 구조된 삐용이의 먹이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스토리펀딩 1화가 올라간 3월 16일 아침에 그만 삐용이가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삐용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너무나도 많은 슬픔을 느꼈지만, 펀딩을 중단하지 않고 농장동물을 위한 캠페인 모금을 계속했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삐용이가 '공장' 안에 갇혀 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는 삐용이들을 위해 다시 힘을 내야만 했습니다.


저희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목표금액보다 149% 초과달성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펀딩 거의 마지막 날, 모금은 약 60%밖에 달성되지 않았었고 저희는 이번 모금이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고자 카라 회원님들께 긴급히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메일을 보낸 지 10분도 안되어 모금은 100%를 돌파했고 이후에도 뜨거운 모금 행진이 계속되었습니다. 농장동물 캠페인을 응원해 주시는 회원님들의 성원에 실로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모두의 마음이 모여 성공시킨 이번 펀딩은 농장동물 보호운동의 역사에 의미 깊은 발자취로 기록될 것입니다.


비록 삐용이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카라는 또 다른 삐용이들을 위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장 대신 농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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